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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조계종 제 15 교구 본사 통도사에서 홍법스님을 은사로 사미계 수지 1971년 조계종 제 15 교구 본사 통도사에서 월하스님을 계사로 구족계 수지 1974년 조계종 제 12 교구 본사 해인사 승가대 대교과 졸업 1978년 조계종 제 4 교구 본사 월정사에서 화엄학 수학 1980년 조계종 제15교구 본사 통도사 규정국장, 재무국장 1983년 조계종 총무원 교무국장, 조사국장 역임 1988년 조계종 9,10,11,12대 중앙종회 의원 역임 1994년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 조계종 개혁회의 상임의원, 11대 중앙종회 총무분과위원장 1998년 불교텔레비젼 대표 사장 및 불교방송 이사 역임 일산 포교당 여래사 주지 역임 통도사 서울포교당 구룡사 주지 역임 前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본사 영축총림 통도사 주지 現 통도사 서울포교당 구룡사 회주 現 불교TV 이사 現 재단법인 아름다운 동행 이사 現 해인사승가대학 동문회 제16대 회장 現 서울 강남지역(강남, 서초, 송파, 강동) 사암연합회 초대 회장 現 국제보건의료재단 이사(보건복지부 산하) 現 홍법문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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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수 : |
4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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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
대반열반경 제 23 권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⑤ |
법회일자 : |
2012-06-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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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제23 권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⑤
- 550쪽 중간부터 ~ 565쪽까지
이 때에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번뇌가 끊어진 데를 열반이라 한다면 그렇지 않나이다. 왜냐 하면 여래께서 예전에 처음으로 부처의 도를 이루려고 니련선하(尼連禪河) 가에 가셨을 때에, 마왕이 권속들을 데리고 부처님 계신 데 와서 말하기를 `세존이여, 열반하실 때가 되었사온데 어찌하여 열반에 들지 않나이까?` 하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왕이여, 나에게는 지금 많이 아는 제자로서 계율을 잘 지니고 총명하고 지혜 있는, 중생을 교화할 만한 사람이 없다. 그래서 열반에 들지 않노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번뇌가 끊어진 데가 열반이라 하오면 여러 보살들은 한량없는 겁 전에 이미 번뇌를 끊었는데, 어찌하여 열반이라 하지 아니하며, 다 같이 끊었는데 어찌하여 부처님만 열반이 있고 보살에게는 없다 하나이까? 만일 번뇌를 끊었어도 열반이 아니라면, 부처님께서는 어찌하여 예전에 생명(生名) 바라문에게 말씀하기를 `나의 지금 이 몸이 곧 열반이니라` 하였사오며, 또 비사리(毘舍離)성에 계실 적에 마왕이 또 여쭙기를 `여래께서 예전에는 많이 알고 계율을 잘 지니고 총명하고 [551 / 909] 지혜가 있어, 중생을 교화할 만한 제자가 없어서 열반에 들지 않는다 하시더니, 지금은 구족하였사온데, 왜 열반에 들지 않나이까?` 하거늘, 그 때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궁금하게 기다리는 생각을 내지 말라. 지금부터 석 달 뒤에는 내가 열반에 들리라` 하셨나이까?" 세존이시여, 만일 멸도(滅度)함이 열반이 아니라면 어찌하여 여래께서 석 달 뒤에 열반에 든다 하셨나이까? 세존이시여, 만일 번뇌를 끊음이 열반이라면 여래께서 처음 도량에 계실 적에 보리수 아래서 번뇌를 끊으신 때가 곧 열반이옵거늘, 어찌하여 앞으로 석 달 뒤에 열반에 드신다고 말씀하셨나이까? 세존이시여, 그 때가 열반이라 하오면, 어찌하여 구시나성에서 여러 역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새벽녘에 열반에 든다`고 하셨나이까? 여래는 진실하옵거늘 어찌하여 허망한 말을 내시나이까?" 이 때에 부처님께서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만일 여래가 광장설(廣長舌)을 얻었다면 여래는 한량없는 겁 전부터 허망한 말이 없는 줄을 알아야 하나니, 모든 부처님이나 보살들의 하는 말은 진실하여서, 허망하지 아니하니라. 선남자여, 그대의 말과 같이 파순이 예전에 나에게 청하여 열반에 들라고 하였다면, 선남자여, 이 마왕은 열반의 일정한 모양을 진실하게 알지 못하는 것이니라. 왜냐 하면 파순의 생각엔 중생을 교화하지 않고 잠자코 있는 것을 열반인 줄로 아는 모양이기 때문이다. 