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명예원로의원 신광당 활안 대종사 입적
등록일 : 2019-09-18 동영상 

9월18일 오전 9시10분…세수 94세‧법랍 64세
문도회의장…9월21일 9시 송광사서 다비식




조계종 명예원로의원 신광당 활안 대종사가 9월18일 오전 9시10분경 주석처인 순천 천자암에서 입적했다. 세수 94세, 법랍 67세.

활안 스님은 1926년 전남 담양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몸마저 허약해져 하루하루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고통 받는 육신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고 출가를 결심했다. 스님은 1945년 전북 순창 순평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출가의 연은 바로 이어지지 않았다. 해방과 한국전쟁의 여파로 스님은 순평사에서 5년 동안 긴 행자생활을 했다. 스님은 이 기간이 스스로 하심을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됐고, 출가수행자로서 본분을 익히는 배움의 장이 됐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그러다 스님은 1953년 예산 수덕사에서 월산 스님을 은사로 뒤늦게 사미계를 수지했고, 1958년 통도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이후 스님은 ‘나고 죽는 이전의 나는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들고 법주사, 수덕사, 상원사, 지리산 칠불암 등 제방선원에서 정진했다.

그러던 중 스님은 1974년 송광사 방장 구산 스님의 권유로 순천 천자암을 찾았다. 천자암은 고려 보조국사가 주석했던 암자였지만 조선과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쇠락해 전각 한 채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스님은 이때부터 천자암 복원에 매진했다. 가파른 조계산 중턱을 매일 지게에 기왓장을 짊어지고 오르내리며 법당과 법왕루, 나한전, 종각을 하나하나 세웠다. 때론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이 밀려왔지만 스님은 “천자암을 복원해 한국불교를 중흥시키겠다”는 원력을 버리지 않았다. 오늘날 천자암의 사격은 그런 활안 스님의 원력이 만든 결실이기도 하다.

그런 가운데서도 스님은 정진의 끈을 놓지 않았다. 낮엔 천자암 복원에 매진하면서 밤엔 화두에 온 정신을 쏟아 부였다. 특히 스님은 천장암을 복원한 이후 100일 동안 문을 걸어 잠그고 수행하는 폐관정진만도 10여 차례 해냈다. 뿐만 아니라 스님은 천자암에 조실로 추대된 이후에도 매일 새벽 2시면 일어나 도량석을 하고 목탁을 치며 정진했으며, 정초와 백중 때는 일주일동안 하루 17시간씩 꼿꼿이 서서 목탁을 치며 정진하는 사분정진도 진행해 후학들에게 모범을 보이기도 했다. 1999년 조계종 원로의원에 추대됐으며 2004년 5월31일 대종사 법계를 품수했다.

한편 활안 스님의 장례는 문도장으로 진행되며 분향소는 조계총림 송광사에 마련됐다. 그러나 문도회는 "절차를 간소화하자"는 취지로 영결식을 진행하지 않고 9월21일 오전 9시 송광사 연화대에서 다비식만 진행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