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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조계종 제 15 교구 본사 통도사에서 홍법스님을 은사로 사미계 수지 1971년 조계종 제 15 교구 본사 통도사에서 월하스님을 계사로 구족계 수지 1974년 조계종 제 12 교구 본사 해인사 승가대 대교과 졸업 1978년 조계종 제 4 교구 본사 월정사에서 화엄학 수학 1980년 조계종 제15교구 본사 통도사 규정국장, 재무국장 1983년 조계종 총무원 교무국장, 조사국장 역임 1988년 조계종 9,10,11,12대 중앙종회 의원 역임 1994년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 조계종 개혁회의 상임의원, 11대 중앙종회 총무분과위원장 1998년 불교텔레비젼 대표 사장 및 불교방송 이사 역임 일산 포교당 여래사 주지 역임 통도사 서울포교당 구룡사 주지 역임 前 영축총림 통도사 주지 現 통도사 서울포교당 구룡사 회주 불교텔레비전 이사 재단법인 아름다운 동행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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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수 : |
3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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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
대반열반경 제 14권 20.청정한 행(梵行品) |
법회일자 : |
2005-09-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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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사랑함을 닦으면 성내는 마음을 끊고, 가엾이 여김을 닦아도 성내는 마음을 끊거늘, 어찌하여 4무량심이라 합니까? 이치로 미루어보면 세 가지가 있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사랑함에 세 가지 반연함이 있으니, 중생을 반연하는 것과 법을 반연하는 것과 반연함이 없는 것이며, 가엾이 여기는 마음, 기뻐하는 마음, 버리는 마음도 그와 같아서 이런 뜻을 따른다면 셋만이 있겠고 넷이 있지 않을 것입니다. 중생의 반연은 5음으로 말미암아 즐거움을 주려는 것이 중생의 반연이요, 법의 반연은 중생들이 필요하는 물건을 보시하여 주는 것이 법의 반연이요, 반연함이 없다 함은 여래를 반연함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반연이 없다고 하나이다. 사랑이라 함은 흔히 가난한 중생을 반연하는 것인데, 여래께서는 가난을 영원히 여의고 첫째가는 기쁨을 받으시니, 만일 중생을 반연한다면 부처님께서는 반연하지 않으며, 법도 그러하니, 이런 이치로 여래를 반연하는 것을 반연이 없다고 이름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사랑으로 반연하는 모든 중생은 부모, 처자, 권속을 반연하는 따위니, 이런 뜻으로 중생의 반연이라 이름하고, 법을 반연함은 부모, 처자, 권속을 보지 않고, 모든 법이 인연으로 생긴 줄을 보는 것이니, 이것을 법의 반연이라 이름하고, 반연이 없다 함은 법의 모습과 중생의 모습에 머물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반연이 없다 이름하오며, 가엾이 여김과 기뻐함과 버리는 일도 이와 같으니, 셋이 마땅하고 넷은 있을 수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사람에 두 가지가 있으니, 잘못 보는 행(見行)과 애욕의 행(愛行)입니다. 