마치 세상 사람이 어떤 이가 말로 하지 않고 아무 하는 일이 없는 것을 보고는, 이 사람은 죽은 자와 다름이 없다 하듯이, 파순도 그와 같아서 생각하기를, 여래가 중생을 교화하지도 않고 잠자코 말이 없는 것으로써 여래가 열반에 든다고 하는 모양이니라. 선남자여, 여래는 불·법·승 삼보가 차별이 없다는 것을 말하지 않고, 다만 항상 머무는 법과 청정한 법이 차별이 없다고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부처님도 `부처나 불성이나 열반이 차별한 모양이 없다`고 말하지 않고, 오직 항상하고 변하지 않음이 차별이 없다고 말하느니라. 부처님도 열반과 실상이 차별이 없다고 말하지 않고, 다만 항상 있고 진실하여 변하지 않는 것이 차별이 없다고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그 때에 나의 성문 제자들이 분쟁을 일으키고, 구섬미(拘睒彌) [552 / 909] 국의 나쁜 비구들은 나의 가르침을 어기고 계율을 범하며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받아 이양(利養)을 구하면서, 재가의 사람들을 향하여 스스로 칭찬하기를 `나는 무루를 얻었으니 수다원과와, 내지 아라한과를 얻었다` 하고, 다른 이를 헐뜯어 욕하며, 불·법·승 삼보와 계율과 화상에게도 공경하지 아니하고, 공공연하게 내 앞에서 이런 물건은 받으라고 부처님이 허락하였다 말하지만 나는 허락한 것이 아니고, 그런 것을 나는 허락하지 않았다 하여도, 그들은 나와 반대로 이런 것은 참으로 부처님이 허락하였다 하며, 이런 나쁜 사람이 나의 말을 믿지 아니하기에, 내가 파순에게 말하기를 너는 궁금하게 기다리지 말라. 이제부터 석 달 뒤에 열반에 들겠노라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이러한 나쁜 비구들로 인하여, 성문의 배우는[受學] 제자들로 하여금 나의 몸을 보지 못하고 나의 법을 듣지 못하게 하여 여래가 열반에 들었다고 말하게 하였거니와, 보살들은 내 몸을 보고 내 법을 들으므로 내가 열반에 들었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며, 성문 제자들이 여래가 열반에 들었다고 말하더라도 나는 실로 열반에 들지 아니하느니라. 선남자여, 나의 성문 제자들이 만일 말하기를, 여래가 열반에 들었다면, 이 사람은 나의 제자가 아니요 마군의 도당(徒黨)이며, 나쁜 소견을 가진 사람이요 바른 소견이 아니거니와, 여래가 열반에 들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는 이 사람이 참으로 나의 제자요 마군의 도당이 아니며, 바른 소견을 가진 사람이요 나쁜 무리가 아니니라. 선남자여, 나는 본래부터 제자들 중에서 여래가 중생을 교화하지 않고 잠자코 있는 것은 열반에 든 것이라고 말하는 이를 보지 못하였노라. 선남자여, 어떤 장자가 여러 아들을 버리고 다른 지방으로 가서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았을 적에, 아들들이 말하기를 아버지가 이미 죽었다 하나 장자는 실로 죽은 것이 아니지만, 아들들이 잘못 생각하여 죽은 줄로 아는 것이니, 성문 제자들도 그와 같아서 나를 보지 못하므로, 여래가 구시나성의 쌍으로 선 사라나무 사이에서 열반에 들었다 하지만 나는 실로 열반에 들지 아니한 것을 성문 제자들이 열반하였다고 생각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마치 밝은 등불을 어떤 사람이 가리웠을 때에, 알지 못하는 사람은 등불이 꺼졌다 생각하거니와 등불은 실로 꺼진 것이 아니며, 알지 못하 [553 / 909] 여서 꺼졌다고 생각하듯이, 성문 제자들도 그와 같아서 비록 혜안이 있으면서도 번뇌에 덮이어서 마음이 뒤바뀌었으므로, 참몸[眞身]을 보지 못하고 멸도하였다는 생각을 내거니와, 나는 끝까지 멸도한 것이 아니니라. 선남자여, 배냇소경은 해와 달을 보지 못하였으며, 해와 달을 보지 못하므로 낮과 밤이 밝고 어두운 줄도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므로 해와 달이 없다고 말하나니, 해와 달은 진실로 있건만 소경이 보지 못하는 것이며, 보지 못하는 탓으로 잘못된 생각을 내어 해와 달이 없다고 하는 것이니라. 성문 제자들도 그와 같아서 저 배냇소경과 같이, 여래를 보지 못하므로 여래가 열반에 들었다고 말하거니와 여래는 실로 열반에 들지 아니하였으며, 잘못된 생각으로 이런 마음을 내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안개와 구름이 해와 달을 가리웠을 때에 어리석은 사람은 해와 달이 없어졌다고 말하지만, 해와 달은 실로 있는 것을 구름이 가리웠으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니라. 성문 제자도 그와 같아서 번뇌가 지혜 눈을 덮었으므로 여래를 보지 못하고, 여래가 열반에 들었다고 말하는 것이니, 선남자여, 이는 여래가 젖먹이 아기의 행을 나타내는 것일지언정, 멸도한 것이 아니니라. 선남자여, 염부제에 해가 졌을 때에 중생들이 보지 못함은 흑산(黑山)이 가리운 까닭이요, 해는 본래 지는 것이 아니지만 중생들이 보지 못하므로 졌다는 생각을 내는 것이니라. 