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섭(그래픽 디자이너)
며칠 전 평창동 키미갤러리에서 전시를 보았다. ‘HAPPY’란 제목으로 열린 기획전시였는데 다들 행복이란 키워드를 조형화 한 작업들을 선보이고 있었다. 행복을 그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도대체 가능할까? 나는 작품들 사이로 지나면서 이런 저런 궁금증을 떠올렸다. 이층 전시실로 올라가니 전망이 탁 트인 조그마한 베란다를 끼고 있는 야외카페가 있었다. 그곳에서 산들을 보고 눈 아래 풍경을 보는 즐거움을 행복처럼 향유했다. 정작 행복은 이곳에 있었다. 그 조망의 시선이 기꺼이 허용되는 장소에서 숨을 고르고 사방을 둘러보면서 말이다. 그러한 잠시 내 시선은 벽에 걸린 몇 점의 작품들에 가 닿았다. 그래픽 디자인작품이며 캐릭터를 이용한 산뜻하고 선명한 그림 몇 점이었다. 그것은 이기섭의 ‘마우미마음이’라는 캐릭터작업이었다. 흡사 ‘스마일’캐릭터를 닮은 얼굴, 좌우로 뿔처럼 달린 돌기가 자라난 모습, 그리고는 하트 형상이 뒤에 배경처럼 자리하고 부처님 얼굴이 가운데에 들어와 있는 그런 그림이었다. 아마도 마음을 형상화한 캐릭터인 듯 하다.
동국대서 ‘禪’ 공부
“웃음: 웃을 일이 많은 사람은 행복합니다. 웃음은 웃음을 낳고 꼬리를 물고 번져 갑니다. 점점 더 웃을 일이 늘어만 가지요. 선(禪)은 그렇게 우리 곁에 와 있습니다.
마음: 마음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는 위험합니다. 이러한 교육은 우리 마음 밖에 악이 존재한다고 믿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지요. 악은 언제나 우리 마음속에 폭넓게 존재합니다. 그것은 바이러스처럼 공기 중을 떠돌며 우리 몸 속에 잠복해 있다가 면역성이 떨어질 때면 어김없이 모습을 나타냅니다. 스스로 악이 싫다면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이러스를 치료할 백신을 마음속에 놔야 합니다. 가능하면 재밌게 말입니다.
마음이: 이 아이의 이름은 마음이다. 부드럽고 따스한 본성을 가지고 있지만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날카로움도 같이 가지고 있지요.” 나는 작가의 글을 편하게 읽고 있다.
작가의 약력을 보니 더욱 흥미롭다. 이 작가는 홍익대학교에서 섬유미술을 전공했고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으며 개인 디자인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면서 현재 동국대학교대학원 선학과에 재학 중이었다. 선을 공부하는 그래픽 디자이너인 셈이다. 나는 그에게 전화를 했고 우리는 인사동에서 만났다.
그는 독실한 불교신자다. 자연스레 불교공부, 선에 대한 관심이 대학원 진학을 부추켰으리라. 그런데 막상 대학원에 진학하고 보니 무엇보다도 경전을 봐야하고 원전을 읽어야 하기에 어학공부, 한문공부 때문에 힘이 든다며 그는 웃으며 말한다. 그 표정이 무척 맑다.
그는 디자이너로서,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입장에서 불교교리, 텍스트를 어떻게 대중에게 쉽고 편안하게, 특히나 아이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 까를 고민해보고 있다고 말한다.
익숙한 매체인 그래픽이미지를 통해 부처님 말씀을 자신만의 필터로 해석해서 재구성하는 일이 작업인 셈이다. 물론 이런 작업은 이제 시작하는 단계고 그 길은 아직 멀고 힘들어 보인다고 말한다. 그는 현대 디자인과 선(禪)이 공유하고 있는 점에 주목한다. 나로서는 바로 그 지점에 흥미가 발동했다.
디자인과 선의 공통점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최소한의 본질을 찾는다는 점에 있다. 불필요한 것을 배제하고 본질로 육박해 가는 점이 그렇다. 간결, 정제, 비움이 그것이다.
