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야 놀자(2)': 밑 빠진 독을 그냥 물 속에 빠뜨려라.
김 정 호(덕성여자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달마야 놀자'(1)에서 언급한 것처럼 '달마야 놀자' 비디오는 스트레스관리 특강을 위해서도 유익했다.
'달마야 놀자'를 보고 나서도 내 마음에서 계속 여운을 남기고 있는 부분은 노스님이 조폭두목에게 한 말씀이었다: "나는 밑 빠진 너희들을 그냥 내 마음에 빠뜨렸어."
은신처로 깊은 산 속의 절을 택한 조폭들은 젊은 스님들과 여러 가지로 대립을 한다. 조폭들의 욕구(절에서 은신하고 싶어 함)와 스님들의 욕구(조폭들이 떠나주기를 바람)가 서로 상충되었기 때문이다. 두 집단은 서로의 대립되는 욕구(즉, 동기)를 해결하기 위해 단순히 물리력에만 의존하지는 않고, 일정한 게임 혹은 시합을 벌이고 여기서 이긴 쪽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도록 했다.
이들은 서로 다양한 게임을 제안했다. 3000배 하기, 족구시합, 고스톱 하기, 물 속에서 숨 안 쉬고 오래 참기, 3-6-9 게임하기 등 여러 가지로 시합을 벌이게 되는데, 각 시합은 매우 코믹하게 다루어졌다.
마지막에 노스님은 두 집단 모두에게 밑 빠진 독에 물을 가득 채우도록 하는 문제를 낸다. 여기서 조폭들은 기지를 발휘하여 문제를 푼다. 처음에는 독의 아래 깨진 부분을 고무신으로 막으며 물을 부어댔지만 결국 밑 빠진 독에 물을 가득 채울 수는 없었다. 여러 가지 시도를 하며 실패를 거듭하다가 문득 이들은 문제의 해답을 발견한다. 제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은 밑 빠진 독을 들고 연못으로 질주한다. 그리고는 그 독을 잡고 그대로 연못 속에 깊이 넣어버렸다. 그러자 당연히 독은 물 속으로 잠겼고 독 전체가 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조폭들이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에, 젊은 스님들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노스님은 이들이 절에 머물러도 좋다고 허락해준다. 조폭들이 젊은 스님들과 함께 절에서 지내면서 자주 갈등을 일으키지만, 이때마다 노스님은 조폭들을 감싸주는 입장을 취한다.
어느 날 조폭두목은 노스님께 묻는다: "왜 우리들은 감싸주시기만 하고 우리들에게 이래라 저래가 요구가 없으시죠? 착하게 살아라, 좋은 사람이 되어라 등 이런 말을 하지 않으시냐 말입니다."
노스님이 되묻는다: "너희가 밑 빠진 독에 물을 어떻게 가득 채웠냐?"
조폭두목은 대답한다: "밑 빠진 독을 그냥 물 속에 빠뜨렸죠."
노스님은 곧바로 받아서 답한다: "나도 밑 빠진 너희들을 그냥 내 마음 속에 빠뜨렸어."
노스님의 자세는 사람에 대한 '수용하기'의 자세이다. 사람을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그냥 그 사람을 수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세는 인간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자세로 보인다.
스트레스 중에 자주 경험하는 스트레스가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이다. 직장에서도 상사, 동료, 부하직원 등과의 관계에서 스트레스가 발생하고, 집에서도 아내(혹은 남편), 아이들, 부모(혹은 시부모), 형제, 동서 등과의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인간관계 스트레스는 거의 대부분이 상대가 자기 뜻대로 행동하지 않는 데서 온다. 남편이 세심하게 배려하지 않는다(남편이 좀더 자상했으면 좋겠다.), 아내가 돈을 너무 쉽게 쓴다(아내가 돈을 절약해서 쓰면 좋겠다.), 아이가 공부를 잘 하지 않는다(아이가 공부를 잘 했으면 좋겠다.), 시어머니가 너무 간섭을 많이 한다(시어머니가 나의 살림을 간섭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동서가 너무 이기적이다(동서와 내가 공평하게 일을 하면 좋겠다.) 등등, 자기가 원하는 것이 있는데 상대가 그렇게 하지 않는 데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상대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불만에 대한 이유는 나름대로 충분히 타당할 수 있다: 무뚝뚝한 것보다 자상한 것이 좋지; 돈은 절약해서 쓰는 것이 좋지; 학생은 공부를 잘 해야지; 시어머니라고 해도 며느리의 살림을 간섭하는 것은 옳지 않지; 집안 일을 할 때 동서들은 서로 공평하게 해야지 등등.
그러나 자신의 견해가 옳다고 해도, 그렇기 때문에 상대를 자신의 뜻대로 바꾸려고 하면, 대개 실패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바꾸려고 하는 시도를 접하면 그것에 저항하려고 한다. (이러한 마음의 경향을 전문용어로는 '반발심(psychological reactance)'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사람에 대해 적개심, 혹은 미운 감정을 갖게 된다.
이렇게 해서 누군가(B라고 하자.)를 자신(A라고 하자.)의 뜻대로 바꾸려고 하면, 둘 간의 관계는 서로 미워하는 관계로 악순환에 빠져들기가 쉽다. 처음에 A가 B를 바꾸려고 하면 B는 약간의 적개심만 생기며, A는 변화에 저항하는 B를 보면 약간의 섭섭함과 미운 감정이 생긴다. 그러나 이러한 미운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 변화하지 않는 B를 보며 A는 더 화가 나고 B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행위의 강도와 빈도가 더 심해진다. 이때 B는 A가 더 싫어지고, A가 싫어질수록 A가 원하는 것은, 설사 그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머리로는 알아도 들어주고 싶지 않고 오히려 더 반대로 행동하게 된다. 이러한 B의 태도는 A로 하여금 더욱 분노케 한다. 이렇게 되면 둘 간의 관계는 돌이키기 어렵게 악화되고 만다.
특히 안타까운 것은 남편과 아내, 혹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선의에서 변화시키려고 하지만(자상한 남편이 되도록, 혹은 씀씀이가 검소한 아내가 되도록,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가 되도록 하지만), 불행히도 가장 사랑할 관계가 가장 미워하는 관계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나의 뜻대로 변화시키려고 할 때, 나는 상대가 싫어하는 사람이 될 확률이 높아진다. 그렇게 되면, 나는 상대를 변화시키기 어려운 사람이 되고 만다. 즉, 역설적이게도, 누군가를 변화시키고자 의도하면, 변화시키기가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누군가를 변화시키고자 의도하지 않을 때, 변화시키기가 더 쉬워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는 어떤 사람을 기쁘게 하고 싶은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기쁘게 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어 그를 기쁘게 하고 싶다. 그들의 기쁨이 나의 기쁨인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가?
'달마야 놀자'의 노스님처럼 비록 상대가 밑 빠진 독이라고 해도 상대를 그냥 자신의 마음 속에 빠뜨려 버리는 자세, 상대를 인정해주고 수용해 주는 자세를 갖게 되면, 밑 빠진 독에도 물을 가득 채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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