성문 제자도 그와 같아서 번뇌의 산이 가리워서 내 몸을 보지 못하는 것이며, 보지 못하는 연고로 여래가 멸도한다는 생각을 내지만 나는 실로 끝까지 멸도하는 것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내가 비사리(毗舍離)성에서 파순에게 말하기를 앞으로 석 달 뒤에 내가 열반하리라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여래는 가섭보살이 석 달 뒤에 선근이 성숙할 것을 미리 보았으며, 또 향산의 수발다라(須跋陀羅)가 안거를 마치고는 나에게 올 것을 알았으므로 마왕 파순에게 말하기를 석 달 뒤에 열반에 든다고 하였느니라. 여러 역사가 있으니 그 수가 5백이라, 석 달을 마치고는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낼 것이니, 그러므로 내가 파순에게 말하기를 석 달 뒤에 열반에 들 것이라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순타(純陀)와 5백 명의 리차(梨車)와 암라과녀(菴羅果女)가 석 달 뒤에 위없는 보리를 이루려는 선근이 성숙할 [554 / 909] 것이므로, 내가 파순에게 말하기를 석 달 뒤에 열반에 들겠다고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수나찰다(須那刹多)가 니건자 외도에게 친근하는 것을 내가 12년 동안 법을 말하였으나, 나쁜 소견으로 믿지도 않고 배우지도 않았는데 이 사람의 나쁜 소견의 뿌리가 석 달 뒤에 뽑힐 줄을 알았으므로, 내가 파순에게 말하기를 석 달 뒤에 열반에 들겠다고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무슨 인연으로 내가 예전에 니련선하 가에서 파순에게 말하기를 나는 지금 지혜 있는 제자가 없다. 그래서 열반에 들 수 없노라 하였는가 하면, 나는 다섯 비구들을 위하여 바라나에서 법수레를 굴리려 한 까닭이며, 또 야사(耶奢)·부나(富那)·비마라사(毗摩羅闍)·교범바제(憍梵波提)·수바후(須婆睺) 등의 다섯 비구를 위하여, 또 욱가(郁伽) 장자 등 50사람을 위해서, 또 마가다국의 빈바사라왕 등 한량없는 세간 사람 천상 사람들을 위하여, 또 우루빈나 가섭의 제자 5백 비구를 위하여서, 또 나제가섭·가야가섭의 형제 두 사람과 그의 5백 제자를 위하여서, 또 사리불과 목건련 등 2백50 비구를 위하여서 미묘한 법수레를 운전하려고 마왕 파순에게 열반에 들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니라. 선남자여, 열반이라 이름하고 대열반이라 이름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어떤 것을 열반이라 하고 대열반이라 이름하지 않는가. 불성을 보지 못하고 번뇌만 끊은 것은 열반이라 하고 대열반이라 이름하지 아니하느니라. 불성을 보지 못하였으므로 항상함도 없고 나도 없으며, 즐거움과 깨끗함만 있나니, 이런 뜻으로 번뇌를 끊었으나 대열반이라 이름하지 않느니라. 만일 불성을 보고 번뇌를 끊었으면 대반열반이라 이름하나니, 불성을 보았으므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 하며, 이런 뜻으로 번뇌를 끊은 것도 대반열반이라 일컫느니라. 선남자여, 열(涅)은 아니란[不] 말이요, 반(槃)은 멸한다[滅]는 말이니, 멸하지 않는 것을 열반이라 하느니라. 반은 또 덮는다[覆]는 뜻이니, 덮이지 않았다는 뜻을 열반이라 하느니라. 반은 또 간다 온다[去來]는 뜻이니,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음을 열반이라 하느니라. 반은 취(取)하는 뜻이니, 취하지 아니함을 열반이라 하느니라. 반은 일정치 않다[不定]는 뜻이니 선정이 일정치 아니함이 없음을 열반이라 하느니라. 반은 새 것과 낡은 것[新故]이란 말
[555 / 909] 이니, 새 것과 낡은 것이 없음을 열반이라 하느니라. 반은 장애[障]란 말이니, 장애가 없음을 열반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우루가(優樓迦)와 가비라(迦毗羅)의 제자들이 말하기를 반은 모양[相]이란 뜻이니, 모양이 없음을 열반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반은 있다[有]는 말이니, 있지 아니함을 열반이라 하느니라. 반은 화합(和合)이란 말이니 화합이 없음을 열반이라 하느니라. 반은 괴롭다[苦]는 말이니, 괴롬이 없음을 열반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번뇌를 끊은 것은 열반이라 하지 않고 번뇌가 생기지 않음을 열반이라 하나니, 선남자여, 부처님 여래는 번뇌가 일어나지 않으므로 열반이라 이름하느니라. 가진 지혜가 법에 장애되는 것이 없음을 여래라 하느니라. 여래는 범부도 성문도 연각도 보살도 아니니, 이름을 불성이라 하느니라. 여래의 몸과 마음과 지혜가 한량없고 가없는 아승기 세계에 가득하여 장애가 되지 아니하므로 허공이라 하느니라. 여래가 항상 머물러 변함이 없으므로 실상이라 하느니라. 이런 뜻으로 여래는 실로 끝까지 열반하지 아니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아서 일곱째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한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아서 여덟째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한다 하는가.