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곳에서 멀리 벗어나 천장암에 몸담고 있으면
모든 시름들이 옷자락의 올씨처럼 훌훌 다 풀려나가는 것 같습니다.
천장암이 무릇 좋다는 것은
한쪽은 높은 산이요 다른 한쪽은 바다를 끼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풍경을 보러 찾아오는 것은 당연하지만
속세에 때를 묻힌 사람들의 귀거래가 마음을 적잖이 심란하게 합니다.
괴롭고 괴로운 일입니다.
듣자 하니 자암 스님께서 병으로 매우 고생하신다 하니
이것이 바로 수행하는 사람이 거쳐야 하는 과정이 아니겠습니까.
부처와 조사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자고로 이곳은 정신을 차려서 정진하는 곳이며
헛된 욕망의 경계에서 유희하는 곳이니
무엇을 근심하고 기뻐하겠습니까.
하물며 병이란 마음으로부터 오는 것인데
사람들의 마음이란 봄 아지랑이 같은 것이어서
항시 곧지 못하고 흔들리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경허는 배가 고프면 고프다 하고 추우면 항상 춥다고 하듯
있는 그대로 세상을 살며 잠이나 잘 따름입니다.
그렇듯이 저는 지금 수행하는 나의 모습은 없고
이곳에서 두세 명의 스님과 함께
산가야곡(山歌野曲)을 부르며 지내고 있는 실정입니다.
듣자 하니 자암 스님께서 이곳을 방문할 생각이 있는 듯한데
어찌 오래 기다리겠습니까.
하지만 겨울 날씨가 너무 추워서 오시기가 여간 어렵지 않을 테니
날씨가 좋은 날을 기다려 오셔서 좋은 인연을 잊지 않도록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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