‘적을수록 많다’는 20세기 디자인이 추구했던 기계미학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가장 잘 표현해주는 디자인 경구다. ‘장식이 적을수록 의미는 풍부해진다.’, ‘형식을 절제할 수록 본질에 가까워진다’등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이 말은 절제된 형식과 간결한 조형언어를 통해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실현하고자 했던 이들의 염원이 깃들어 있다. 최근 이러한 초기모더니즘디자인의 이상이 새롭게 해석되고 계승되고 있음을 본다. 모던 디자인이 개발한 시각 언어의 효율성과 정보 전달력에 주의를 기울이며 이를 디지털매체에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경향이 그것이다. 그런가하면 과잉 소비 사회의 병폐를 지적하며 지속 가능한 성장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 생태주의 디자인 논의에서도 ‘적을수록 많다’는 말은 매우 매력적이다.
간결-정제-비움이 핵심
지금의 캐릭터를 이용한 불교교리의 대중화 전략은 무엇보다도 사람들에게 자연스런 호감을 갖게 하고 시각적인 친밀감을 동반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그의 그림은 노골적인 종교적인 내음이 지워져있다. 그저 편하고 밝고 산뜻한 디자인이다. 그러나 그 안의 내용을 곰곰이 보고 읽다보면 저절로 경전의 한 페이지를 접하는 느낌이다.
“부처님! 부처님 마음은 영원히 변치 않으실 거죠? 마음아!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아무것도 없단다.”
“마음에 파도가 밀려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거야”
이기섭은 ‘마음이’이라는 아바타를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특히 아이들에게 쉽게 다가가 소통하기를 원한다. 그래픽디자인, 이 캐릭터 작업은 바로 그러한 지름길이다. 그는 불교 색을 줄이고 대중성을 중요시한다. 근본 텍스트는 부처님말씀이지만 우선은 아이들이 혹은 어른들에게 캐릭터를 좋아하게 한다. 그렇게 캐릭터와 친해지면서 관심 있게 바라보고 글을 읽다보면 그 안에서 평범한 진리처럼 다가오는 부처님 말씀을 자연스레 발견하게 하려는 배려이다. 아울러 동심의 세계야말로 선의 세계와 연결되는 것이라는 믿음 역시 자리하고 있음을 본다.
“동심을 다시 찾는 순간 우리는 작은 발견에도 기뻐하고 권태와 슬픔과 불행을 주는 나쁜 습관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세상엔 전쟁도 폭력도 잔인함도 사라질 겁니다.”
법음 담은 캐릭터 인상적
그의 그림 속에는 아이들의 얼굴이 자주 등장하고 피에로 등 서커스단원도 출현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어린 달마상이다. 어린아이들에게 불교의 교리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시각이미지의 힘, 캐릭터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디자인이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간결하고 정확하며 강력하게 전달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그러니까 디자인이란 소비자에게 강력하게 어필하는 힘이 생명이다. 따라서 디자인은 무엇보다도 소비자의 심리상태에 겨냥되어 있다. 그래서 그는 특히 사람의 마음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디자인 영역에서의 필요에서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삶의 공부가 마음공부라고 생각한 데서 비롯된다. 그래서 그는 사람의 마음을 알고 이해하기 위해 공부하기 위해 선학원에 간 것이다. 자연스레 작업 역시 그 마음이 키워드가 되었다. 마음이는 그래서 탄생했다.
“나의 가장 큰 관심은 마음이다. 나는 내 마음에 나타나는 열 생각들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업들을 보며 나도 즐겁고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마음을 갖길 바란다. 물론 사람살이에 즐겁고 행복한 것만 있지는 않다. 하지만 행복도 기쁨도 의지가 있어야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는 내 작업이 재밌고 즐거우면서도 자기 발전에 도움을 주고 건강한 삶에 동기를 부여하는 일이 되고자 한다.”
그런데 마음이란 결국 선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가 아닌가!
사실 선은 자기 자신이 능동적이 되어 밖에서 찾아야 할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일러준다. 모든 것은 내 마음속에 있다. 자연이라는 것도 내 마음에서 파생된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선이란 주인인 내 마음을 찾는 작업이다. 이기섭의 ‘마음이’는 새삼 우리에게 모든 것의 근원이 마음에 있고 그 마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보고 선명하고 맑은 의식으로의 지향을 일러주는 캐릭터일 것이다.
[출처 : 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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