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대반열반을 닦아서 다섯 가지를 끊어 버리고, 다섯 가지를 멀리 여의고, 여섯 가지를 성취하고, 다섯 가지를 익히고, 한 가지를 수호하고, 네 가지를 친근하고 한결같은 실상을 믿고 순종하여 마음이 잘 해탈하고 지혜가 잘 해탈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을 말하여 보살이 다섯 가지를 끊어 버린다 하는가.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의 5음(陰)을 말함이니라. 음은 무슨 뜻인가. 중생으로 하여금 생사가 서로 계속하여 무거운 짐을 여의지 못하게 하며, 흩어지고 모이고 하여 삼세에 포섭되나니, 그 진실한 뜻을 구하여도 찾을 수 없으므로 음이라 이름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비록 색음(色陰)을 보아도 모양을 보지 못하나니, 왜냐 하면 열 가지 색 중에서 성품을 구하여도 찾을 수 없지만, 세계를 지어내므로 음이라 하느니라. 수음에 일백 여덟이 있나니, 비록 수음을 보아도 애초부터 수음의 모양이 없느니라. 왜냐 [556 / 909] 하면 수음이 비록 일백 여덟이지만 이치로는 일정한 실제가 없나니, 그러므로 보살이 수음을 보지 못하며, 상음과 행음과 식음도 그와 같으니라. 보살마하살은 5음이 번뇌를 내는 근본임을 분명하게 보았으므로 방편으로 끊어 버리느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어떻게 다섯 가지를 멀리 여의는가. 다섯 가지 소견을 말함이니, 몸이란 소견[身見], 한쪽에 집착하는 소견[邊見], 사특한 소견[邪見], 계에 집착하는 소견[戒取見], 소견에 집착하는 소견[見取見]이니라. 이 다섯 가지 소견으로 인하여 생각이 끊이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보살이 방비하고 가까이하지 않느니라. 어떻게 보살이 여섯 가지를 성취하는가. 6념처(念處)를 말함이니, 부처님을 생각하고 법을 생각하고 승가를 생각하고 하늘을 생각하고 보시를 생각하고 계율을 생각함이라.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여섯 가지를 성취한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다섯 가지를 익힌다 하는가. 다섯 가지 선정을 말함이니, 아는 선정[知定], 고요한 선정[寂定], 몸과 마음이 쾌락한 선정, 쾌락이 없는 선정, 수릉엄정(首楞嚴定)이니라. 이 다섯 가지 선정을 익히면 대반열반에 가깝게 되나니, 그러므로 보살이 부지런히 닦아 익히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한 가지 일을 수호한다 하는가. 보리심을 말함이니라. 보살마하살이 항상 보리심을 수호하나니, 세상 사람이 외아들을 수호하듯 하며, 외눈박이가 외눈을 수호하듯 하며, 거치른 벌판에 가는 이가 길잡이를 수호하듯이, 보살이 보리심을 수호함도 그와 같으니라. 이렇게 보리심을 수호하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므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구족하게 갖는 것이, 곧 위없는 대반열반이니, 그러므로 보살이 한 법을 수호하느니라. 어떤 것을 보살이 네 가지를 친근한다 하는가. 4무량심을 말함이니, 크게 인자함[大慈]·크게 가엾이 여김[大悲]·크게 기뻐함[大喜]·크게 버림[大捨]이니라. 이 네 가지 마음으로 인하여 한량없고 그지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보리심을 내게 하나니, 그러므로 보살이 마음을 가두어 친근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보살이 한결같은 실상으로 믿고 순종한다 하는가. 보살 [557 / 909] 은 모든 중생이 한 길로 돌아감을 분명히 아나니, 한 길은 대승인데 부처님과 보살이 중생을 위하여서 셋으로 나눈 것이니, 그러므로 보살이 믿어 순종하고 거스르지 않느니라. 무엇을 말하여 보살이 마음이 잘 해탈한다 하는가.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은 마음을 아주 끊은 까닭이니, 이것을 말하여 보살이 마음이 해탈하였다 하느니라. 무엇을 말하여 보살이 지혜가 잘 해탈한다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모든 법을 막힘이 없이 아나니 이것을 말하여 보살이 지혜가 잘 해탈하였다 하느니라. 지혜가 해탈하므로 예전에 듣지 못한 것을 이제 듣고, 보지 못한 것을 보고, 이르지 못한 데에 이제 이르게 되느니라." 이 때에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마하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 마음이 해탈한다 함은 옳지 않나이다. 왜냐 하면 마음은 본래 얽매인 것이 아니오니, 그 까닭을 말하면 마음의 성품이 탐욕, 성내는 일, 어리석은 번뇌에 속박되지 아니하였나이다. 본래 얽매인 것이 아니거늘, 무엇을 말하여 마음이 해탈한다 하오리까. 마음의 본성품이 탐욕 따위 번뇌에 얽힐 것이 아니온데, 무슨 인연으로 속박할 수 있겠나이까. 마치 사람이 뿔을 짜는 것 같아서 그것에 젖의 모양이 없는 것이므로, 아무리 공력을 들여도 젖이 나올 리가 없나이다. 젖을 짜는 것은 그렇지 아니하여 공을 적게 들여도 젖이 많이 나는 것이니, 마음도 그와 같아서 본래부터 탐욕이 없었는데 지금엔들 어찌 있사오리까. 