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종 숙(천안 만수사 신도)
소백산 연화지에 자리한 구인사를 10여 년 다니는 동안 저의 신앙은 깊어만갔습니다. 구인사 신도라는 자랑스런 긍지를 가짐과 동시에 일상생활을 부처님께 의지하고 종정 큰스님의 가르침을 통해 나날이 편안한 마음으로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기쁜 것도 힘든 것도 모두 부처님의 뜻이라 생각하니 살아가는 마음은 늘 평안하고 즐거워 무슨 일이든 잘 풀려나갔습니다. 또한 스님들이나 노보살님들이 들려주시는 말을 한 마디도 거역하지 않고 실행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 노력 덕분에 기도에서 오는 갖가지 영험은 저를 더욱 깊은 불법으로 인도합니다.
요즘 저는 저 자신에 대해 남 모르는 작은 희열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물론 다른 신도님들의 영험담은 저도 겪은 일들입니다. 부처님의 가호로 뇌졸증을 앓던 남편은 혼자 등산을 할 정도로 회복됐고 가정일들은 모두 원만히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 자리에 쓰려는 것은 그런 영험이 아닙니다. 단지 제가 기도할 때 조그만 소원을 부처님께 빌고 그 원이 성취됨으로써 느껴지는 마음의 희열을 여러분들에게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어느 해인지는 모르나 정월 초이튿날 새벽같이 집을 나왔는데, 사방에 눈이 하얗게 덮혀 있고 간간히 몰아치는 눈바람 속에 구인사를 찾아나섰습니다. 새벽 7시에 집을 나와 다섯번 차를 갈아 타고 오후 3시에 구인사에 도착했습니다.
그날 역시 신도님들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이 기도실 저 기도실 기웃거려도 들어설 틈이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접수실로 되돌아와 문 앞에 신발을 치우고 몸만 의지하여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자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기도가 될 리가 없었습니다. 드나드는 신도님들의 조심성 없는 발길, 얼굴을 스치며 지나는 옷자락이 저를 기도할 수 있는 평안한 마음을 갖지 못하게 했습니다.
예산에서 100리 길을 가야만 천안회관이 있습니다. 천안지회에서 정기법회, 토요법회 합쳐서 아무리 정성껏 다녀도 한달에 두세번 다니기가 힘들기에 마음먹고 온 구인사에서의 기도 욕심은 더욱 간절했습니다. 큰스님께 세배문안 올린 것으로 만족하자 하면서 하루 저녁을 그렇게 새웠습니다. 발길에 채이기도 하고 옷자락에 스치기도 하는 문 앞에서…
다음날은 아침에 내려가는 신도님들이 더러 있어 문에서 서너 걸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예산에서 몇 달을 벼르고 왔는데 기도 한번 제대로 못하고 집에 갈 생각을 하니 속이 몹시 상하고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주위 여건은 기도는 고사하고 말다툼까지 벌어졌습니다.
12시가 넘자 몇 분의 보살님들이 공양을 하는데 김치냄새가 확 퍼져 주위의 신도들이 하나같이 눈쌀을 찌푸렸습니다. 그러자 한 보살님이 ‘아유, 김치 냄새야’ 하고 퉁명스럽게 말을 하자 공양하시던 분들이 미안하다는 기색도 없이 ‘당신은 김치 안먹고 살아’ 하는 통에 말다툼이 일어났습니다. 그 모양을 보는 저는 속에서 불이 났습니다. 주위 사람을 마음으로 흉보고 이상스럽게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시간도 2시에 가까워오고 마음은 조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망연히 있다가는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중에 문뜩 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부처님께 기도할 수 있는 능력을 줍시사 애원해보자.’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정좌했습니다. 두 손을 합장하고 부처님께 애원하는 저의 마음은 정말 막혀 있는 길에 몰린 애처로운 짐승의 심정과도 같았습니다. 눈을 감고 ‘저에게 기도할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울부짖듯 부처님을 세번 불렀습니다. 그리고 관세음보살을 세번쯤 불렀을 때 제 배의 좌우와 중심에 찌르륵 찌르륵 전기가 오는 것을 느끼며 시끄럽던 소리가 저 멀리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저는 무엇엔가 이끌려 편안히 떠오른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 이것이 삼매에 든다는 것인가’ 그때의 무아지경, 심오한 불법으로 이어지는 순간, 그때의 그 심정은 글로써는 정확히 표현하기 힘듭니다. 짧고도 아쉬운 한 순간이 지났을까요. 눈을 떠보니 아침 예불시간이었습니다. 머리 속은 맑고 경쾌했으며 마음은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누구나 이렇게 간절히 원하면 원하는 것을 들어주신다는 진리를 또 터득했고 그뒤로는 요란한 기도소리나 떠드는 소리는 기도하는 데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 힘이 생겼습니다.
저는 구인사를 부처님 법의 친정으로 여기며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반드시 계를 지키며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글이 짧아 신문은 물론 서적을 많이 읽지 못해 남의 앞에서 말할 줄은 몰라도 남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참된 천태종의 신도로 거듭 태어나기를 원하고 원합니다.
10여년의 신앙생활을 되돌아보니 나의 소원을 이루는 기쁨보다는 기도에서 오는 희열과 기도 가운데 느끼는 갖가지 많은 영험이 저를 변치않는 불제자로 성숙시키지 않았나 싶습니다.
종정 큰스님 전에 작은 영험을 고백한 것을 부끄러워하면서 더욱 지도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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