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서울 대성사 도문스님을 은사로 출가득도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졸업 동국대학교 대학원 선학과 석사과정 졸업 동국대학교 대학원 선학과 박사과정 수료 동국대학교 전자불전연구소 연구원 역임 동국대학교 강사 일산 선문사 주지 만일념불회(萬日念佛會) 운영위원 한국선학회 운영위원 서강대학교 불교학생회 지도법사
회수 :
11회
제목 :
자비의 장
법회일자 :
2003-12-27
(143) 사물에 통달한 사람이 평안한 경지에 이르러 해야할 일은 다음과 같다.
능력 있고, 정직하고 바르며, 말씨는 상냥하고 부드러우며, 잘난 체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열심히 살고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되지만 허항된 심리의 영향으로 게으르게 살며 남을 속이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 이런 사람은 대부분 속이 비어있기 때문에 겉으로 무엇인가 티를 내려고 한다. 일종의 잘난체를 하는 것이다. 이런 것이 조금 발전하면 사기꾼이 되는 것이다. 태어날때부터 정직함과 사기를 편갈라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자라면서 마음의 자세를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사소한 것에서 모든 큰일은 시작되기 때문이다. 또 우리는 버드나무처럼은 아니더라도 친절하고 부드럽게 이웃을 대해야 된다. 그러나 마른 고목처럼 뻣뻣해 하며 살아간다. 이런 모습은 사람이 아닌 하나의 나무토막이 지나가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마음의 자비가 메말라서 그러한 것이다. 충만된 자비의 물줄기를 갖고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144) 만족할 줄을 알고, 기르기 쉽고, 잡일을 줄이고, 생활도 또한 간소하게 하며, 모든 감각이 안정되고 총명하여 마음이 성내지 않으며, 남의 집에 가서도 탐욕을 부리지 않는다.
(우리는 어느일을 하다보면 자기 능력보다도 더 많은 일을 할당받는 경우가 있다. 받을 당시에는 윗사람에게 좋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뒷감당을 할수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더 좋지않은 인상과 관계로 변할가능성이 높다. 그 많은 일을 처리하는 순간은 지옥으로 변하고 안절부절 노심초사의 마음으로 변할 것이다. 그러면 마음이 화도 잘내고 지극히 예민해질 것이다. 그리고 주변의 모든 사람이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다. 본인도 내가 왜 그렇게 했을까?라는 자책을 할 것이다. 자신과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안정과 평온을 주는 것도 큰 자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만족할줄알고 많은 일들을 줄이는 것이다.)
(145) 다른 현명한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살 만한 비열한 행동을 결코 해서는 안 된다. 모든 생물은 다 행복하라. 태평하라. 안락하라.
(치열한 생존경쟁의 전쟁터라는 사회안에서 지극히 정도를 걸으면서 올바르게 산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피라미드식구조의 상층부는 하층부를 딛고 올려져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잘 되기 위해서는 남의 고통을 수혈해야 되는 구조이다. 남의 아픔이 뒤에 있는 것이다. 수행자는 그런 구조적 모순의 패러다임을 알기 때문에 위로가 아닌 아래로 향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생활 속에는 본의 아니게 비난을 살만한 행동을 하게되고 때로는 비열한 행동으로 비춰질 때도 있다. 그러나 자비심의 발로에서는 그렇게 비춰져서는 안된다. 담장너머로 소뿔이 보이면 소가 지나가는 것이고 굴뚝에 연기가 나면 불을 때는 것이다. 원인과 결과가 분명하다. 비춰진다는 것은 할수있다는 것이고 이미 했다는 증거가 될 수있다. 경계를 해야 한다.)
(146) 어떠한 생물일지라도 겁에 떨거나 강하고 굳세거나, 그리고 긴 것이건 큰 것이건 중간치건, 짧고 가는 것이건, 또는 조잡하고 거대한 것이건.
(147)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멀리 또는 가까이 살고 있는 것이나, 이미 태어난 것이나 앞으로 태어날 것이거나 모든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예전에 내가 아는 분은 상당한 수행자로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가까이서 같이 지내보니 매우 불합리한 부분을 보게 되었다. 비가오면 마당에 지렁이가 나오게 되는데 그 지렁이를 볼때마다 ‘살생중죄금일참회’라고 진언을 외우면서 밟아죽이는 것이었다.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면서 진언을 외우면 뭐하는 것인가? 진정한 자비심이 있는 것인가? 라는 의문을 가졌었다. 왜냐하면 밟혀죽는 생물은 생을 마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은 생명체도 인간과 같은 모습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차별적인 생각의 구조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렁이와 인간은 같은 존재이다. 이원적인 생각은 버려야 한다. 다시 말해서 종교에서 행해지는 “은총의 모순(paradox of grace)”이라는 지극히 편안한 자기해석 방식의 합리화를 해체시켜야 한다.)
(148) 어느 누구도 남을 속여서는 안 된다. 또 어디서나 남을 경멸해서도 안된다. 남을 골려 줄 생각으로 화를 내어 남에게 고통을 주어서도 안된다.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포장을 많이한다. 즉 거짓말을 진짜인것처럼 확대생산해 낸다. 시간이 지나면 자기가 하는 모든 거짓말이 진실인것처럼 착각을 한다. 거짓말을 하고도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라는 자기 암시를 한다. 시간이 지나면 구분이 않된다. 그러니 끊임없이 잘못된 말을 만들어 낸다. 종국에는 거짓말에 치여서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대부분 교도소에 가는 분들이 많아진다는 말이다. 자비의 마음에는 남을 속이는 생각이 조금도 개입되서는 않된다. 왜냐하면 남을 고통스럽게 하기 대문이다.)
(149) 마치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외아들을 아끼듯이, 모든 살아 있는 것에 대해서 한량없는 자비심을 내라.
(어머니의 사랑은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역할을 한다. 식물이 자라기 위해서 필요한 거름과 같이 살아가신다. 그래서 慈母라는 표현도 쓴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 많큼 자식 사랑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식은 부모님의 마음을 잘 모른다. 대부분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에 알게 된다. 너무 늦다. 우리가 부모님의 마음만 제대로 알아도 자비라는 단어를 정확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미국에서 이사를 하는 가정이 있었다. 3층에서 아래층으로 이삿짐을 나르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피아노를 옮기고 있었다. 그런데 실수로 피아노를 떨어뜨리게 되었다. 공교롭게 그 떨어지는 곳에는 그 부모의 딸이 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어머니는 순식간에 뛰어들어 떨어지는 그 피아노를 두 손으로 번쩍들었다. 위대한 어머니의 모성을 알 수 있다.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물론 아버지의 부성도 이에 못지 않다는 사실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