만일 본래는 없던 탐욕이 뒤에 생긴다 하오면, 부처님과 보살이 본래 탐욕이 없었으나 지금 있어야 하리이다. 세존이시여, 저 석녀(石女)는 본래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이니, 아무리 한량없는 공력의 인연을 들이더라도 아이를 낳을 수 없나이다. 마음도 그와 같아서 본래 탐욕이 없으므로, 아무리 여러 인연을 짓더라도 탐욕이 생길 수가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젖은 나무는 아무리 비비어도 불을 낼 수 없나니, 마음도 그와 같아서 아무리 비비더라도 탐욕이 생길 수 없거늘, 어떻게 탐욕의 번뇌가 마음을 얽어맬 수 있으리까. 세존이시여, 마치 모래를 짜서는 기름을 얻을 수 없듯이 마음도 그와 같아서 아무리 짜더라도 탐욕을 얻을 수 없나이다. 탐욕과 마음은 두 가지 이치가 각각 다르거늘, 설사 탐욕이 있다 [558 / 909] 하온들 어떻게 마음을 더럽힐 수 있겠나이까. 세존이시여, 말뚝을 허공에 박아서는 마침내 박히게 할 수 없듯이, 탐욕을 마음에 두는 것도 그와 같아서 가지각색 인연을 쓰더라도 탐욕으로 하여금 마음을 얽어맬 수가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마음에 탐욕이 없는 것을 해탈이라 한다면, 부처님과 보살이 어찌하여 허공중에 가시[刺]를 뽑지 못하나이까. 세존이시여, 지난 세상의 마음은 해탈이라 이름하지 아니하고, 오는 세상의 마음도 해탈함이 없으며 지금 세상의 마음은 도와 함께하지 아니하였으니, 어느 세상의 마음을 해탈이라 이름하오리까. 세존이시여, 지나간 등불은 어둠을 멸하지 못하고, 오는 날의 등불도 어둠을 멸하지 못하고, 지금의 등불도 어둠을 멸하지 못하나니, 왜냐 하면 밝음과 어둠은 함께 있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마음도 그와 같거늘, 어떻게 마음이 해탈한다 하오리까. 세존이시여, 탐욕은 있기도 한 것이니 만일 탐욕이 없다면 여인을 볼 때에 탐욕이 생기지 않아야 하며, 만일 여인으로 인하여 탐욕이 생긴다면 이 탐욕은 참으로 있다고 할 것이오며, 탐욕이 있는 연고로 3악도에 떨어질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사람이 여인의 그림만 보고도 탐욕을 내며, 탐욕을 내는 탓으로 가지각색 죄를 짓나이다. 만일 본래 탐욕이 없다면 어찌하여 그림을 보고 탐욕을 내며, 만일 마음에 탐욕이 없다면 어찌하여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보살이 마음의 해탈을 얻는다 하나이까. 만일 마음에 탐욕이 있다면 어찌하여 모양을 보고야 탐욕이 생기고 보지 않을 적에는 생기지 않나이까. 내가 현재에 나쁜 과보를 보는 것은 탐욕이 있음인 줄을 알 것이니,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도 그와 같나이다. 세존이시여, 마치 중생이 몸은 있으나 나라 할 것이 없거늘 모든 범부들은 부질없이 나라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며, 비록 나라는 생각을 가지더라도 세 갈래에 떨어지지 않거늘 어찌하여 탐욕이 있는 이는 여인의 형상이 없는 데에 여인이란 생각을 일으키고, 3악도에 떨어지나이까. 세존이시여, 나무를 비벼서 불을 내지만 불의 성품이 모든 인연 중에 있는 것이 아니거늘, 무슨 인연으로 불이 나나이까. 세존이시여, 탐욕도 그와 같아서 빛 가운데 탐욕이 없고 향기나 맛이나 닿이는 법 중에도 탐욕이 없거늘, 어찌하여 빛과 향기와 맛과 닿이는 법에 탐욕을 내나이까. 만일 모든 인연 중에 탐욕이 없다면 어 [559 / 909] 찌하여 중생만이 탐욕을 내고 부처님과 보살은 내지 않나이까. 세존이시여, 마음은 일정하지도 않나이다. 마음이 만일 일정하다면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이 없을 것이요, 만일 일정하지 않다면 어떻게 마음이 해탈을 얻는다 하오리까. 탐욕도 일정하지 않사오니, 만일 일정하지 않다면 어찌하여 탐욕을 인하여 3악도에 떨어지나이까. 탐하는 이와 경계가 둘이 다 일정하지 않나이다. 왜냐 하면 다 같이 한 가지 빛을 반연하되 혹은 탐욕을 내고 혹은 성냄을 일으키고 혹은 어리석음을 내나니, 그러므로 탐하는 이와 경계가 모두 일정치 않다는 것입니다. 만일 두 가지가 모두 일정치 않다면 어찌하여 보살이 대반열반을 닦으면 마음이 해탈한다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나이까?" "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여, 마음은 탐욕의 번뇌에 얽히는 것도 아니고 얽히지 않음도 아니며, 해탈함도 아니요 해탈하지 않음도 아니며,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며, 현재도 아니고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니, 왜냐 하면 모든 법이 제 성품이 없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어떤 외도들이 말하기를 `인과 연이 화합하면 결과가 나는 것이니, 만일 모든 인연 가운데 본래 날 성품이 없는데 능히 난다고 하면, 허공도 날 것이 없지만 결과를 내어야 할 것이나, 허공은 내지 않으니 인이 아닌 까닭이다. 모든 인연 중에 본래 결과의 성품이 있으므로 합하여 모이면 결과를 내는 것이니, 그 까닭을 말하겠다. 