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남을 위하는 부처님 마음’ 간직
번호 : 31020     조회수 : 24170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05-03-07 오전 10:58:07    
황수경/ 동국대 강사

불교에서는 항상 지혜와 더불어 자비를 이야기한다. 선학(禪學)을 전공하고 가르치는 학자로서의 길을 걷고 있지만 내 생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덕목은 보살행의 실천이다. 부처님께서 학자가 아니셨던 것처럼 만일 이론 뿐 자비를 실천하는 수행이 없다면, 더군다나 ‘불교’가 학문으로서는 생명력을 잃게 되리라고 스스로 경책하는 이유다.

불자가 된 것도 결국은 사람에 대한 관심과 어린 시절 가슴 아픈 기억으로부터 비롯됐다. 고(苦)에 대한 첫 인식은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간다. 초등학교가 의무교육이 아니었던 시절이라 모든 학생이 육성회비(요즘의 등록금)라는 것을 납부해야만 했었다. 그런데 한 반에 반 정도의 학생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 기한 내에 육성회비를 내지 못했다. 그러면 학급 담임교사들은 제 시간에 내지 못한 친구들을 호명하여 자리에 세우시고 야단쳤다. 그 다음 날도 내지 못하면 손바닥을 맞거나 하고, 계속 못 내는 십여명의 친구들은 수업 도중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당시 1, 2학년이었던 내 눈에도 돈을 못내는 것은 어린 친구들 잘못이 아니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운이 좋아 미납자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나도 그 명단에 속할 수도 있다고 가정해 보았다. 끔찍했고 슬펐다.

몇몇 친구 집에 가 보면 정말 어렵게 살고 있었다. 그 중에는 성실하고 공부 잘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이런 친구들의 고통은 사회의 불공정함에 대해 강한 아픔을 남겼고, 이후에도 나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집안이 어렵거나 소외되는 친구들에게 마음이 기울어지곤 했다.


‘나보다 남을 위하는 부처님 마음’ 간직

재소자 교화 등 실천하는 삶 위해 노력


중.고교 시절에는 사회현실을 알게 되면서 내 자신이 사회를 바꾸겠다는 원을 세우고 대학에서 역사와 대학원에서 교육사회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그 이론들은 나 자신이나 사람들에게 절실한 삶의 변화와는 여전히 거리가 있었다. 고민 끝에 직접 소외의 문제를 다루는 사회복지를 공부하려고 미국 유학길도 자처했다. 사회복지 역시 제도는 발달해 있었지만 뭔가 근본적인 것, 정신적인 면이 결여되어 있었다. 이렇게 가슴 밑바닥부터 회의를 느낄 때 본격적으로 불교를 접하기 시작했다.

중생이 바로 본래 부처이자 진리라는 것, 그리고 마음이 모든 것의 근본이라는 불교의 가르침이야말로 그 동안 해결되지 못한 고(苦)의 원인과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살아 있는 진리였다. 그렇게도 책과 공부를 좋아하던 나였지만 다른 책은 재미없어서 못 볼 정도가 되었을 때 다시 박사과정에서 선학(禪學)을 전공하기로 했다. 그러나 자칫하면 이론을 위한 이론에만 그치거나 실천과는 거리가 멀기 쉬운 것이 학자의 길이다.

불교의 가르침이 이론으로 살아있으려면 생활 속의 실천이 병행되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원래 관심을 가지고 있던 교도소 교화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게 됐다.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 많은 헌신을 요구하고 기존의 가치관과 태도를 실제로 바꿔야 행할 수 있는 일이었다. 보람 못지않게 어려움이 많았고, 무엇보다 시간을 확보하는 일이 가장 갈등이 되곤 한다. 그러나 불교의 지혜 뿐 아니라 자비심과 보살행도 시간과 노력을 들여 갈고 닦아야 하는 수행임을 경험하게 되었으며,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자신의 모습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됐다.

세계적인 석학이며 유수한 저작들을 남기신 신라의 원효스님은 그 시대 일반 중생들과 함께 하려 하신 그 실천에서야말로 가장 무서운 스승 중 한 분이다.

깨달음을 갈구하며 묻는 사람에게 “나보다 남을 생각하는 마음, 그 마음이 마침내 온 우주와 함께 하는 부처님의 마음이다”라고 하신 어느 스님의 말씀은 오늘도 이기적인 나의 아상을 참회하게 한다. 어떤 공부와 수행을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중생이 아닌 부처의 길이요, 독생(獨生)이 아닌 공생(共生)의 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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