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경(千手經)은 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千手千眼觀世音普薩廣大圓滿無碍大悲心陀羅尼經의 약칭이다. 일반 불자들에게 기본경전이라 할수 있는 천수경을 묘봉스님께서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수 강의해 드립니다
회수 :
16회
제목 :
천수천안 관자재보살의 의미
법회일자 :
2003-02-17
이 관세음보살의 名號를 가지고 여태까지 일이 벌어지는데, 보통 다섯 글자로 ‘관세음보살’이라, 그런데 여기 이 ‘觀’자를 썼으니 관세음보살은 분명히 과 관계가 있으며 따라서 그이가 하는 일은 “세상을 두루 살펴보는 일”이라는 말인가?
이 ‘觀’자에 문제가 있으니. 만약 관세음보살이 늘 세상을 걱정하여 “누가 불쌍한가?” “어떤 자식이 잘못되었는고?”한다면 이는 보살펴야할 것이 상주함이라 보살은 곧 그 자신이 만든 걱정근심의 노예가 됩니다. 지극하게 자애로우신 어머니의 모습처럼 늘 병들고, 연약하며 스스로 일어설 수 없는 자식들과 미천한 종들을 보살펴 주는 일은, 언뜻 보면 상당히 아름다운 이야기인 것 같지만, 다른 입장에서 본다면,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없는 자기모순에 떨어지게 됩니다.
저 관세음보살의 본분(本分)은 도대체 그 무엇이며 저와 같이 남의 잘못만 보아야한다면 어찌 보살이라 불릴 수 있을 것인가?
부처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
만약 병든 자, 힘없고 연약한 자, 죄지은 자와 사악하고 어리석은 자만 본다면 이것은 다른 말로는 관세음보살 자신의 눈이 병들었으며, 힘없고 무기력하며 죄와 사악(邪惡)함과 어리석음을 보기 위해 있는 것이라는 말이 되고 맙니다.
보살이 제가 보는 것을 스스로 책임져야한다는 말인데 인간에 대한 피할 수 없는 동정심으로부터 스스로 자유롭지 못하다면 이 필연성은 이미 자신이 부자유라 자기도 해탈시키지 못할 것이어늘 어찌 남을 도와 해탈시킬 수 있으리요? 또, 관세음보살 자신이 돌봐야 할 저 편의 사바세계와 무한한 자기 해탈과 중생을 당신의 위치까지 끌어올릴 능력을 동시에 소지한 분이 관음[avalokitesvara]이라면 이미 충족된 것이어늘 다시 두 손과 눈도 모자라 천 개를 가져야한다는 것인가?
병신과 천치들 앞에서 즐거워하는 부처와 예수라면 누구를 위하여 해탈(解脫)을 구하며 하늘의 아들이 된다는 말인가? 하느님과 부처님의 업이 가련한 중생들과 죄많은 백성들에 있다면 가련할수록 좋고 죄가 많을수록 성현의 할 일이 많아진다는 말이니 도움 받는 쪽에서는 칭찬을 얻는 첩경이 되리라. 그러나 관세음보살은 무슨 業을 지어 남 돌보는 일로 일생을 허비하는 것인가? 이렇게 본다면 관세음보살도 할 말이 없어집니다.
분명 여기 보살의 문제점이 있습니다. 사람들도 여기에 이르면 스스로 반문하며 권장하기를, “남에게 봉사하고 나를 희생하여 남에게 베푸니 선량함이라 어찌 훌륭하다하지 않으리요?”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고 남을 돕는 일이야 어찌 탓할 수가 있겠습니까? 기꺼이 나를 버리는 일과 남을 돕고 사랑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아름다운 마음이라 함은 제 허물을 보되 남의 허물은 보지 않기 때문이요 나를 버린다 함은 나와 남을 둘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나의 허물도 모르고 남의 허물을 용서하는 어리석은 사랑이나 남의 허물만 보고 나의 허물을 덮어두려는 비겁함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남을 돕는다는 것은 남의 잘못을 보았을 때 일으키는 생각입니다. 본분(本分) 상으로 본다면 모든 사람이 이미 부처요, 그 자체 하늘의 뜻과 추호라 어긋나지 않으며, 각자의 성품(性品)그대로가 관세음보살님과 털 끝만큼도 다를 바 없으나 상하(上下) 구분(區分)과 주종(主從)差別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자비와 사랑은 거짓이 됩니다.
긍휼(矜恤)히 여기는 마음과 동정(同情)심으로 돕고 자만(自慢)심으로 구제(救濟)하려한다면 자비와 사랑은 외도(外道)의 법을 익히는 사람입니다.
주는 자와 받는 자라는 이원적 구도에서 펼치는 양분(兩分)된 사랑은 도우려는 마음과 칭찬 받으려는 마음을 일으키며 선악(善惡)의 대립을 해소시키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분명 이론적 세계에 머무는 외도(外道)에 불과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외도(外道)는 곧 요즘 말로 하자면 이론적 세계이니 나와 네가 다르며 하늘과 땅의 세계가 분명 다르며, 성속(聖俗)의 차별이 엄격한 이원적 세계관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몸에서 전혀 다른 두 개의 세계가 어떻게 나왔을까를 설명하지 못하고 눈 앞에 나타나 보이는 두 개의 다른 색상(色相)을 믿을 때 이것이 외도의 세계입니다. 관세음보살은 천수경의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또 다른 별명이 ‘佛母’ 즉, 부처님의 어머니입니다.
외도(外道)의 견해가 끊어지면 곧 부처님이 출현하시기 때문입니다. 불이(不二)법을 알고 무이(無二)법을 체증(體證)할 때에 비로소 부처님을 친견하기 때문입니다. 견성(見性)의 주체가 관음이라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