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발자취 인도 성지순례는 그 어디에서도 배우지 못했던 삶의 양식과 감동의 걸림 없음을, 그리고 죽음을 마음껏 생각하게 해 주었다. 평소에도 생과 사가 결코 둘이 아니라는 큰 진리 앞에서조차도 생각의 실타래가 감겼다 풀렸다 할 정도였으니, 인도 성지순례는 나에게 말만 들어도 설레고 흥분된 단어였다.
인도는 광활한 평원을 가진 끝없는 대륙이다. 11억 인구, 다양한 문화와 전통을 지닌 복잡하면서도 신비스런 나라, 물질적으로 가난하고 지저분해 보이면서도 정신적으로는 풍족하고 넉넉한 사람들, 모든 것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자주 독립성이 강한 나라, 종교가 생활의 전부여서 집집마다 제각기 신을 모시는 그런 나라, 한번 방문한 사람은 꼭 가 보고 싶은 나라!
인도에서의 첫 일정은 아그라 성과 세계 문화 유산이면서 건축 양식이 정교한 타지마할이었다. 14번째 출산 끝에 죽은 아내를 위해 사랑의 힘으로 샤자한이 지었다는 타지마할 묘당은 부처님의 4대 성지 다음으로 관심이 많았던 곳이었다. 건물 모양이 기하학적이며, 인도 땅에서 나지 않는 눈부신 하얀 대리석들은 보석과 섬세한 조각으로 하나하나 이루어져 있어,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타지마할이 우리 석굴암의 화강암의 그 미묘한 아름다움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안내자의 말에 뿌듯함과 긍지도 느꼈다. 인도 문화는 히말라야 산맥을 두고 우리가 알고 있는 아시아와는 매우 다른 문화를 계승한 것이 특징인 것 같다. 인도는 보는 이에게 시간의 개념이 초월한 곳 같다.
인도의 수도 델리 시내에서 간디의 화장터를 관람하고, 한국 식당에서 김밥으로 떼운 후 특급 야간열차를 타고 가야로 출발했다. 가야에서 ≪법화경≫의 설법지인 영축산을 참배했다.산을 올라가는 길이 약간 가파르고 경사 길이었지만 가슴은 시원했다. 부처님 제자들과 함께 공양 올리시며 법문하셨다는, 영축산의 정상을 같이 오른 모든 일행은 감회가 새로웠다. 펄럭이는 오색 깃발에는 8만 4천 경전이 찍혀 있어 세상에 불법을 널리 포교한다는 깊은 뜻이 너무 수승해 나는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영축산을 내려오며 불교 최초의 사원 죽림정사를 방문했다.
`부다가야`라는 말만 들어도 들뜨고 기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성지인 그곳에서 새벽 4시 30분쯤 부처님께서 성도하셨다는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기도를 하였다. 그때 참으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횐희를 느꼈다. 부다가야에서 니란자라 강을 건너다 사람들이 시체를 들것에 메고 화장터로 향하는 것을 보게되었다. 그때 일행 모두는 발걸음을 멈추고 `죽음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하였다. 세상은 항상 변한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의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했기에 `허망함을 허망함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보드가야 대탑 주위에서 젖먹이 아이까지 포함한 여인들의 구걸하는 모습은 처음에는 신기했으나 그 집요함에 나중에 짜증이 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그들이 자비와 인욕을 공부시킨 선지식이었다. 그곳에 있을 때는 그런 사실을 몰랐던 내 무지가 갑자기 부끄러워진다.
이날 오후 열린 `칼라차크라`에 참석할 수 있는 것은 불자인 우리에게는 더 없이 뜻깊은 자리였다.
티벳뿐 아니라 전 세계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집전하는 칼라차크라에 참석을 하다니….
