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 영 자(원주 성문사 신도)
제가 결혼한지도 어언 21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철없던 제가 부모님 뜻에 따라 21살에 신혼의 꿈과 소박한 이상을 그리며 가정을 가졌지만 현실은 참담하고 절망뿐이었습니다. 남편은 결혼하기 이전부터 몸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져 갖은 질병에 시달리며 이미 한의원과 병원을 다녀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어린 저는 결혼과 함께 눈물과 한숨으로 하루하루를 지내야 했습니다. 심지어 겨울이면 물을 일부러 얼려놓고 남 모르게 얼음을 치면서 울기도 수없이 했습니다.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렇게 7년이 지난 어느날 우연히 길을 가던 사람이 빨리 절을 찾아가라고 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교회를 열심히 다녔고 아이들만 자라면 성당에 찾아갈 것을 마음 속으로 간직하고 있던 터라 그 보살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습니다. 때문에 보살님의 간청을 한 마디로 거절해버렸습니다. 보살님은 아이들은 내가 낳았다고 나의 자식이 아니라며 3남매 모두 부처님 자식이요 제자임을 때가 되면 알 날이 있을 것이니 꼭 절을 찾으라는 간곡한 부탁을 하고 돌아갔습니다.
그후 1975년 2월 경의 일이었습니다. 구인사라는 절은 본인 마음에 따라서 기도만 열심히 하면 구인사를 가는 중에도 병이 낫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도 나으며 그 이외의 모든 소원도 다 이루어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믿어지지 않았지만 며칠을 두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있을 때라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고 싶은 심정에 문득 구인사를 찾아가보고픈 마음이 생겼습니다.
사회에서 치료해서 낫게 하려고 해볼 만큼 노력해보았지만 그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되고만 병든 남편을 구인사로 떠나보내는 나의 심정이 얼마나 쓰리고 아팠는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었습니다.
남편은 삼일기도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그전에는 구인사도 절이니까 가게 되면 편히 휴식을 취하다가 오는 곳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잠 한숨 못자고 기도만 하다가 왔다고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 남편을 보며 ‘그런 곳도 있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나의 마음은 한편으로는 교회로 끌리고 한편으로는 절로 끌리는 등 양쪽으로 갈라져 심한 갈등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구인사를 선택한 이상 이 생명 다할 때까지 변치 않고 믿겠다며 열심히 원주 성문사에 다녔습니다. 그러나 저는 남편이 법회에 갈 때마다 언제나 어린아이들 핑계를 대고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본의 아니게 타인으로 인하여 생활의 어려움 속에서 아껴 모아두었던 전 재산 몇백만원을 잃었습니다. 그때 그 금액은 집 한 채를 장만할 만큼의 거금이었습니다.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분하고 억울한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남편에게 ‘그렇게 열심히 절에 다녔는데 왜 이렇게 큰 손해를 보느냐’고 따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처님을 더욱더 의심하고 원망하면서 불교신앙을 포기하라고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그런 일이 있고난 며칠 후 고이 잠을 자던 남편이 아이 이름을 부르며 급히 저를 깨우는 것이었습니다. 음성이 벌써 본인의 음성이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깜짝 놀라 일어나보니 오른쪽 몸이 마비상태가 되어 있었습니다. 마구 울며 모든 일을 다 잊고 정신차리라면서 깨우는 동안 충격을 받은 내가 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쓰러져 있는 나의 귓가에 어렴풋이 소리가 들렸습니다.
“정신 차려. 나는 이미 끝났으니 어린 자식을 생각해야지.”
이렇게 남편이 호통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악물고 정신을 가다듬어 병원으로 옮기려 하자 남편이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이 2시 15분인데, 통행금지인 이 시간에 병원 가면 응급실뿐이고 병원에 가면 나는 죽는다.”
그러면서 제 손을 끌어다 가슴에다 얹고 ‘관세음보살’을 염송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눈물과 콧물이 얽히고 설켜 한없이 울면서 남편의 가슴에 손을 얹고 시키는 대로 관세음보살을 찾았습니다. 관세음보살 염송을 하는 동안 남편은 수없이 정신이 들락날락하더니 4시 20분쯤 정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일어나겠다고 하면서 일어나더니 ‘쿵’ 하고 다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또 다시 가슴이 철렁하여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져내리는 기분이었습니다.
다시 기를 쓰며 기도를 하였습니다.
“부처님이 진정으로 계시다면 저에게 보여주십시요. 남편을 살려주시면 믿고, 아니면 이 밤이 새는 대로 하나님을 찾으렵니다.”
이렇게 눈물바다를 이루며 관세음보살을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순간 갑자기 바늘 구멍만한 빛이 보이더니 점점 커지며 저를 한의원으로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발을 땅에 디뎠지만 디뎌지지 않았고 서 있었지만 서 있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정신을 가다듬고 ‘관세음보살’을 외치며 차를 타고 한의원을 찾았습니다.
한의사는 맥을 보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엄청난 충격과 놀라움이었을 텐데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 어떻게 여기까지 올 생각을 하셨습니까?”
그때 저는 분명하고 자신있게 대답했습니다.
“부처님은 정말 우리들 곁에 계십니다. 선생님 저희는 구인사에 다닙니다.”
그랬더니 한의원 선생님께서도 ‘저도 열심히 절에 다닙니다’ 하고 반가워하시며 정성스럽게 약을 지어주셨습니다. 며칠 후 남편은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일년에 몇 재씩 보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큰일나는 줄 알았던 남편, 마음과 몸이 허약할 대로 허약하던 남편이 부처님을 열심히 믿으며 용맹정진 속에 건강한 모습을 되찾아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는 중 저에게도 신경통이 찾아와 일어서지도 못하고 일주일 내내 누워만 있어야 했던 일이 생겼습니다. 그때 저는 더욱더 간절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빌었습니다.
“부처님, 저는 이제 제 남편이 절에 가는 것을 탓하지 않고 열과 성의를 다하여 모시겠으니 어린아이들을 보살펴주시고 저에게도 건강한 다리를 주십시요.”
열심히 기도하면서 일심으로 염원하자 부처님께서는 또 한번 저의 간곡한 소원을 들어주셨습니다. 수많은 고통과 좌절 속에서도 영험하신 부처님 은덕과 관세음보살님의 위신력이 있었기에 저는 이렇게 새 삶을 찾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희 가족은 생업인 장사를 하면서도 남들 쉬는 날 일하고 매달 법회날을 휴일로 정해 온가족이 법회에 참석하고 열심히 부처님을 섬기는 동안 크고 작은 모든 소원을 지금까지 이루어왔습니다. 남편은 건강한 몸을 되찾고 집안의 어린 아이들도 모두 건실하게 성장하여 이제는 의젓한 대학생, 고등학생,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모두가 부처님의 자비원력으로 성취된 것임을 굳게 믿으며 앞으로도 관세음보살님과 함께 살아갈 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어려움 속에서 빛을 찾아 방황하며 고민하는 모든 사람에게 부처님의 가피력이 무한함을 알리고 그들을 부처님의 품으로 인도하는 데 미력한 힘이나마 다할 것을 부처님 전에 감히 서원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