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화실에서 법을 청하다] 서울 구룡사 회주 아산 정우대종사
등록일 : 2026-10-20 동영상 
“중생 아픔을 내 아픔으로 받아들이며 포교했다”

1985년 남대문시장서 천막 구입
서초구 양재동에 법당 세워 전법
구룡사를 낙성한 ‘도심포교 전설’

통도사 주지, 군종교구장
해외특별교구장 등 주요소임 맡아
국내·외 포교활동 이끌었고
어려움 있는 지구촌에 구호활동


1985년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직접 천막을 사서 서초구 양재동(논현로 5길 31-11)에 천막 법당을 세우고 포교를 시작해 지금의 구룡사를 일군 ‘도심포교 전설’인 정우대종사가 구룡사 처소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1985년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직접 천막을 사서 서초구 양재동에 천막 법당을 세우고 포교를 시작해 1989년 지금의 구룡사를 낙성한 전설적인 도심포교 인물이 정우대종사(구룡사 회주, 홍법문화복지법인 이사장)다. 30대에 도심포교를 시작해 쉼없이 정진해 ‘한국불교 도심포교의 전설’이 됐다. 정우스님은 이제 70대 중반에 들어서 종단의 ‘어른스님’이 돼 ‘노스님’의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10월 초 미국 원각사로 날아가 촘촘한 법회일정을 구상하고 있었다. 추석을 앞둔 9월23일 구룡사에서 스님을 만나 40년 여의 포교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스님의 출가 인연이 궁금하다.

=숙세의 선업이 있었던 것으로 본다. 국민학교(초등학교) 4학년 때 소풍을 사찰로 갔는데 스님들의 모습이 너무도 거룩해 보여 나도 출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절 연혁을 들려주는데 마치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 듯 빨려들어 출가를 결심하고 실행했다.

-1980년대 한국불교 도심포교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당시만 해도 도심 포교당이 익숙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통도사 구하 노스님은 일제강점기에 도심 포교당 38곳을 세웠고, 광덕스님도 불광사 등 많은 사찰을 세워 포교활동을 했으니 내가 포교당 만든 건 일도 아니다. 강남 신도시 개발 등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했을 뿐이다. 허허벌판이었던 양재동에 천막으로 시작해 지금의 구룡사를 만들었다. 큰 시주보다는 많은 사람이 동참하는 불사를 했고 그 에너지가 모여 현재의 구룡사가 됐다. 한 삽 한 삽 뜨면서 포교했지 ‘포클레인’은 없었다.

-스님이 일군 도량과 부설기관은 어느 정도인가?

=대한불교조계종 통도사 분원으로 서울 포교당인 구룡사가 있고, 일산포교당 여래사, 문정동 분원 법계사, 용인별원 법계선원, 신대방동분원 장안사, 중동분원 서래사, 인천분원 보명사, 평택분원 지산사, 분당분원 연화사와 장안사, 평촌분원 보림사, 대전포교당 봉국사, 제천포교당 운조암, 미주 뉴욕 원각사, 미주아리조나 감로사, 캐나다 분원 구산선원, 호주 정법사, 북인도히말라야 설산사, 인도 부다가야 고려사, 인도 바라나시 녹야원이 있다.

부설기관으로 구룡사 구룡유치원, 분당 장안유치원, 평촌 구궁화 유치원, 성남 은솔 어린이집, 강남 선재 어린이집, 강남 압구정 아람 어린이집, 강남 지혜 어린이집, 서초 장미 어린이집, 서초 연꽃 어린이집, 서초 그랑자이 어린이집, 서초 양재 목련 어린이집, 관악 금강 어린이집, 관악 선봉 어린이집, 월간 붓다, 붓다 TV, 결혼상담실, 수미산세계여행사, 홍법문화복지법인, 서초구립우면동 초등키움센터, 서초구립네이처힐2단지 초등키움센터, 서초구립 내곡동 초등키움센터 등이 있다. 신시 컴퍼니와 신시 씨어터로 문화포교도 하고 있다.

-군 포교에도 큰 족적을 남겼는데.