두 번의 보안검색을 거친 삼엄한 경비를 뒤로 하고 우리 일행은 정우 스님의 특별한 배려로 본부석 왼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달라이 라마의 부드러우면서 소탈한 웃음과 쉽고도 따뜻한 유머는 여행의 피로를 녹여 주었다. `자리이타(自利利他), 육바라밀(六波羅蜜)을 행할 것`을 당부하시며 `세계평화와 인류의 행복`을 기원해 주셨다. 달라이 라마는 우리가 평상시에 잊고 사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신다. 그 칼차차크라는 전 세계인의 정신적 지도자라는 위엄을 여실히 느끼게 하는 법회였다. 한국에 꼭 오셔서 다시 한 번 높은 법을 듣고 싶다는 것은 나 하나만의 욕심이 아닐 것이다.
바라나시 근처의 녹야원은 부처님께서 `사성제`와 `팔정도`를 최초로 설법하신 곳이다. 부처님께서는 당시 성도지에서 10일 정도 걸어 이곳에 오셔서 설법을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최고의 성지로 꼽히기도 한단다. 이날 저녁에 우리는 갠지스 강에서 배를 탔다. 갠지스 강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한번쯤은 둘러보아야 할 곳이기도 하다. 이 강에 그날 저녁 서울에서보다 유난히 크게 보인 음력 보름달이 떠올랐다. 우리 일행은 배 3척에 나누어 타고 ≪반야심경≫을 봉독하며 갠지스 강의 화장터로 향했다. 화장터 에 당도하니 그야말로 숙연해지면서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화장터에 서는 9구쯤 화장하고
있었는데, 그 중의 한 시신은 화장대 위에서 팔을 주욱 뻗어주먹이 보였다. 이곳 화장터에는 식구들 중 남자들만 참석한다. 그리고 금액이 많음에 따라 장작을 높게 많이 올리고, 머리와 등뼈는 제일 늦게 탄다는 사실을 정우 스님의 설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성지순례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을 때 식구들에게 갠지스 강 화장터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랬더니 "정말 그 옆에서 아무렇지도 않더냐?"라며 너무나 놀라는 눈치다. 당당한 태연함으로 어느새 부처님께서 이렇게 나를 지탱해 주신 것 같다. 눈으로뿐 아니라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소중한 여행이었다.
부처님의 나라 인도 순례, 그곳의 4대 성지 중 부처님의 고향이신 카필라 성을 마지막으로 방문하였다. 성을 돌아보고 떠나려 할 때 내 눈에는 나도 모르게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부처님의 가족들이 머물렀던 그 자리에서 생각하니 흙 한 줌, 나무 한 그루, 바람결 하나까지도 말할 수 없이 정답게 느껴졌다. 이어서 마야부인당과 목욕터를 둘러보고 경비행기로 히말라야가 보이는 휴양도시 포카라로 이동했다.
네팔은 인도보다 약간 깨끗해 보이기는 하지만 GNP는 인도보다 낮다고 한다. 안나푸르나를 보기 위해 사랑코트로 간단한 트레킹을 갔을 때, 산상에서 ≪반야심경≫을 봉독했다.
카트만두, 스왐부나트, 타멜 거리, 고대 왕궁에서 쿠마리 사원까지 둘러보며 전율이 솟았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경유지인 태국 방콕의 높은 건물, 네온사인이 인도·네팔에 비해 오히려 촌스러운 것 같은 기분이 든 것은 왜일까? 인도보다 물질적으로 풍요해 보이는 방콕이 내면적인 알맹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느낌은 또 왜일까?
육체적으로 이번 여행은 인도 도착 사흘째부터 목이 쉬어 힘들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는 항상 환희 법열과 성숙한 안목, 깊은 사고력, 두터운 신심, 육바라밀의 소중함, 따뜻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비록 이 여행이 14일이었지만, 우리 성지순례단 80여명 모두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다녀올 수 있었던 것, 부처님의 가호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우리 2호차에 유일한 천주교 신자분이 동참하셨는데 그 분의 용기와 지혜로움에 존경의 박수를 보내며, 탄성과 감동, 자신의 세계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 주신 정우 스님께 감사 인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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