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아함경 15권에서의 流轉門 還滅門
번호 : 37849     조회수 : 2933     작성자 : 스님     작성일 : 2006-08-07 오후 6:47:32    
잡아함경 15권에서의 流轉門 還滅門


결국 明이 없는 사람에게는 죽음의 괴로움이 있게 된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그러한 죽음이 있게 되는 형성 과정을 열두 단계로 자세하게 분석하여 보여 주는 것이 12연기설인 것이다.

12支 그 각각의 뜻은 다음과 같다.

무명(無明):明이 아닌 것[非明] 또는 명이 없는 것[無明]의 두 가지로 해석되는데, 實在 아닌 것 또는 실재성이 없는 것을 자기의 實體로 착각한 妄想이라고 할 수 있다.
주어진 존재의 일시적 형체를 참된 나라고 집착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진리에 대한 無知이며 맹목적 생존욕과 생식욕을 지닌 본능적인 생명력으로 ‘생의 의지’로 표현된다.

행(行):무명이 있으면 그것을 조건으로 하여 행이 있게 된다는 것인데, 행은 ‘결합하는 Sam 작용 kara’이라는 뜻을 갖고 있듯이 무명에 의하여 집착된 대상을 實在化하려는 작용이라 하겠다.
맹목적 생의 의지인 무명은 그 무엇을 욕구하고 만족시키고자 끊임없이 활동하는 것이다.
이를 形成作用이라 번역하는 경우도 있으며 서구에서는 ‘impulse’로 번역함이 보통이다.

식(識):행에 의해 개체가 형성되면 그곳에 識이 발생한다고 한다.
식은 識別한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개체가 형성되자 그곳에 분별하는 인식이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명색(名色):식을 조건으로 하여 명색이 일어나는데, 色은 물질적인 것을 가리키고 名은 비물질적인 것을 가리킨다.
명색의 발생은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이 결합된 상태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육입(六入):六處라고도 하며 명색을 연하여 육입이 일어나는데, 육입은 인간 실존의 근저를 이루는 여섯 개의 감각 기관(眼, 耳, 鼻, 舌, 身, 意-六根)을 말한다.

촉(觸):육입을 연하여 촉이 있게 되는데, 촉은 ‘접촉한다, 충돌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여섯 개의 감각 기관(六根)이 그 대상(六境:色, 聲, 香, 味, 觸, 法)과 접촉하는 것과 六根과 六識(눈, 귀, 코, 혀, 몸, 의지에 발생한 식)이 和合하는 것이라 하겠다.
즉 촉은 단순한 접촉이나 자극이 아니라 認識成立의 원초적 형태이며, 인식론적 경험의 현실을 나타낸 것이다.

수(受):촉을 연하여 수가 발생한다.
수는 感受作用이라고 볼 수 있는데, 여기에는 괴로움[苦], 즐거움[樂], 그리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不苦不樂] 중간 느낌[捨受]의 3가지 종류가 있다.
이를 고, 락, 사 三受라고 한다.
접촉에 따른 필연적인 느낌이라 하겠다.

애(愛):수를 연하여 애가 발생한다.
애욕(愛慾), 갈애(渴愛)를 뜻한다.
위의 세 가지 느낌 중에서 즐거움의 대상을 추구하는 맹목적인 욕심이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애(愛)를 번뇌 중의 가장 심한 것으로 보고, 수도에 있어서도 커다란 장애가 된다고 한다.
무명은 지혜를 가로막는 장애[煩惱障]의 대표적인 것이다.

취(取):애를 연하여 일어나는 취는 취득하여 병합(倂合)하는 작용이다.
애에 의하여 추구된 대상을 완전히 자기 소유화하는 일이라 볼 수 있다.

유(有):취를 연하여 유가 발생한다. ‘유’라는 말은 ‘있다(be)’와 ‘되다(become)’의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한 말이다.
나고 죽는 존재 그 자체가 형성된 것이라 하겠다.
유에는 欲界, 色界, 無色界의 三有가 있다.
삼계는 생사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곳이다.

생(生):유에 연하여 생이 발생하는데, 생은 문자 그대로 태어난다는 뜻으로 有가 그렇게 생사하는 존재 자체의 형성을 뜻한다면 그것에 연하여 생이 있게 될 것은 물론이다.

노사(老死):생이 있으므로 老. 死. 憂. 悲. 苦. 惱가 있게 된다.
생의 현실은 마침내 늙어 죽음의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12연기의 설명에서 볼 때, 생사의 근본적인 극복은 무명을 멸해 없앰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또한 무명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연기하게 되는 과정을 유전문(流轉門)이라 부른다.
무명의 멸(滅)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멸하게 되는 과정을 환멸문(還滅門)이라 한다.
이 12연기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가장 핵심적인 것은 인간의 죽음을 비롯한 모든 고통이 바로 진리에 대한 자신의 무지에서 연기한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죽음이 신(神)의 노여움에 의한 것이라든가,
숙명적으로 결정된 것이라든가, 또는 본래부터 그렇게 되도록 된 우연한 것이라면, 인간 자신은 얼마나 막막한 절망에서 헤매게 될까
그러나 석존은 각고(刻苦)의 오랜 구도 끝에 마침내 인간의 죽음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자신의 무지에서 연기한 것임을 밝게 아셨다.
세계의 어떤 종교가 석존의 이러한 깨달음보다도 더 밝은 전망을 인류에게 비춰주고 있을까.
연기의 깨달음이야말로 인류의 종교적 사색이 도달한 최고의 성과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석존뿐만 아니라 비바시불을 비롯한 과거에 출현했던 여러 부처님들도 모두가 보리수 아래서 12연기를 순(順). 역(逆)으로 관찰하여 깨달음을 이루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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