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세인트루이스(St. Louis) 불국사(Buddhanara Temple)에 가는 날이다. 내가 있는 롤라(Rolla)에서 차로 1시간 40분 정도의 거리라 아내와 난 아침 일찍 서둘렀다. 매주 불국사에 가시는 이웃 분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나에게는 제법 부담이다.
일요일 11시 법회 시간에 겨우 맞춰 들어가서는 선각 스님(불국사 주지 스님)이 주관하시는 법회에 참석한다. 임신한 아내가 절에 오면 마음이 편하다 하니 시간이 허락하면 와야 되지 않겠는가?
법회 후 선각 스님은 다음주에 있을 부처님 성도재를 대대적으로 홍보하셨다. 그때는 그 말씀이 나에게는 공염불일 뿐이었다. "이번 주에 왔으니 다음 주는 오기 힘들지요." 아내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힘들 듯하다고 대답한 뒤 절문을 나섰다. 집에 오는 길에 아내도 자신의 몸 상태를 거론하며 안 가는 쪽으로 결론을 잡았다. `다행이다. 나처럼 세상을 훤히 꿰뚫고 있는 이가 밤샘 수행이라니….`
며칠이 흘렀다. 매주 절에 가시는 이웃이 우리 집을 방문했다. 선각 스님의 성도재 공지문을 전하려고 온 것이었다. 아내는 스님의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참여하자고 한다. 자신의 몸 상태는 좋으며 그 날 별 무리 없이 참관만 한다면서 나를 설득한다. 사실 당신이 좀 힘들겠지요? 하면서.
`그렇다! 집사람은 몸이 불편해 적당히 참관하다 몸을 뉘이겠지만, 난 뭔가? 밤새 꼼짝 않고 앉아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해야 되지 않나?` 한편으론 색다른 경험이 될 듯도 싶다. `나의 체력을 점검해 볼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결국 부처님의 성도재에 참여하기로 하고 그날이 되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오늘은 12월 7일 부처님의 성도재 행사가 있는 날이다. 아침부터 심신을 가다듬고서 오늘밤 있을 큰 행사에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절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7시, 먼저 오신 이웃집 식구와 저녁을 먹고 행사준비를 하다보니 오늘 같이 참여할 외국인들이 몇 명 들어온다. 폴 부부와 대니얼이라고 한다. 그들과의 짧은 대화를 마친 뒤 곧이어 우리는 참선수행에 들어갔다. 그때가 밤 9시. `내일 새벽 6시 30분까지 기필코 버텨야 하는데…`
선각 스님은 정말 자상한 분이셨다. 초발심자인 나와 같은 불자를 위해 기본 참선자세를 가르쳐 주셨다. 가부좌에 단전호흡을 하는 것이다. `흠, 쉬운 자세가 아니군!` 30분 참선에 10분간 요가나 보행참선을 하니 그 길고 긴 밤이 서서히 가고 있었다. 원래 한국 절에서는 50분 참선에 10분 휴식으로 12시간을 지속한다고 하는데 스님은 불쌍한 우리가 행여 참선에 입문하기도 전에 좌절할까 싶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해 놓으셨다. 자정이 넘어 그 옛날 부처님이 드셨던 유미죽 공양 시간이 있었다. 우유와 쌀로 만든 유미죽….
이날의 유미죽 공양으로 난 세인트루이스(St. Louis) 불국사에서 일약 스타가 되어 버렸다. 그 옛날 부처님께 유미죽을 공양했던 `수자타`라는 여인의 역할을 내가 했기 때문이었다. 선각 스님은 나에게 앞으로 지을 법명을 수자타로 하라신다. `이걸 어쩌지. 난 벌써 용심(勇心)이란 불명(佛名)이 있지 않은가?` 용심이란 불명은 군대시절 군법당에서 받은 것이다. 워낙 많은 군인들 때문에 거의 무작위로 불명을 받은 셈이었다. 그래도 나의 첫 번째 불명인데…. 스님은 여러 개의 법명도 괜찮다고 하신다. `이런 게 다 부처님 인연이겠지. 그래 이제부터 난 용심이며 수자타다.`
유미죽 공양이 끝나고 차를 마시며 성도재에 관한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외국인들도 있어서 영어로 진행되었다.
난 솔직하게 참여하지 않으려다 아내를 위해서 참여했고, 참선에 대해선 잘 모른다고 했다. 솔직히 30분 동안 마음을 집중하기가 무척 어려웠고 마음을 비우기는 더욱 힘들었었다. 좋은 말들이 오고간 뒤 우린 다시 참선의 세계로 돌아갔고 매번 다른 주제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중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거의 마지막 참선에서 다루었던 큰사랑이었다. 스님은 각자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한 사람을 떠올린 후 곰곰이 왜 싫어하는지를 생각해 본 뒤 그것을 승화시켜 그 사람을 사랑해 보라고 하신다. 난 실험실 동료인 인도 친구를 떠올리며 요 근래 갑자기 그 친구가 싫어진 연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 마음 속에는 질투가 자리잡고 있었다. 내 스스로 나에게 정말 어울릴 것 같지 않던 `질투!`. 그것이 나의 마음을 혼미하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부질없이 그 친구를 미워했던 것이다. 이제 인도 친구를 큰사랑, 아니 작아도 상관없는 사랑으로 마주 대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도 부처님이 나셨던 인도에서 오지 않았는가?
이번 성도재는 정말 나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 주었다. 수자타라는 법명도, 불교를 이해하는 외국인과의 만남도, 그리고 인도 친구를 다시 사랑하게끔 한 것 등 말이다. 이 모든 게 부처님의 큰사랑 덕분이요, 이를 실천한 선각 스님의 노고가 크다 하겠다.
"선각 스님, 고맙습니다. 성불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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