마치 제바달이 담을 쌓으려면 진흙을 취하고 채색을 취하지 아니하며, 그림을 그리려면 채색을 취하고 초목을 취하지 아니하며, 옷을 만들려면 천을 취하고 흙이나 나무는 취하지 아니하며, 집을 지으려면 흙을 취하고 천을 취하지 아니하는 것과 같으니, 사람들이 취함으로써 그 가운데 결과를 낼 수 있음을 알 것이며, 결과를 냄으로써 인연 가운데 먼저 결과의 성품이 있는 줄을 알 것이다. 만일 성품이 없다면 한 물건에서 모든 물건을 낼 것이 아닌가. 만일 취할 만하며 지을 수 있고 낼 수 있다면, 그 가운데는 반드시 결과가 있었을 것이며, 만일 결과가 없다면 사람들이 취하지도 않고 짓지도 못하고 내지도 못할 것이다. 다만 허공은 취할 것도 없고 지을 수도 없으므로 온갖 만물을 내는 것이니, 인이 있는 까닭으로, 니구타(尼拘陀) 열매는 니구타나무에 있고, 우유에 제호가 있으며 실에
[560 / 909] 는 천이 있고, 진흙에는 질그릇이 있다`고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모든 범부들이 무명 때문에 눈이 멀어서 이런 결정적인 말을 하여 빛에는 집착하는 뜻이 있고, 마음에는 탐하는 성품이 있다고 하느니라. 또 말하기를 `범부의 마음에 탐하는 성품도 있고 해탈의 성품도 있어서, 탐할 인연을 만나면 마음이 탐욕을 내고 해탈할 인연을 만나면 마음이 해탈한다` 하나니, 비록 이런 말을 하나 뜻이 옳지 아니하니라. 어떤 범부는 또 말하기를 `온갖 인 가운데는 모두 과가 없다. 인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미세하고 다른 하나는 굵은 것이다. 미세한 것은 항상하고 굵은 것은 무상하다. 미세한 인으로부터 변하여 굵은 인이 되고, 이 굵은 인으로부터 다시 과를 이루나니, 굵은 것이 무상하므로 과도 무상하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어떤 범부는 말하기를 `마음도 인이 없고 탐욕도 인이 없거니와, 시절을 인하여서 탐욕의 마음이 생긴다` 하나니, 이런 무리는 마음의 인연을 알지 못하므로 여섯 갈래로 바퀴돌 듯 하면서 생사를 받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개를 묶어서 기둥에 매어 두면 종일토록 기둥을 돌고 벗어나지 못하듯이 모든 범부도 그와 같아서 무명에 얽히어 나고 죽는 기둥에 매여 있으면서 25유를 돌고 벗어나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뒷간에 빠졌다가 나와서 다시 들어가는 것 같으며, 어떤 이가 병이 나았다가 다시 병드는 것 같으며, 길 가는 사람이 허허벌판을 만났다가 지나가고는 다시 오는 것 같으며, 또 깨끗이 씻었다가 다시 흙을 칠하듯이, 모든 범부도 그와 같아서 이미 무소유처(無所有處)에서 해탈하였으나, 비비상처(非非想處)를 해탈하지 못하고 다시 3악도에 들어가느니라. 왜냐 하면 모든 범부들이 과보만을 관찰하고 인연을 관찰하지 않는 연고니, 마치 개가 흙덩이만 쫓아가고 사람을 쫓아가지 못하는 것 같으니라. 범부들도 그와 같아서 과보만 보고 인연을 보지 못하는 연고로 비비상처로부터 다시 3악도에 떨어지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부처님과 보살들은 마침내 인 가운데 과가 있다거나, 인 가운데 과가 없다거나, 인 가운데 과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거나, 인 가운데 과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거나를 결정적으로 말하지 아니하나니, 만일 인 가운데 결정된 과가 있었다거나, 결정된 과가 없었다거나 결정된 과가 있기 [561 / 909] 도 하고 없기도 하였다거나, 결정된 과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았다고 말하면, 이런 사람은 모두 마군의 무리로서 마군에게 딸렸으니, 곧 애욕의 사람이며, 이렇게 애욕에 빠진 사람은 생사의 속박을 영원히 끊을 수 없으며, 마음의 모양과 탐욕의 모양을 알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부처님과 보살들은 중도(中道)를 보이나니, 왜냐 하면 모든 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고 말하지만, 결정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니라. 그 이유를 말하면 눈을 인하고 빛을 인하고 밝음을 인하고 마음을 인하고 생각함을 인하여 알음알이가 생기거니와, 이 알음알이는 결정코 눈에나 빛에나 밝음에나 마음에나 생각하는 데 있지 아니하며 중간도 아니니라.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니지만, 인연으로부터 나는 것이므로 있다 이름하고, 제 성품이 없다 이름하나니, 그러므로 여래가 말하기를 모든 법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부처님과 보살들은 마침내 마음에 깨끗한 성품과 부정한 성품이 있다고 결정된 말을 하지 아니하나니, 깨끗한 마음이나 부정한 마음이 머무는 곳이 없는 까닭이며, 인연을 따라 탐욕을 내므로 없는 것이 아니라 하고, 본래 탐욕의 성품이 없으므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인연을 따르므로 마음에 탐욕이 생기고, 인연을 따르므로 마음이 해탈하느니라. 