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별불교건축 (2)통일신라
번호 : 11026     조회수 : 32270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03-08-03 오후 1:23:18    
통일신라의 불교건축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에는 불교문화는 더욱 발전하여 사천왕사, 망덕사,감은사,고선사,불국사,원원사,감산사 등이 건립되었습니다.

이 시기 신라의 수도 경주에는 "절들이 별처럼 펼쳐져 있었고 탑들은 기러기 떼 날듯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고 전할 정도로 절이 많았다고 합니다.(삼국사기 권 3, 흥법 제3)

감은사는 문무왕 때 건립하기 시작하여 신문왕 2년(682)에 완공 되었는데, 중심 일직선상 축에 중문,금당,강당이 배치되었고, 강당 전면 좌, 우에 삼층석탑이 각각 배치된 쌍탑일금당식 배치를 하고 있습니다.

감은사지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금당의 바닥구조입니다. 익산 미륵사지 금당과 같이 감은사 금당 역시 바닥아래에 장초석을 세우고 지하공간을 만들어 물이 들어오게 되어 있어 용과 관련된 창건설화가 반영되어 조영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금당지와 함께 감은사지에서 가장 돋보이는 조형물은 석탑인데 이 석탑은 신라의 가람이 통일후 쌍탑으로 된 가람을 형성하는 초창기의 탑으로서, 백제계열의 석탑과 다른 조형미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감은사탑의 조형미가 가장 세련되게 완성된 형식으로 발전하여 신라계열의 전형적인 석탑을 이루게 되는 것이 경덕왕 10년(751)에 세워진 불국사 석가탑입니이다.

감은사외에 쌍탑일금당식 가람배치는 망덕사지, 천군리사지, 사천왕사지, 불국사 등에도 나타납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후 건립되기 시작한 사찰들은 거의 모두가 경치가 아름다운 산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사찰이 아름다운 산속에 자리잡은 연유는 법화경(法華經) 신앙이 영지신앙(靈地信仰)과 결합하여 민간신앙으로 널리 행해진 것과 연관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영지신앙은 우리나라의 가람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그 예로서, 자장(慈藏)을 개산조(開山祖)로 하는 대표적인 사찰인 통도사와 월정사는 영지신앙과도 관계가 큽니다.

즉 통도사는 석가모니의 설법장소의 하나인 영취산의 이름을 따라 양산 영취산 아래에 개창된 것이고, 월정사는 자장이 중국에서 수행한 오대산의 영지신앙과 문수신앙을 그대로 이식하여 개창한 사찰입니다.

이와 같이 재래의 영산 또는 명산에 가람을 조영하여 청정도량으로 삼은 것이 한국 사원입지의 큰 특징이기도 합니다. 가람을 청정도량화 하기 위하여 일주문, 사천왕문, 불이문 등이 사찰 입구에 세워지는 것도 이와 맥을 같이 합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신라는 입당 유학승들에 의하여 새로운 불교 교리를 다양하게 수용하였습니다. 정토사상이나 미륵신앙, 그리고 약사신앙과 관음신앙에 더하여 의상에 의해 정착된 화엄사상은 그 중에서도 대표적입니다. 이러한 불교교리의 다변화는 불교사원의 조영에도 큰 영향을 끼쳤는데 고선사와 불국사는 이러한 변화를 보이는 초기의 대표적인 사찰이다.

고선사는 금당과 탑이 각각 독립된 원(院)에 회랑으로 둘러싸인 배치를 하고 있고, 불국사는 이러함 독립된 몇개의 원이 조합하여 이루어진 실례를 보이는 대표적인 사찰입니다. 불국사는 법화사상과 정토사상, 그리고 화엄사상과 관음사상이 결합하여 이러한 교리를 반영하는 원(院)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경사진 지형을 이용하여 축대를 쌓은 후 한 쪽에는 법화사상을 표현하는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과 다보탑, 석가탑이 있는 영역을 구성하고, 그 서쪽에는 정토사상을 반영하는 극락전 영역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대웅전 일곽 뒤 석축 위에는 화엄사상과 관음사상을 반영하는 비로전과 관음전이 각각 독립된 영역에 조성되어 있습니다.

화엄사상의 성행은 통일신라시대의 사찰이 종래의 도시에 집중적으로 있던 사찰을 산간으로 확산케 하는 계기를 만들었고, 동시에 산지의 지형조건에 맞는 가람배치를 구성하여 종전의 회랑 중심의 고대사찰의 규범에서 탈피하는 가람구성을 하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화엄계열의 대표적인 사찰이 영주 부석사,합천해인사,구례 화엄사 등입니이다.

특히 이와 시기를 같이 하여 당나라에 성행하던 선(禪) 사상을 익히고 돌아온 승려들은 신라 불교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고, 불교사원에도 큰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8세기까지 주로 왕실이나 귀족의 지원아래 이루어지던 사찰은 왕실이나 귀족층에 연연하지 않은 선승들에 의하여 도회지에 멀리 떨어진 산간에 지방 호족들의 뒷받침을 받으며 실질적인 종교의식에 필요한 사찰을 조영해 나갔습니다.

이 시기에 건립된 사찰은 회랑으로 둘러싸인 좌우대칭의 엄격한 구성에서 벗어나 지형조건에 맞는 자유스러운 가람 구성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 세워진 사찰로는 원주 거돈사,양양 진전사, 강릉 굴산사, 강릉 무진사, 여주 고달사 등이 있습니다.

[출처:유권준의 인터넷으로 만나는 불교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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