잘못 보는 행을 하는 사람은 사랑함과 가엾이 여김을 많이 닦고 애욕의 행을 하는 사람은, 기뻐함과 버림을 많이 닦으니, 그러므로 둘이 마땅하고 넷은 있을 수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한량없다(無量)함은 가가없다는 것이니, 가를 짐작할 수 없으므로 한량없다 하오니, 만일 한량이 없으면 하나라 함이 마땅하고, 넷이라 할 수는 없나이다. 만일 넷이라 하면 어찌 한량이 없으리요, 그러므로 하나가 마땅하고 넷이 있을 수는 없나이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부처님 여래가 중생들에게 말씀하는 법은 그 말씀이 비밀하여 분명하게 알기가 어려우니라. 혹은 중생을 위하여 한 인연을 말하나니, 무엇이 한 인연인가. 온갖 함이 있는 법이라 함이니라. 선남자야, 혹은 두 가지를 말하나니, 인과 과이니라. 혹은 셋을 말하나니 번뇌와 업과 괴로움이니라. 혹은 넷을 말하니 무명과 행과 나는 것과 늙어 죽는 것이니라, 혹은 다섯을 말하니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이니라. 혹은 여섯을 말하니 삼세의 인과 과보니라. 혹은 일곱을 말하니 식(識), 명색(名色), 6입(入), 촉(觸), 수(受), 애(愛), 취(取)니라. 혹은 여덟을 말하니 12인연에서 무명·행·생·노사를 제의한 나머지 여덟이니라. 혹은 아홉을 말하니 성(城)올 지나던 중에 무명과 행과 식을 때고 설한 나머지 아홉 가지와 같으니라. 혹은 열한가지니 살차니건자를 위하여 말 할적에 생(生) 한법만 빼고 설한 나머지 열 한 가지와 같으니라. 혹은 12인연을 구족하게 말하니 왕사성에서 가섭 등을 위하여 열두 가지를 구족하게 말한 것으로 무명으로부터 생·노차 까지니라. 선남자야. 한 가지 인연에서도 중생들을 위하여 가지가지로 분별하나니, 한량없는 마음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야, 이런 뜻으로 여래의 깊고 비밀한 일에 의심을 내지 말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야, 여래는 큰 방편이 있어서 무상을 항상하다 말하고, 항상함을 무상하다 말하며, 즐거움을 괴롭다 말하고, 괴로움을 즐겁다 말하며, 부정함을 깨끗하다 말하고 깨끗함을 부정하다 말하며, 나(我)를 내가 없다(無我) 말하고, 내가 없는데 나라 말하며. 중생 아닌데 중생이라 말하고. 참말 중생에겐 중생 아니라 말하며, 물건 아닌데 물건이라 말하고, 물건을 물건 아니라 말하며, 진실이 아닌데 진실하다 말하고, 진실한데 진실이 아니라 말하며, 경계가 아닌데 경계라 말하고, 경계를 경계 아니라 말하며, 생(生)이 아닌데 생이라 말하고. 생을 생이 아니라 말하며, 내지 무명을 명(明)이라 말하고, 명을 무명이라 말하며, 색을 색 아니라 말하고, 색 아닌 것을 색이라 말하며, 도가 아닌 것을 도라 말하고, 도를 도가 아니라 말하나니, 선남자야, 여래가 이러한 한량없는 방편으로 중생들을 조복함을 어찌 허망하다 하겠는가. 선남자야, 어떤 중생이 재물을 탐하거든, 나는 그 사람 앞에서 몸을 변화하여 전륜왕이 되어. 한량없는 세월 동안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가지가지로 이바지한 뒤에 그를 교화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머물게 하느니라. 어떤 중생이 5욕락을 탐하거든 한량없는 세월에 미묘한 5욕락으로 그 뜻을 만족케 한 뒤에, 그를 권유하고 교화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머물게 하느니라 어떤 중생이 영화와 귀함을 누리려 하거든, 한량없는 세월 동안 그 사람의 하인이 되어 심부름하고 모시면서 그의 마음에 들게 한 뒤에, 권유하고 교화하여 그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머물게 하느니라. 어떤 중생이 성질이 사나워서 다른 이의 간함을 필요하게 되면, 내가 백천 년 동안에 그를 타이르고 달래어서 마음이 조복된 뒤에 다시 권유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머물게 하느니라. 