선남자여, 인연은 두 가지니, 하나는 생사를 따르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대열반을 따르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인연이 있으므로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탐욕과 함께 멸하기도 하며, 혹은 탐욕과 함께 나고 탐욕과 함께 멸하지 않기도 하며, 혹은 탐욕과 함께 나지 아니하고 탐욕과 함께 멸하기도 하며, 혹은 탐욕과 함께 나지 아니하고 탐욕과 함께 멸하지 않기도 하느니라. 어떤 것이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탐욕과 함께 멸하는 것인가. 선남자여, 만일 범부가 탐심을 끊지 못하고 탐심을 닦으면, 이런 사람은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마음이 탐욕과 함께 멸한다 하느니라. 모든 중생들도 탐심을 끊지 못하여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마음이 탐욕과 함께 멸하나니, 마치 욕계의 중생이 모두 초지미선(初地味禪)이 있으므로 닦거나 닦지 않거나 간에 항상 성취할 것이고 인연을 만나면 곧 얻는 것과 같으니라. 인연이라 함
[562 / 909] 은 화재(火災)를 말함이니, 모든 범부도 그와 같아서 닦거나 닦지 않거나 간에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마음이 탐욕과 함께 멸하나니, 왜냐 하면 탐욕을 끊지 못한 연고니라. 어떤 것이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탐욕과 함께 멸하지 않는 것인가. 성문 제자들이 인연이 있으므로 탐심을 내고, 탐심을 두려워하여 백골관(白骨觀)을 닦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탐욕과 함께 멸하지 않는다 하느니라. 또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탐욕과 함께 멸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성문들이 4과를 증득하지 못하였을 때에 인연이 있어 탐심을 내고, 4과를 증득할 때에 탐심이 멸해지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탐욕과 함께 멸하지 않는다 하며, 보살마하살이 부동지(不動地)를 얻을 적에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탐욕과 함께 멸하지 않느니라. 어떤 것이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지 아니하고 탐욕과 함께 멸하는 것인가. 보살마하살이 탐심을 끊고도 중생을 위하여서 탐욕이 있는 듯이 나타내는 것이니, 일부러 나타내므로 한량없고 그지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선한 법을 물어서 구족이 성취하게 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지 아니하고 탐욕과 함께 멸함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지 아니하고 탐욕과 함께 멸하지 아니함이라 하는가. 아라한과 연각과 부처님과 부동지를 제외한 보살들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탐욕과 함께 나지 아니하고 탐욕과 함께 멸하지 않는다 하느니라. 이런 뜻으로 부처님과 보살들이 결정코 마음의 성품이 본래 깨끗하다거나 본래 부정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이 마음은 탐욕의 번뇌와 화합하지 아니하고 성내는 일이나 어리석음과도 화합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해와 달이 연기나 티끌이나 구름이나 안개나 아수라에 의해 가리우게 되면, 이런 인연으로 중생들이 보지 못하나니, 비록 보지 못하더라도 해와 달의 성품이 그 다섯 가지 가리움과 화합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마음도 그와 같아서, 인연으로써 탐욕을 내거든, 중생들이 마음이 탐욕과 화합하였다 말하거니와, 이 마음의 성품은 진실로 화합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만일 탐심이 곧 탐욕의 성품이라 하고, 탐하지 않는 것이 탐하지 않는 성품이라면, 탐하지 않는 성품은 탐욕이 되지 [563 / 909] 아니하고 탐욕의 마음은 탐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선남자여, 이런 뜻으로 탐욕의 번뇌가 마음을 더럽히지 못한다 하는 것이며, 부처님과 보살은 영원히 탐욕의 번뇌를 깨뜨렸으므로 마음이 해탈하였다 하느니라. 모든 중생들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탐욕을 내고 인연으로 말미암아 해탈을 얻나니, 선남자여, 마치 저 설산의 험준한 곳에는 사람이나 원숭이가 모두 가지 못하며, 어떤 곳에는 원숭이는 가지만 사람은 가지 못하며, 어떤 곳에는 사람과 원숭이가 모두 갈 수 있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사람과 원숭이가 모두 가는 곳에 사냥꾼이 억센 끈끈이를 널쪽 위에 놓아 두고 원숭이를 잡는데, 원숭이가 어리석어서 손으로 건드리면 손이 들러붙고 손을 떼기 위하여 발로 밟으면 발이 또 들러붙고, 발을 떼려고 입으로 씹으면 입이 들러붙어서, 이와 같이 다섯 군데를 모두 떼지 못하게 되면 사냥꾼이 몽둥이에 꿰어 메고 집으로 돌아오느니라. 