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경(千手經)은 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千手千眼觀世音普薩廣大圓滿無碍大悲心陀羅尼經의 약칭이다.
일반 불자들에게 기본경전이라 할수 있는 천수경을 묘봉스님께서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수 강의해 드립니다
회수 : 10회      
제목 : 아금문견득수지의 뜻(2) 법회일자 : 2003-02-03
  한 겁(劫)도 그 세월을 가늠할 수 없어 무량한 세월이라, 사람의 입이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세월이라 劫[aeon]이라 불렀거늘 다시금 이에 백 천 만 배를 더하여도 만나기 어려운 법을 만난다니 이를 어찌 부처님의 말씀이 귀중하여 이에 찬양하는 뜻으로만 볼 수 있겠습니까?

도대체 무슨 세월을 어떻게 지내온 것이란 말인가?
주인 없는 세월은 너나할 것 없이 가라하지 않아도 가는 세월입니다. 그 가는 힘[去力]이 어찌나 센지 말릴 사람이 없습니다. 부처님도 하나님도 가는 세월은 붙잡지 못한다고들 말합니다.

내 사정도 모르고 흐르니 미혹(迷惑)의 세월(歲月)이요 무엇이 가는지 모르니 멍청한 세월입니다. 마음 들뜬 패거리들의 세상보내기입니다. 이 세월은 오직 한가지 내용만을 담고 있습니다. 사유(思惟)와 판단(判斷)이라는 어휘도 좋지만 보통 부처님 당시에는 이를 ‘계탁(計度)’이라고 했습니다.

헤아리는 그 때이며 자로 재고 이러쿵저러쿵 따지는 思念(사념)의 앞-뒤입니다. 사념에서 나온 결과들이 바로 윤회를 짓는 업의 인(因)이 되는데 이 자그마한 因들이 쌓여 한없이 무의식적으로 [어떤 이들은 잠재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적취(積聚)되어가는 동안 우리 스스로는 사념(思念)이 만든 윤회의 감옥에 갇혀 그 안에서 거듭 배회하도록 책동합니다.

윤회의 감옥은 크게 나누어 여섯 방(房)이지만 자세히 보면 한 생각 일어나는 순간마다 새롭고 내용이 다른 어두운 방, 즉 지옥의 어느 단계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셈입니다. 이들 지옥의 특징은 한번 들어간 감옥은 두 번 다시 같은 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 번 들어간 지옥은 영원히 다시 돌아오지 않게 됩니다.

무슨 수를 쓰든 안주(安住)할 길을 찾거니와 이 사념(思念)사념이 만든 지옥은 계탁(計度)의 수레바퀴라 동일한 지옥에 머무는 법이 없습니다.

지옥에 든 사람은 머물러 있으려하자마자 금새 튀어나와 천국이든 축생이든 다른 갈래 길로 내빼 도망갑니다. 마음 같아선 천국에 영원히 살고 싶지만 앉기도 바쁘게 이미 다른 곳으로 流入(유입)되고 맙니다.

사람의 세계로, 사람이 아닌 세계로, 짐승의 세계로, 아수라의 세계로, 아귀의 세계로, 축생의 세계로 계속 돌아다닙니다. 어떤 이들은 이를 일컬어 인성(人性) 안에는 천사와 마귀와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 말은 뒤집어서 말하면 사람 속에 사람은 없고 윤회의 귀신들만 들어 있다는 말도 됩니다.

우리에게는 지옥에만 머물러 있을 자격도 없고, 천당에만 머물러 있을 자격도 없습니다. 짐승이 되어서 혹은 여우가 되고, 혹은 개로 되고, 혹은 소가 되고, 혹은 쥐가 되고, 혹은 이무기가 되어 돌아다닐 때에도 한 몸을 받아서 그 몸을 유지하고 영원히 살 법은 없습니다.

이것이 緣起의 변화 無雙한 모습과 똑 같습니다. 한 생각도 동일한 생각을 뒤에 되풀이하지 못합니다.

옛날 인도나 희랍이나 중국에서 “깨달은 이로서” “자신을 아는 지혜로서” “어진 이로서” 살았던 이들이 깨달은 문제는 무엇이었던가? 저들은 이 문제에 같은 결론을 얻어 낼 수가 없었는가? 아니면 현명하기 때문에 결론을 내지 않은 것인가? 우리가 머물러 있는 이 세계는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가? 아니면 무엇 때문인지 이유야 분명하겠지만 안주(安住)할 일정한 땅이 없다는 것인가? “만물이 유전(流轉)한다”[panta rei]는 마침내 인간과 인간의 세계를 모두 버리는 것처럼 들립니다.

