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별 불교건축 (1)삼국시대
번호 : 10872     조회수 : 28355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03-07-26 오후 9:49:57    
삼국시대의 불교건축


고구려 사찰이라고 생각되는 평양의 금강사터(청암리 사지)는 가람 중앙에 정 8각형의 탑자리가 잇고 동서 남북으로 장방형의 건물터가 밝혀져 고구려 가람의 한 예를 알수 있습니다.

이와같은 가람 배치는 백제를 거쳐 일본`나라`에 있는 `비조사`에서도 같은 유형의 가람 배치를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삼국의 사찰 배치 형식은 중국 육조에서 시작되었던 일탑 일금당의 남북 일직선의 축으로 된 배치 형식이 일반적이었고,백제의 정림사,금강사의 배치도 남으로부터 중문,탑,금당, 강당의 순으로 남북 일직선상에 놓이고 중문에서 강당까지를 장방형 회랑으로 둘러 막았습니다.

사찰 안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은 탑이었는데 13세기에 타버린 신라 황룡사 탑은 643년 부터 645년까지에 걸쳐 완성된 목조의 거탑으로 맨 아래층의 한 변이 약 22m,탑 총 높이가80m에 이르는 큰 탑이었으니 목조 건축의 가구수법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히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백제의 목조 건축은 현존하는 목탑양식의 석조탑인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나 부여 정림사지 석탑들이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백제의 영토였던 곳에서 발견된 우수한 와당이나 초석들이 당시의 수준을 말해줍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7세기 중엽이후, 우리나라는 당의 문화를 흡수하여 불교 예술은 한층 더 고조되었습니다.

건축에서도 기법이나 조형의식,실용 수학의 응용 등이 최고조에 달하였음은 현존 유적지의 정리된 기단,정연한 초석들,세련된 와당의 조각수법 등에서 찬란하였던 건축의 면모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가람 배치에 있어서도 삼국시대의 일금당일탑식의 기본형에서 벗어나 일금당쌍탑식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8세기 중엽에 중창된 불국사만 보더라도 평지 사찰과는 달리 산록을 효과있게 이용하여 자연지세와 인공사역을 조화시키려는 전통적 한국건축의 근본의식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불국사의 중창과 거의 같은 연대의 석굴암 전실에 보이는 첨차석이나 불국사 대석단의 동자주에 새겨진 소로형 석재,의성 탑리의 5층석탑에 보이는 주두등에서 목조 건축의 구조형식과 세부수법을 짐작할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료를 종합해보면 ,기둥에는 알맞은 배흘림이 있고 주두는 굽의 받침이 없는 곡면의 하단을 갖는 것이고, 첨차현은 하단 곡선이 원호로 되고 상면 양측에는 공안(산미나 첨차의 상부 모서리는 깍아낸 부분)을 두었음도 알 수 있습니다.

가구조립은 유적에 남아 있는 초석 배열로 대개 알수있는데 내진과 외진이 분리 되었던것 같습니다. 지붕의 형식도 맞배는 물론이고 우진각,팔작 모두 실존하였습니다. 이러한 여러가지 자료둘은 분석하면 현존하는 고려시대 건물들과 큰 차이가 없을 것 으로 생각합니다.

[출처: 유권준의 인터넷으로 만나는 불교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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