설산의 험준한 데는 부처님과 보살들이 얻는 바른 도에 비유하고, 원숭이는 범부에 비유하고, 사냥꾼은 마왕 파순에게 비유하고, 끈끈이는 탐욕 번뇌에 비유한 것이니라. 사람이나 원숭이가 모두 가지 못한다 함은, 범부와 마왕 파순의 모두 행하지 못하는 데 비유하고, 원숭이는 가고 사람은 못 가는 것은 모든 외도와 지혜 있는 이에게 비유하였으니, 마군들이 5욕으로도 속박하지 못함이요, 사람과 원숭이가 모두 가는 데는 모든 범부와 파순이 생사 중에 항상 있으면서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니라. 범부들이 5욕락에 얽매이면 파순이 데려가나니, 사냥꾼이 원숭이를 붙들어 가지고 집으로 가는 것 같으니라. 선남자여, 한 나라의 임금이 자기의 나라 안에 있으면 몸과 마음이 안락하지만 다른 나라에 가면 여러 가지 괴롬이 있게 되나니, 모든 중생도 그와 같아서, 만일 자기의 경계에 있어서는 안락하지만, 다른 경계에 이르게 되면 마군을 만나 괴롬을 받나니, 자기의 경계는 4념처(念處)를 말함이요. 다른 경계는 5욕락을 말함이니라. 어떤 것을 마군에게 얽매인다 하는가. 중생들이 무상한 것을 항상하다 보고, 항상한 것을 무상하다 보며, 괴롬을 즐겁다 보고 즐거움을 괴롭다 보며 부정한 것을 깨끗하다 보고 깨끗함을 부정하다 보며, 내가 없는 것을 내가 있다 보고, 나인 것을 내가 없다 보며, 진실한 해탈이 아닌 것을 허황되게 [564 / 909] 해탈이라 보고, 진실한 해탈을 해탈이 아니라 보며, 승(乘)이 아닌 것을 승이라 보고 승인 것을 승이 아니라 보느니라. 이런 사람을 일러서 마군에게 얽매였다 하나니, 마군에게 얽매인 사람은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니라. 또 선남자여, 만일 모든 법에 공통한 모양과 제각기 다른 모양이 참으로 있다고 보는 이는, 이 사람이 색(色)을 볼 때에는 색이란 모양을 짓고, 내지 식(識)을 볼 때에는 식이란 모양을 지으며, 남자를 보면 남자란 모양을 짓고 여자를 보면 여자란 모양을 지으며, 해[日]를 보면 해란 모양을, 달을 보면 달이란 모양을, 해[歲]를 보면 해란 모양을, 5음을 보면 음이란 모양을, 6입(入)을 보면 입이란 모양을, 18계(界)를 보면 계란 모양을 짓나니, 이렇게 보는 이는 마군에게 얽매였다 하며, 마군에게 얽매인 사람은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니라. 또 선남자여, 만일 내가 곧 색이라, 색 가운데 내가 있다, 내 가운데 색이 있다, 색이 내게 부속되었다고 보거나, 내지 내가 곧 식이다, 식 가운데 내가 있다, 내 가운데 식이 있다, 식이 내게 부속되었다고 본다면, 이렇게 보는 이는 마군에게 얽매인 것이니, 나의 제자가 아니니라. 선남자여, 나의 성문 제자로서, 여래의 12부경을 여의고 외도들의 경전을 익히거나, 출가한 적멸(寂滅)의 업을 닦지 아니하고 재가(在家)한 세속의 일을 경영하는 이가 있나니, 무엇을 재가한 일이라 하는가. 여러 가지 부정한 물건인 하인·전택(田宅)·코끼리·말·수레·약대·나귀·닭·개·원숭이·돼지·양 따위나 가지각색 곡식을 받아 두거나, 스님을 멀리 여의고 속인들을 가까이하며, 성인의 말씀을 어기고 재가자들에게 말하기를 `부처님이 비구들에게 여러 가지 부정한 물건을 받기를 허락했다` 하니, 이것을 재가의 일을 익힌다 하느니라. 또 제자들이 열반을 위하지 아니하고 이끗만을 위하여 12부경을 친근하고 듣거나, 시방 승물(僧物)이나, 승만물(僧鬘物)을 입고 먹기를 자기의 것처럼 생각하거나, 다른 집을 아끼거나 칭찬하거나, 임금이나 왕자들을 친근하거나, 길흉한 것을 점치고 책력에 관한 것을 숭상하며, 바둑·장기·노름·투호(投壺)하는 일이나, 비구니나 처녀들을 친근하거나, 두 사미를 거느리거나, 사냥하고 고기 팔고 술 파는 집과 전다라들이 사는 데를 놀러다니거나, 여러 가지로 장사하거나, 제 손으로 음식을 만들거나, 나라의 사신으 [565 / 909] 로 이웃 나라에 가거나 하는 사람들은 모두 마군의 권속이요, 나의 제자가 아니니라. 이런 인연으로 마음이 탐욕과 함께 나고 탐욕과 함께 멸하며, 내지 어리석은 마음과 함께 나고 함께 멸하는 일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런 인연으로 마음이 깨끗한 것도 아니고 부정한 것도 아니니,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마음이 해탈한다 하느니라. 만일 온갖 부정한 물건을 받지도 않고 저축하지도 아니하며, 대반열반을 위하여 12부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쓰고 남에게 해설하면 이런 사람은 나의 참된 제자인 줄을 알아야 하느니라. 마왕 파순의 경계를 행하지 아니하면, 37도품(道品)을 닦는 것이요, 도품을 닦으므로 탐욕과 함께 나지 아니하고 탐욕과 함께 멸하지 아니하나니, 이것을 말하여 보살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닦아서 여덟째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한다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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