염세(厭世)와 비관(悲觀)은 실제로는 流轉을 다시 流轉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 다른 세계로 간다고 얘기하기도 합니다. 비록 그 실제 상황이야 어찌 되었든 마음의 세계와 객관적 실재의 세상은 그 어느 쪽도 본성상 자기 동일성 안에 머물러 있는 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동일성을 주장하기 위하여는 의식[cogito]를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 말씀으로는 이것을 法이 공(空)하고 아(我)가 공(空)하다 합니다. 신(身)이 空하다. 마음이 空하다 등등의 말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空하다고 이르는 當處(당처)가 또 텅 비었기 때문입니다. 같다[identical]거나 다르다[different]고 말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세상의 주인도 아니고 손님도 아니라는 것, 그리하여 現劫(현겁)이 空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무엇이 현겁인가? 자의식의 시간 설정입니다.

시간의 주인은 이름없는 나요
이름없는 나의 주인은 주인없는 경계라.

그렇다면 다음의 “백 천 萬劫(만겁)”은 무엇인가?
유전하며 떠 다니는 세계가 백 천 만겁을 두고 그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르시는 말씀인가? 밑 없는 항아리에 물 채우는 것과 같기 때문인가? 붓고 또 부어도 항아리는 결코 채워지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릇이 크기 때문이 아니라 그릇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法[一切有]가 텅 빈 무주공산(無主空山)을 탐욕과 진에와 치암(痴暗)으로 채우려 듭니다.

귀신 놀음이라 떠들지 말라.
이 또한 귀신에게 속은 소리로다.

그리고 이 순간까지 한번도 이것을 自覺한 적이 없습니다. 모르는 줄도 모르므로 痴暗이요 이를 근본악(根本惡) 혹은 근본독(根本毒)으로 부르거니와 “法[모든 있는 것]이 없는 세상에 자신을 소모시키며 사는 줄도 아직 모르기 때문”입니다.

달빛은 그 자신이 밝은 줄도 모르거니와 제가 온 세상을 두루 밝히고 있는 줄도 모릅니다. 우리의 어리석음도 꼭 그와 같습니다. 우리의 세월을 보면 미혹한 마음도 꼭 그와 같습니다.

미혹(迷惑)함에는 제 자신 주인도 없고, 무엇이 그와 같이 미혹시키는지 전혀 모르며, 어제와 오늘이 없는 법이기 때문에 여전히 한없는 겁(劫)의 세월을 보낸다 말합니다. 그것이 백 천 만겁입니다.

이것은 끝없이 이어져 가는 윤회의 바퀴이며, 지루한 세월의 반복이며, 자기 자신을 깨우치는 법이 없는 아주 냉랭한 세상입니다. 메마른 회색 빛 사회입니다. 내가 보고, 내가 듣는 것만이 지금껏 옳다 생각하고 믿고 살아왔는데 오늘 이 순간 갑자기 수미산의 꼭대기 위에 올라서 있게 되었습니다.

산에 올라가서 올라갈 때에는 한없는 괴로움과 시달림과 무섭고, 지루함이 있었지만 홀연히 올라 보니 이 어찌 된 일입니까? 지금까지 보지 못한 놀랄만한 사실이 눈 앞에 펼쳐진 것입니다.

내가 그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어찌하여 내가 저들 가운데 들어 있었을까? 홀연히 산상에 올라 바라보니 내 눈 안에 도리어 모든 것이 들어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 작디작은 안구(眼球) 속으로 모든 세상이 말입니다.

즉, 내가 세상을 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부처님은 이것을 기신(起信)이라. 信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라 이르십니다. 이제 깜짝 놀라 정신을 가다듬고 세상을 다시 보기 시작하였다는 말입니다.

이제 더 이상 세상 안에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내가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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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2-03   아금문견득수지의 뜻(2) 10회
2003-01-30   아금문견득수지의 뜻 9회
2003-01-29   백천만겁난조우의 뜻 8회
2003-01-28   무상심심미묘법의 뜻 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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