직장 사표내고 재가선방에서 참선 정진
번호 : 31356     조회수 : 24445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05-03-15 오전 9:36:37    
얻은 것마저 내려놓기 공부 아직 먼길


나는 대학에 다닐 때 불교를 접했다. 방학이면 주로 울진 불영사에서 경전을 읽었고, 대구 동화사 양진암에 있을 때는 경봉스님의 법문을 듣기도 했다. 그러다 중간에 휴학을 해서는 한 학기 동안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의 강의를 들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도강인 셈이다. 그 후 나는 졸업을 하고 취직을 했다. 그러나 항상 어떤 답답함이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었다. 그동안 공부한 것과 현실의 접점이 없었고, 불교적인 삶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1년 반 동안 직장생활을 했을 무렵, 어느 날 한 선배가 찾아왔다. 자연스럽게 불교에 관해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서로 주장하는 것이 달랐다. 헤어질 때, 그 선배가 대뜸 “너는 그렇게 불교를 잘 알고 있으니 번뇌가 없겠다”고 말했다. 이 말에 나는 참담함을 느꼈다. 곧 회사에 사표를 내고 그 선배가 공부하는 곳을 따라 갔다.

선배가 공부하고 있는 곳은 부산에 있는 보림선원이었다. 보림선원은 백봉 김기추 선생께서 계신 곳이었는데, 일반 재가불자들이 선생을 모시고 금강경, 유마경, 선문염송 등을 배우고 있었다. 부산에 연고가 없는 나는 선원에서 숙식했다. 덕분에 1년 반 가까이 백봉 선생을 곁에서 모시면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다. 선생은 아침저녁으로 법문을 하셨다. 배우는 사람들 중에는 나이 많은 보살들도 꽤 있었다. 나는 그 때 수행이 지식을 쌓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수긍하게 되었다. 내가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 것은 이 분들에게 배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도들이 대부분 가정과 직장이 있는 사람들이라 낮에는 단출하게 선원 식구 몇 명이 선생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밥을 먹다가는 선생께서 갑자기 “김 군, 이 밥 맛이 어디서 나노?” 또는 “허공에 어떻게 방석을 까는가?”라고 물으시는데 등골이 서늘함을 느꼈다. 백봉 선생은 이렇게 일상생활 속에서 불쑥 화두를 던지시곤 했다. 그리고 학인들이 답을 할 때 옛 조사들의 말을 흉내내거나 뜻풀이 하는 것을 아주 싫어하셨다. 틀려도 좋으니 자신의 살림살이를 가지라고 강조하셨다.

한 일년 쯤 지났을 때, 어떤 인연으로 선생은 선원에 있던 대중을 모아 놓고 내가 이제는 혼자 공부할 만하다고 말씀하셨다. 나 또한 선생님 곁에서 법문을 아침저녁으로 1년 가까이 들었던 터라 선생님의 가르침에 아주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데 그 날 저녁 혼자서 선방에서 참선을 하고 있는데 선생께서 불쑥 들어오셨다. 그리고는 대뜸 보림삼관(寶林三關)에 나오는 화두를 하나하나 들면서 뜻을 물으셨다. 보림삼관은 선생께서 제창하신 세 가지 화두였다.

나는 선생에게서 배운 대로 답을 했다. 그러자 선생께서는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그 동안 공부한 힘을 다해 다시 서너 차례 답을 올렸다. 그러나 선생께서는 모두 아니라고 고개를 저으셨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대중들 앞에서 혼자 공부할만하다고 말씀하고서는 지금 와서 모두 틀렸다고 하니 깊은 나락에 떨어지는 것 같았다. 더구나 내가 올린 답은 경전에 나오기도 하거니와 선생께서 늘 말씀하시던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따지듯이 물었다. “그럼 지금까지 말씀하신 허공이나 성품은 다 뭡니까?” 그러자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그거 다 말마디다” 선생의 대답에 너무 놀라 몸이 위로 떴다가 다시 밑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동시에 뜻풀이나 문자로 깨달음을 구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됐다.

벌써 25년 전 일이지만, 그 후 살아올수록 쉬고 놓는 공부에 그 이상의 깊은 뜻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얻은 것 마저 내려놓아야 한다는 가르침은 지금도 어려움이 있을 때 마다 가슴에 새기는 삶의 나침반이 되고 있다.

김광하/작은 손길 대표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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