선남자야, 여래가 이와 같이 한량없는 세월 동안 가지가지 방편으로 중생들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머물게 하는 것을 어찌 허망하다 하겠느냐. 부처님 여래는 가지가지 나쁜 것 가운데 있더라도 물들지 아니함이 연꽃과 같으니라. 선남자야, 이렇게 4무량심을 알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야, 이 한량없는 마음의 성품이 넷이 있으니, 이것을 닦아 행하면 대범천에 태어나느니라. 선남자야, 이러한 한량없는 마음의 짝이 네 가지가 있으므로 넷 이라고 이름하느니라. 사랑하는 마음을 닦는 이는 탐욕을 끊고, 가없이 여기는 마음을 닦는 이는 성내는 일을 끊고, 기뻐하는 마음을 닦는 이는 즐겁지 아니함을 끊고 버리는 마음을 닦는 이는 탐욕을 내고 성내는 중생을 끊나니, 선남자야, 이런 뜻으로 넷이라 이름하고, 하나나 둘이나 셋이라고 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야, 그대가 말하기를 `사랑으로 성내는 일을 끊고, 가없이 여김도 그렇다 하여, 셋이라고 말할 것이다`하지만, 그대는 이제부터 그런 문난을 하지 말라. 왜냐 하면 선남자야, 성내는 데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생명을 빼앗는 것이고 하나는 채책질하는 것이니라. 사랑을 닦으면 생명 빼앗는 일을 끊고 가없이 여김을 닦으면 채찍질하는 일을 끊나니, 선남자야, 그런 이치로 보면 넷이 아니겠느냐. 또 성내는 데 두 가지가 있으니. 중생을 성내 는 것과 중생 아닌 것을 성내는 것이니라. 사랑하는 마음을 닦는 이는 중생에게 성내는 일을 끓고. 가없이 여기는 마음을 닦는 이는 중생 아닌 것에 성내는 일을 끊느니라. 또 성내는 데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인연이 있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인연이 없는 것인데, 사랑하는 마음을 닦는 이는 인연있는 것을 끊고, 가없이 여기는 마음을 닦는 이는 인연 없는 것을 끊느니라. 또 성내는 데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지난 세상에서 오래 전부터 익힌 것이요 다른 하나는 지금 세상에서 금방 익힌 것인데, 사랑하는 마음을 닦는 이는 지나간 것을 끊고, 가없이 여기는 마음을 닦는 이는 지금 것을 끊느니라. 또 성내는 데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성인을 성내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범부를 성내는 것인데, 사랑하는 마음을 닦는 이는 성인을 성내는 것을 끊고, 가없이 여기는 마음을 닦는 이는 범부를 성내는 것을 끊느니라. 또 성내는 데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상품이요, 다른 하나는 중품인데, 사랑을 닦으면 상품을 끊고, 가없이 여김을 닦으면 중품을 끊느니라. 선남자야, 이린 이치로 넷이라 이름하거늘, 어찌하여 셋이 마땅하고 넷이 아니라고 힐난하겠느냐. 그러므로 가섭이여, 이 한량없는 마음을 짝으로 상대하여 분별하면 넷이 되고, 또 근기로 말하여도 넷이 되나니, 근기에 사랑함이 있으면 가없이 여김과 기뻐함과 버리는 마음은 있을 수 없으니, 그러므로 넷이 마땅하고 감할 수 없느니라. 선남자야. 행으로 분별하여도 넷이 있어야 하나니, 만일 사랑을 행할 때에는 가없이 여김과 기뻐함과 버리는 마음이 없으므로 넷이 있느니라. 선남자야, 한량이 없는 것으로도 넷이라 이름 하느니라. 한량없는 마음에 네 가지가 있으니, 어떤 한량없는 마음은 반연은 있으나 자재함이 아니고, 어떤 한량없는 마음은 자재는 하나 반연이 아니고, 어떤 한량없는 마음은 반연도 있으며 자재도 하고, 어떤 한량없는 마음은 반연도 아니며 자재도 아니니라. 어떠한 한량없는 마음을 반연은 있으나 자재가 아니라 하는가. 