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일 년에 두 번씩 결제와 해제를 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경계가 되어 아무 것도 없는 것을 법이라 이름지어 찾으려 합니다. 속담처럼 무(無)에서 유(有)를 찾으려 하고, 유에서 무를 찾으려 하니, 자꾸 엇갈려서 무가 옳은지 유가 옳은지 갈피를 못잡는 단계가 있다고 봅니다. 그 단계가 지나 유무를 확실히 볼 수 있는 자증력(自證力)이 생겨 공부하는 보람도 있고 또 그것을 위해 모두 모여서 결제를 하고 해제를 한다고 봅니다.
九旬禁足成何事/ 구순금족성하사 弄得鐵牛建道場/ 농득철우건도량 三更昨夜飛身出/ 삼경작야비신출 吼吼雷聲偏十方/ 후후뇌성편시방 90일간 출입하지 않는 것은 무슨 일을 이루기 위함인가. 철우를 희롱하여 도량을 세우기 위함이라. 어젯 밤 삼경에 몸을 날려 나아가니 사자후 같은 뇌성이 시방에 두루하도다.
구순동안 출입하지 않은 것은 철우 즉, 본심(本心) 자리를 희롱하여 도량-마음자리를 찾는 이들이 살기 위한-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몸을 날려 허공을 비행할만한 힘이 생기면 음파로 들리지는 않지만 훨씬 큰 소리가 시방을 울립니다. 부처님 당시 설산에서 도를 통하실 때, 이것 역시 우리가 듣는 육성보다 그 이상의 들리지 않는 소리가 널리 퍼지는 것을 말합니다. 중생은 소리로써 듣지만 조사님들과 부처님은 중생의 귀에 들리지 않는 더 큰 소리를 듣습니다. 그런데 어떤 물체가 있으면 그에 상대되는 이치가 있어 이것을 절집에서는 법이라 하고 법은 모든 형상을 떠나 보이지 않는 그런 것을 물체에 비유하니, 잘못 알면 갈피를 잡기가 어렵습니다.
心化發明이 最大라. / 심화발명이 최대라. 마음을 화해서 밝은 빛을 내는 것이 가장 큰 것이라.
보이는 빛보다 보이지 않는 광명이 더 밟습니다. 최대의 발명이 되어지면 자기 역량이 커지고, 화두(話頭)를 깨치고 나면 자증력이 다양해져서 여러가지로 통합니다. 다양한 자증력이 다소 미비하면 자기의 수행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蛇出一寸知其大與小/ 사출일촌지기대여소 人出一言知其長與短/ 인출일언지기장여단 뱀은 일촌(一寸)만 내밀어도 그 크고 적음을 알 수 있고 사람은 말 한 마디만 내어도 그 길고 짧음을 알 수 있다.
화두를 타파하고 깨친 이들의 경계를 잡아 이야기 한 것입니다. 이 경계에 도달치 못한 입장에서는 어떤 행위를 해도 묻어 나오는 바가 없습니다. 깨친 이는 그야말로 숨소리만 들어도 깨친 것이 묻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제 오늘 결제를 하면 구순(九旬)동안 안거(安居)를 행하는데, 공부는 모든 일을 버리고 앉아서 우리의 목숨을 건다 해도 그게 어렵고, 될까 말까 합니다.
그러나 기왕에 이렇게 노력할 바에는 그 값어치는 해야 합니다. 무위도식 허송세월 하지 말고 각자 자기 자신을 반성해서 되돌아 보아야 할 것입니다. 화두(話頭)는 의심을 해야지 의심하지 않으면 화두가 아닙니다. 의심은 왜 합니까? 의심하지 않으면 다른 생각을 하기 때문에 화두에서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전체 화두는 말은 다르나 모두가 같습니다. 예를 들면 조주스님의‘개에게는 불성이 없다’는 공안(公案)에서‘부처님께서 모든 생명체에 불성이 있다 했는데 왜 개는 불성이 없다고 했는가’하는 의심을 해야 화두지,‘ 괜한 소리다’라고 지나치면 화두가 되지 않습니다. 화두를 일러주는 스님의 평소의 모든 점을 봐서 속이거나 농담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화두 드는 이는 반드시 믿는 마음을 내고 의심을 품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화두나 법문도 믿고 따라야 하지 믿지 않고 시시하게 여기면 가망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화두(話頭)는 믿음[信]이 생명인 것입니다.
明星正現佛成道/ 명성정현불성도 雪裡梅花只一枝/ 설리매화지일지 밝은 별 바로 보고 부처께서 도를 이루시나 눈 속의 매화는 다만 한 가지일 뿐이다.
이것은 밝은 별 자체가 깨달음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었을때 주변에 다만 별이 빛나고 있었을 뿐, 깨달음은 스스로 노력해서 성숙해져야 얻어질 수 있는 것 입니다. 또한 그것은 부처님께서 깨우쳐 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깨달음에 가는 길을 제시해 줄 뿐 입니다. 결국 하고 안하는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終年不遇穹耳客/ 종년불우궁이객 只見空林捨葉人/ 지견공림사엽인 일생을 마치도록 귀뚫린 이를 만나지 못했으나 다만 공림에서 낙엽줍는 이는 보았도다.
실제 화두를 들고 깨우쳐서 삼천대천세계를 떠들썩하게 하는 이는 없고 헛되이 화두잡는 일을 흉내내는 것은 보았다 하는 말입니다. 공부하는 이들이 헛되이 공림에서 낙엽줍는 일을 하지 말고 그야말로 귀뚫린 이가 되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 좋겠습니다.
공부하는 이들은 스스로 마음으로 지어서 나타나는 환상에 집착하지 말고 의심에 파묻혀 의심에서 떠나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의심에 파묻히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옛 스님들은 자기의 공부가 순일한 지 알려면 시장에 가서 화두를 들어보아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면 의심이 돈독하지 못하고, 들리지 않으면 공부가 순일하게 되고 있다고 판단했으며, 또 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시체가 있는 방에서 화두를 들어 분별이 생기지 않으면 화두를 제대로 잡은 것이라고 공부한 바를 시험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수수께끼 같지만 일리있는 일로서, 옛스님들이 후학들을 위해 공부 잘 하도록 강조한 교훈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결제기간에는 무슨 수를 내더라도 결단을 낸다는 다부진 생각으로 공부하면 퍽 좋 겠습니다.
願以此功德普及於一切/ 원이차공덕 보급어일체 我等與衆生當生極樂國/ 아등여중생 당생극락국 同見無量壽皆共成佛道/ 동견무량수 개공성불도
-불기 2534년 하안거 결제법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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