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쉬운 불교교리 - 금강경의 부정의 논리
道를 道라 하면 道가 아니듯…
진정한 도는 이름할 수 없어
이름난 고전을 보게되면, 그런 뛰어난 책은 서론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그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점을 효과적으로 전하고 있습니다.[논어]의 경우도 그렇고,[노자]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노자]의 경우 “도(道)를 도라고 한다면 그것은 항상한 도가 아니고, 이름을 이름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항상한 이름이 아니다”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는 진정한 도는 이름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이름과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님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토끼 뿔’과 ‘거북이 털’에 비유해서 설명합니다. 토끼를 보지 못한 어린아이에게 토끼 뿔이라고 하면, 토끼에 뿔난 모습이 떠오를지 모르겠습니다. 허나 그것은 관념 속의 상상이고, 실제로 그런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렇듯이 사람들은 관념에 얽매여서 있지도 않는 것을 추구하면서 살고 있다고 불교에서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대승불교의 경전 [금강경]에서도 이와 같은 논법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것이라고 이름한다”라는 표현을 경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표현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이름은 하나의 약속이지 그것과 실제 사물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름이 하나의 약속인 줄 모르고, 거기에 얽매여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있지도 않는 신천지를 찾아서 인생이라는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습니다.
이름은 하나의 약속일 뿐
이런 점은 서양철학에서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국의 일상언어학파에서는 옥스퍼드대학의 비유를 들고 있습니다. 어떤 손님이 옥스퍼드대학에 방문하였습니다. 그 손님을 잘 안내해서, 여기는 본부건물이고, 이것은 문과대학, 저것은 이과대학 등등으로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손님은 “잘 보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본 것은 옥스퍼드 대학에 속해있는 것이지, 정작 중요한 옥스퍼드대학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예화에서 옥스퍼드 대학이라고 하는 게 소개받은 건물이외에 어디 따로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상언어학파에서는 이름과 대상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닌데, 사람들은 꼭 일치한다고 믿고있고, 철학에서도 이런 환상을 찾기 위해서 신이다, 실체이다 하면서 거기에 대응되는 무엇이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이것을 국가에다 적용해 봅시다. 한국을 방문한 관광객이 한국의 여기저기를 돌아본 후에 내가 본 것은 한국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고, 도대체 어떤 것이 한국이냐고 묻는다면, 갑자기 설명하기 곤란해집니다. 한국의 대통령이 한국을 대표하는 자리에 있기는 하지만, 대통령을 가리켜서 한국이라고 할 수 없고, 국민의 대표가 모여서 활동하는 장소인 국회를 일컬어서 이것이 한국이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미흡하다는 생각이 들고, 사법부에 가서 이곳이 한국의 정의가 발휘되는 곳이니 한국의 심장부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게 한국이라고 말하기 주저하게 됩니다. 아마 그래서 만든 것이 국기일 겁니다. 국가가 뭐냐고 묻는다면 국기를 가리키면 그걸로 해결이 되니까요. 허나 이건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동안 국가를 위해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바쳤고 고생을 해왔는데, 그러면 그 사람들은 있지도 않는 환상의 신기루를 위해서 봉사했다고 말하는 셈이 됩니다. 누가 그렇게 단언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수많은 사람의 공이 물거품이 될텐데요.
이름, 대상에 얽매이지 말아야
여기서 [금강경]의 논리에 귀기울여 봅시다. “불국토를 장엄한다고 말한 것은 곧 장엄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것을 장엄이라고 한다”에서 “장엄한다고 말하는 것이 곧 장엄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이름과 대상이 꼭 일치하는 것이 아니니까, 거기에 얽매이지 말 것을 말한 것이고, “그래서 이것을 장엄이라고 한다”고 한 것은 관념의 그물에서 벗어나면, 언어의 일상용법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언어는 실재를 전달할 수 없다는 ‘언어의 한계’와 그것 없이는 진실을 전달할 수 없다는 ‘언어의 효용’을[금강경]에서는 조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병욱 (고려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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