한량없고 가없는 중생을 반연하면서도 자재한 삼매를 얻지 못하거나, 얻더라도 확고하지 못하여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하는 것이니라. 어떠한 한량없는 마음을 자재는 하지만 반연이 아니라 하는가. 부모·형제·자매를 반연하여 안락을 얻게 하려는 것들은 한량없는 마음의 반연이 아니니라. 어떠한 한량없는 마음을 반연도 있고 자재도 하다고 하는가. 부처님과 보살들을 말하는 것이니라. 어떠한 한량없는 마음을 반연도 아니고 자재도 아니라 하는가. 성문과 연각은 한량없는 중생을 반연하지도 못하고 자재도 아니니라. 선남자야. 이런 뜻으로 4무량심은 성문이나 연각들의 알 것이 아니고, 부처님 여래의 경계니라. 선남자야. 이러한 네 가지는 성문이나 연각은 한량없다고 이름하지만 너무 적어서 말할 것이 못되는 것이요 부처님과 보살만은 한량없고 갓이 없다고 이름하느나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그러하나이다. 참으로 거룩한 말씀과 같아서, 여래의 가지신 경계는 성문이나 연각으로는 미칠 것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보살이 대승의 대반열반경에 머물러서 사랑하는 마음과 가없이 여기는 마음을 얻더라도 큰 사랑과 큰 가없이 여김이 아닐 수 있겠나이까?" "있느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만일 중생들 가운데 3품으로 분별하면 첫째는 친한 이, 둘째는 원수, 셋째는 중간사람이다. 친한 이를 또 3품으로 나누면 상품·중품·하품이며 원수도 그러하니라, 이 보살마하살이 상품의 친한 이에게는 더 나은 낙을 주고. 중품·하품의 친한 이에게도 평등하게 더 나은 낙을 주며, 상품의 원수에게는 조그만 낙을 주고, 중품의 원수에게는 중품 낙을 주고, 하품의 원수에게는 더 나은 낙을 주며, 보살이 이렇게 점점 더 닦아서 상품의 원수에게 중품 낙을 주고, 중품·하품의 원수에게 평등하게 더 나은 낙을 주며, 더 점점 닦아서 상품·중품·하품에게 평등하계 상품낙을 주나니, 만일 상품의 원수에게 상품 낙을 주면, 그 때에는 사랑하는 마음을 성취하느니라. 보살이 그 때에는 부모와 상품의 원수에게 평등한 마음을 얻어 차별이 없으리니, 이것을 이름하여 사랑하는 마음을 얻었다 하거니와, 큰 사랑하는 마음은 아니니라."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보살이 이렇게 사랑하는 마음을 얻은 것을 오히려 큰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이름하지 못하나이까?" "선남자야. 성취하기 어려우므로 큰 사랑이라 이름하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지나간 옛적 한량없는 세월에 오래오래 번뇌만 쌓았고 선한 법을 닦지 못하였으므로, 하루 동안에 마음을 조복할 수 없느니라. 선남자야, 마치 완두(豌豆)가 말랐을 적에는 송곳으로 찌를 수 없는 것처럼, 번뇌의 굳기도 그와 같아서 하루 밤낮에 마음을 두어 산란치 않아도 조복하기 어려우니라. 또 집에 있는 개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산에 있는 들사슴은 사람을 보면 무서워서 달아나나니, 성내는 마음을 버리기 어렵기는 집을 지키는 개와 같고, 사랑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기 쉽기는 들사슴 같으므로 조복하기 어려우니라. 이런 뜻으로 큰 사랑이라 이름하지 않느니라. 또 선남자야. 돌에 그린 그림은 문채가 항상 있지만 물에 그린 것은 빨리 없어져서 오래가지 못하나니, 성내는 마음은 돌에 그린 그림 같고, 선한 근본은 물에 그린 그림 같나니, 그러므로 조복하기 어려우니라. 마치 큰 불더미는 밝은 빛이 오래 머물고. 번개 빛의 밝은 것은 잠깐도 머물 수 없거든, 성내는 마음은 불더미 같고 사랑하는 마음은 번개 빛 같으므로 조복하기 어려우니, 그런 뜻으로 큰 사랑하는 마음이라 이름하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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