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역사-대승불교
번호 : 39900     조회수 : 11542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07-03-08 오후 1:17:36    
3. 불교의 역사

2)대승불교

<출처:조계종 포교원)

아비달마 교학은 부처님의 교설을 체계화하는데 크게 기여하였지만, 다른 한편 문헌에 메인 해석과 이해의 어려움으로 불교를 대중들로부터 멀어지게 하였다.
또한 불교의 궁극적 목적을 무위열반(無爲涅槃)에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이상적인 인간상은 이러한 열반을 증득하는 아라한(阿羅漢)으로 상정하였다.
따라서 이상적 인간상인 아라한은 교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철저하게 수행하는 출가 수행자가 아니고는 성취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출가자들은 전문적 학습을 위해 사원에 거주하며 대중과 멀어졌고, 난해한 교학은 대중에게 큰 장벽이 되었다. 이리하여 당시의 불교는 자리(自利)위주의 불교, 출가위주의 불교, 학문적인 불교가 된 것이다.
불교가 이렇게 대중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을 때 교단 한편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는 사상운동이 발생하였다. 이들은 자신만의 깨달음을 구하는 입장을 소승(小乘 , Hinay-ana)이라 비판하고, 중생을 구제하면서 깨달음을 구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인간상으로 보살(菩薩 , Bodhisattva)을 제시하였다.
그들은 스스로 대승(大乘 , Mahayana)이라 불렀다.

`보살`은 원래 부처님의 전생과 미래불인 미륵보살을 가르키는 말이었다. 그러나 불탑을 중심으로 부처님의 생애를 설명하던 사람들에게 성불을 목적으로 수행하고 남을 위해 헌신한다면 그가 바로 보살이라는 자각이 싹트게 되었다. 이것은 획기적인 전환이라 할수 있다. 이전에 수행자가 지향하는 최고의 경지는 아라한이었다.
성불이란 이룰 수 없는 것이라 여겨졌고 자신만을 위한 수행이 주가 되었다.
그래서 대승은 자리(自利) 위주의 불교에서 자리와 이타행이 조화로운 불교로, 출가 중심의 불교에서 출가와 재가가 함께하는 불교로 전환하였다.

한편 대승은 `큰수레`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양한 수행 방편을 제시하였다. 소승의 수행도 어려운 것이지만 세세생생 이타행을 서원하고 실천하는 것 역시 일반인에게는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지 죽기 전에 부처님을 열번 부르는 거만으로 극락왕생을 약속하는 신앙이 출현하였으니 이것이 아미타불 신앙이다.
이것은 자력수행(自力修行)의 종교인 불교에 아미타불의 원력에 의지하여 구제되고자 하는 타력이행(他力易行)의 신앙이 등장하였음을 뜻한다.

불교를 어렵게 느끼던 대중에게 타력신앙은 매우 반가운 소식으로 불교가 널리 확산되는데 도움이 되었다. 재가 수행자를 중심으로 일어난 대승사상은 중기로 접어들면서 다시 출가 수행자 중심으로 체계화 되어 교단으로 발전하였다.
교학 연구도 심화되어 아비달마 교학에 못지 않은 발전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때의 교학 연구는 대중을 다양하게 섭수하는 방편연구를 포함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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