=전생의 인연으로 어린 나이에 출가했지만 군대에 가서 보니 절이 얼마나 좋은 지 그 때 알았다. 불교 중대에 법당도 만들었고, 군대서 호국황룡사도 만들었고, 26사단에 가서 호국일월사도 건립했다. 석주스님을 모시고 1000명이 넘는 병사들에게 수계식도 했다. 석주스님을 부대로 모시는데 “바빠. 못 가” 하신 적이 없었다. 남양주(봉선사)에 사시던 운경스님도 부대로 오시라고 말씀드리면 한 번도 거절하신 적이 없었다. 도선사 혜성스님도 몇 번 오셔서 도와주셨다. 다 고마우신 분들이다.

-그런 인연으로 조계종 제3대 군종특별교구장(2013~2017)으로 활동했다. 기억에 남는 일은.

=경기도 파주 남북공동경비구역(JSA)에 무량수전(유엔사)을 세운 일이다. 유엔사는 2016년 7월 착공해 2017년 3월 낙성한 목조 건축물(법당 82.32㎡, 종각 9㎡)로, 고려시대의 양식인 수덕사 대웅전과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을 참고했다. 고려시대 맞배집 구조로 무량수전 법당을 짓고 ‘평화의 종’도 달았다.

-2007년부터 통도사 주지를 맡아 교구본사를 이끌었는데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했는가.

=주지 직함을 위해서 맡은 게 아니었다. 대중을 외호(外護)하기 위해서 주지직이 필요하고 일단 그 소임을 맡게 되었으니 오로지 직무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자리가 탐나서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이 내게 주어졌으니 오로지 맡겨진 일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정우대종사가 양재동 구룡사 앞에 섰다.

-2020년 7월에는 제3대 해외특별교구장에 임명돼 활동했는데 해외포교 계기는.

=계기는 없었다. 그쪽에서 목말라 하니 인연지었다. 1982년에 인도 성지순례를 단수여권을 만들어 혼자 순례하다가 부다가야에서 원력을 세워 1992년도에 3000평 땅을 만들어 사찰 건립을 돕다가 직접 나서면서 해외포교를 시작했다.

-미국 원각사도 창건했다.

=원각사는 2004년부터 미국에 건립한 도량으로 뉴욕주 오렌지카운티 샐리스베리밀즈의 32만평(105만 7850㎡) 대지에 세워진 미국 동부 최대의 불교사찰이다. 통도사 주지 취임 후 서울과 뉴욕을 오가면서 원각사 불사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2010년에 부처님진신사리탑과 청동석가여래좌상을 모셨고 대웅보전, 무량수전 낙성 등 한국 전통양식으로 지금까지 건립하고 있다.

-국내·외 구호활동에도 열심인데.

=중생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불교가 이 시대에 얼마나 필요한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 일을 하는데 구룡사가 결코 돈이 많아서가 아니다. 반드시 도움이 필요한 곳이기에 아끼고 쪼개서 나누는 것이다. (스님은 인터뷰 후인 10월12일 종단을 통해 네팔 수해돕기 성금 1억원을 전했다) 2019년 4월 강원도에서 산불이 났을 때도 1억 원을 후원했고 소년소녀 가장 돕기, 경로당 어르신 돕기, 초·중·고등학생 학자금 지원, 티베트 난민 돕기 등 사회의 어려움이 있는 곳을 매년 돕고 있다.


도심포교의 전설로 불리는 아산 정우대종사. 구룡사 법당에 섰다.

1952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난 정우스님은 홍법스님(전 통도사 주지)을 은사로 출가하여 1968년 통도사에서 월하스님에게 사미계, 1971년 구족계를 수지했다. 1974년 해인사 강원 졸업 후 1978년 오대산 월정사에서 탄허스님에게 화엄학을 수학했다.

서초구 양재동에 통도사 서울 포교당 구룡사를 건립해 도심포교 현장에서 활동했으며 11,12,13,14대 중앙종회의원과 1994년 총무원 총무부장을 역임하고 2006년 통도사 보광선원에서 수선안거 후 2007년 통도사 주지, 2013년 군종특별교구본사 주지, 2017년 총무원 총무부장을 역임했다. 2017년 제29회 조계종 포교대상 종정상을 수상했다. 2023년 조계종 최고 품계인 대종사 법계를 품수했다.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