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하스님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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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세우는 생각조차 없는 하심下心

육바라밀에도 있듯이 보시의 공덕은 한량없는 것입니다. 보시한다는 생각조차 없이 보시해야 합니다. 무엇인가를 베풀고 나서 ‘내가 주었는데…, 내가 이만큼 베풀었는데…’라는 생각에 붙들려 있다면 그것은 참다운 보시라고 볼 수 없습니다.

무엇을 도와 주었다거나 해 주었다는 생각도 없이 어려운 이들의 힘이 되어 주는 것이 바로 보시의 공덕입니다. 물질이 없다면 마음이라도 힘이 되어야죠. 오히려 이 마음은 더 강력한 힘이 됩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은 그렇게 하지 못하더라도 누군가 귀감이 되는 행동을 한다면 자신도 그렇게 되도록 원을 세워야 합니다. 그것이 인(因)이 되어 여건이 맞으면 행으로 실천하는 때가 오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베푸는 것은 자신의 수행에도 도움이 되고 자신만이 느끼는 기쁨을 맛보게도 해 줍니다.

돌이켜 보면 내가 출가자의 길을 선택해 그나마 개인의 욕심에 매이지 않고 살아가게 된 것이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나의 출가는 현상계로 짚어보면 특별한 이유 없이 이루어졌지만 참으로 고마운 인연입니다.

내 고향은 부여인데 그곳에 가면 고란사라는 절이 있어요. 어려서부터 고란사에 종종 가곤 했는데 갈 때마다 공연히 그곳이 좋아보이고 그랬어요. 그리고 스님네들을 보면 그때 생각으로 ‘사람은 다 우리와 같은 사람인데 어째서 이런 곳에서 사는가’하는 생각을 가지곤 했습니다.
그리고 스님네들의 생활이 퍽 고상해 보이는 데다가 ‘아무나 이런 데 와서 사는 것도 아니고 어째서 이런 데 와서 사는가’ 하는 의문이 항상 들었어요.

그러다 18세 때 ‘나도 절에 가서 절 생활을 해 봐야 되겠다’고 결심하고 한 달 가량 절에 가 있는다고 한 것이 그냥 이렇게 되었습니다.
절에 온 이후 속가 부모님께 세 번이나 붙잡혀 갔었습니다. 잡혀가도 하룻밤 자고 도망치듯 나오니까 결국 부모님은 그렇게 세 번을 하시다가 포기하시더군요.
그 이후 부모님께서 차례대로 세상을 떠나셨는데 그때는 한편으론 ‘이제는 잡으러 와 줄 이도 없구나’ 하는 허전한 맘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한 가지 걱정을 잊어버린 듯 하더군요.

출가해서는 은사이신 구하 스님의 지도를 받으며 도반들과 함께 무조건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은사 스님의 말씀이라면 힘들다 어떻다 이유는 꿈도 못 꿨어요. 스님의 말씀이 곧 부처님의 말씀이라 믿고 그대로 따른 것입니다.

구하 스님께서는 항상 “부처님의 말씀에 어긋나지 않고 대중에게 지탄받지 않게 수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이 가르침은 실천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아요. 언행 하나 하나에 마음을 쏟아야 가능한 일이라…, 그대로 그저 그 가르침에 따르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행여 부족한 면이 있으면 더욱 _ba橘峠狗졀 애를 썼지요.
요즘은 자유로워진 시대 분위기를 타고 수행풍토가 많이 무너졌지만 그때는 철저했거든요.

수행은 개인의 몫인데 일일이 나서서 간섭할수도 없는 것이고 개인 각자가 부처님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거든요.
출가자들이 각성을 하고 수행에 전념하지 않으면 불교의 맥이 끊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말씀대로 실천해 나가는 것이 불교지 다른 말을 갖다 붙일 필요가 없습니다. 보살계 받은 이들은 보살계의 정신에 입각해서 생활하고 부처님 말씀에 가깝게 행동하려고
노력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
'd7것이 불교를 살릴 수 있고 수행풍토를 되살릴 수 있는 첩경입니다. 또한 종단차원에서도 행정, 포교, 교육 등 각 방면으로 부처님 말씀에 저촉 안 되게 해서 수행력을 높여야 해요.
그래야 다른 대중들의 모범이 되는 것이고 효과도 극대화됩니다. 그 실천력만이 허물어진 수행풍토를 다잡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종단 자체의 수행풍토가 허물어져 있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것이죠.

수행풍토가 허물어지니 저마다 자신들이 잘 났다고 하면서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려 들지 않고 자신들 편한 대로 갖다붙이려 드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됩니다. 다양화된 시대에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죠. 그러나 서로 옳고 잘 났다고 주장하는 가운데서 싸움이 일어나고 서로를 적대시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어 세상의 많은 문제점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 문제들을 가만히 살펴보세요. 모두 자신이 잘 났다고 내세우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안 됩니다. 우리는 자신부터 한번 더 돌아보고 반성해야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왔는지, 입으로만 불법을 말하지는 않았는지 살피는 가운데서 자신을 내세우는 마음이나 다른 이에 대한 원망보다는 자신을 낮추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게 됩니다. 다른 이들이 자신의 생각에 반하는 언행을 해도 자신을 낮추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죠.

흔히 아상을 없애야 한다고들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아상을 여의는 공부를 하라고 하셨는데도 출가자나 재가자를 막론하고 오히려 아상만 높이고 있는 듯합니다.
단순히 자신을 낮추는 것뿐 아니라 나라고 내세우는 생각조차 없애는 게 진정한 하심(下心) 입니다.


1998년 1월 1일 법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