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무용 (2) 경전에 보이는 불교무용의 기원
번호 : 9936     조회수 : 30591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03-05-22 오후 10:58:14    
불교무용의 기원은 불교와 더불어 시작되었으며, 불교는 기원전 6세기 경에 인도에서 발생, 기원후 1세기 무렵 중국으로 전해졌다. 우리나라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에 처음으로 불교가 전해지고, 신라 법흥왕 14년(527)에는 불교가 공인되었다.
이렇게 불교가 전래되는 과정에서 음악과 무용이 함께 전파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삼국시대 불교무용에 관한 기록은 찾기 어렵고 다만 범패의 기록만이 {삼국유사}에서 찾을 수 있을 뿐이다.

고려시대에는 불교예술과 더불어 백고좌도량(百高座道場), 재회(齋會) 등 많은 종류의 법회(法會)의식을 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져 오나 불교무용에 관한 문헌은 기록에 보이지 않는다.
조선시대는 숭유억불 정책 가운데서도 의식과 무용은 매우 발전되어 전개되었다. 이러한 것은 감로탱화에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이외 불교 의식무의 역사와 유래는 입과 입으로 통해 전해오는 구전전설(口傳傳說)과 불교문화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경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가운데 영산회상 설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영취산에서 법화경(法華經)을 설법(說法)할 때 천사색(天四色)의 채화(彩花)를 내리니 가섭이 알아차리고 빙긋이 웃으며 춤을 춘 것을 승려들이 모방했다는 설" 로, 가섭이 춤을 춘 것이 서술되어 있고 그 외 많은 경전에서 무용에 대해 나타나 있다.
기아(伎兒)는 북(鼓)을 치거나 노래와 춤을 추고 비파를 뜯고 징( )이나 동발을 치는 사람이다.

이와같이 여러 가지로 기악을 하는데, 최소한 네 사람이 모여서 놀이를 한다.(伎兒者, 打鼓歌舞彈琵琶 銅, 如是比種種伎樂下, 至四人聚戱.)({摩訶僧祇律} 卷第三十三 {대정장}, 권16. 494a) 일체의 범부와 성인이 물러나지 않게 되었으며, 그 나머지는 이 금(琴)의 소리와 여러 음악 소리를 듣고는 모두가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一切凡聖唯除菩薩不退轉者, 其餘一切聞是琴聲, 及諸樂音各不自安, 從坐起舞一切聲聞放捨威儀誕貌逸樂.)({法苑珠林} 卷第三十六
唄讚篇 第三十四 {대정장}, 권53, 576c)

이 외에도 불교의 악(樂)·가(歌)·무(舞)에 대해 여러 경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중국(中國)의 범패 및 무용에 관한 기록으로는 위(魏)나라 무제(武帝)의 넷째 아들 조자건[조식(曹植)]이 하루는 `천태산(天台山: 천태산을 어산(魚山)이라고도 한다)에 오르자 범천(梵天: 하늘)에서 오묘한 소리가 났는데 그 소리에 맞추어 고기떼가 춤을 추므로 그 소리를 모방해 범패(梵唄)를 만들고, 고기떼의 노는 모양을 본떠 승무를 만들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여기서 연유하여 범패와 무용을하는 스님들을 지칭하여 어산(魚山)이라고도 한다.

또한 한국에서의 범패와 및 불교 의식무에 대한 기록으로는, 6C초에 남중국 오(吳)나라의 기악무(伎樂舞)를 백제인 미마지(味摩之)가 배워 일본에 건너가 상류층의 귀족 자제들에게 전했다는 기록이 있다. "기악무는 부처님께 공양 올리기 위한 가무의 일종으로 마임(mime)과 유사한 가면 묵희(默戱)이며, 희극(笑劇)적 요소를 지닌 것이다. 기악무는 불교음악 즉 범음성(梵音聲)이 어우러진 춤은 아니었지만 부처님께 공양(供養)한다는 의미에서 당시 고승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출처:pompa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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