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는 듣는 이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삼전三轉’을 설하신 것 외에도 항상 수많은 비유를 들어 설명하셨다. 예를 들어 『법화경』에서 나오는 약초에 대한 비유, 가난한 자에 대한 비유는 가장 뛰어난 불교문학으로 여겨진다. 심지어 12부 경전 가운데 하나를 ‘비유’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성제에 대해 부처님은 수많은 비유를 하셨다. 예를 들어 『대보적경』에서는 고제를 “마치 원수 같고, 종기 같고, 화살 같고, 감옥에 갇히고, 그릇이 깨진 것처럼 자유자재하지 못하니, 나라는 것이 없다”라는 법문을 하셨으며, 『사제론四諦論』에서는 사제에 대해 더욱 많은 비유가 나온다.
① 고는 병과 같고, 집은 병의 원인과 같고, 멸은 병을 없앰과 같고, 도는 병을 치료하는 약과 같다. ② 고는 불과 같고, 집은 장작과 같고, 멸은 불이 꺼진 것과 같고, 도는 불이 꺼진 원인과 같다. ③ 증오 같은 것을 고라 하고, 원망이 엉킨 것이 집이라 하고, 원망이 엉킨 것을 끊어냄이 멸이라 하고, 끊어낼 수 있는 원인을 도라 한다. ④ 의복과 같은 것을 고라 하고, 먼지 같은 것을 집이라 하고, 먼지가 사라져 깨끗함을 멸이라 하고, 깨끗하게 된 원인을 도라 한다. ⑤ 고는 부채(債)와 같고, 집은 가난과 같고, 멸은 가난을 벗어남과 같고, 도는 재물과 같다. ⑥ 고는 더운 것과 같고, 집은 더운 원인과 같고, 멸은 시원함과 같고, 도는 시원하게 만드는 도구와 같다. ⑦ 고는 독이 발작함과 같고, 집은 독과 같고, 멸은 독을 벗어남과 같고, 도는 만병통치약과 같다.
이 외에도 부처님은 “세간의 범부는 오음을 취하면 해로운 바가 있어도 오히려 집착하고 의지한다. 이는 원한이 있는 집안에 의지해 그릇되게 친구를 삼는 것과 같다. 편안하고 사랑하는 바에 의지함은 집集이라 이름한다. 이 편안하고 사랑함으로 인하여 삼계의 지옥에 머무르고 떠나려 함을 구하지 않으니, 비유컨대 미친 죄수와 같다”고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 싫다거나 귀찮다 여기지 않고 계속해서 사성제에 대한 갖가지 해석과 비유를 해놓으신 까닭은 “마땅히 고를 알고, 마땅히 집을 끊어내며, 마땅히 멸을 증득하여야 한다. 이 세 가지 일을 한 다음에 열반에 들도록 수행해야 한다(苦應知 集應除 滅應得 .此三事故 修聖道)(『사제론』)”라는 것을 우리와 같은 범부에게 알려주기 위함이다.
3. 대승불교 사홍서원의 발전
불법은 사성제로만 우주 인생의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불법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우주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고집멸도의 진리를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반드시 원력과 수행, 실천이 수반되어야 한다. 번뇌와 괴로움을 끊어 없애고 열반에 들도록 수행해야 비로소 삶의 경지에 도달한다. 그러므로 사성제로부터 뻗어 나온 사홍서원, 육도행문六度行門이 인생의 해탈에 이르게 하는 방편을 제공한다. 사홍서원은 보리심을 내는 것이다. 보살의 발심은 모두가 다 중생을 위하고, 진리를 깨우치며, 원만한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사성제에서 사홍서원으로 발전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순서이자 차례이며 목표이다. 그래서 사성제의 진리를 보좌하는 데 사홍서원이 더욱 합리적으로 효과적이다. 당신이 괴로움을 알면서도 그 괴로움을 없애려고 발원하지 않는데, 어떻게 수행이라 할 수 있으며 어떻게 보살이 될 수 있겠는가? 번뇌를 알면서 번뇌를 끊어내고자 발원하지 않는데 어떻게 입도入道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아무리 무량한 법문이 있다 하들 배우고 닦지 않는다면 위없는 불도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인간세계의 작은 문제도 배운 것이 없고 내세울 만한 재주도 없는 어리석은 사람은 올바른 수행 방법을 찾지 못할 것이니, 어떻게 보살도의 소망을 성취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원시불교에서는 고집멸도 ‘사성제’를 통달한 뒤에는 계속해서 ‘사홍서원’을 일깨우고, 봉행하며 실천해야 했다. 무수한 중생이 생사의 고해에서 윤회하고, 더욱이 생사의 고해에서 부침하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허우적대며 헤어나지 못하는 이런 중생을 피안에 오르도록 발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왜냐하면 중생이 고통을 받는 원인은 모두가 번뇌의 업이 모여 자기의 마음을 속박함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내가 분명히 보았는데, 어떻게 중생을 위해 족쇄를 제거하고 중생의 번뇌를 없애 자유롭게 노닐며 고통과 번뇌에서 벗어나도록 발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번뇌를 끊어 없애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스스로 발심하여 원을 세우고 번뇌와 고통을 끊어 없애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다른 사람의 원력에 의지하여 우리가 수행하도록, 괴로움에서 벗어나도록, 번뇌를 끊도록, 열반에 이르도록 이끌게 함이 중요하다.
불법에는 소위 이행도(易行道: 실행하기 쉬운 수행 방법)와 난행도(難行道: 실행하기 어려운 수행방법), 오승도五乘道와 대승불도大乘佛道가 있다. 이른바 37도품에는 사념처四念處, 사정근四正勤, 사여의족四如意足, 오근五根, 오력五力, 칠보리분七菩提分, 팔성도분 등이 있으니, 내가 어떻게 (이런) 무상의 법문을 버리고서 무상의 불도를 이룰 수 있겠는가? 사성제의 진리를 통달하고 이해한 뒤, 부처님의 불사일법(不捨一法: 한 법도 버릴 것이 없음)을 배워야 하고, 또 사섭육도四攝六度의 수행 법문을 실천하여 보살도인 사홍서원을 완성해야 한다. 이는 진실로 성암省庵 대사가 『권발보리심문勸發菩理提心文』에서 “입도入道하는 요문要門은 마음을 내는 것이 으뜸이고, 수행하는 긴요한 일은 원을 세우는 것이 우선이다. 원이 세워지면 중생을 제도할 수 있고, 마음을 내면 불도를 이룰 수 있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대지도론』에서도 “복을 지으면서 원하는 바가 없다면 표방할 것이 없으니, 서원을 인도자(導御)로 삼아야 능히 이룰 것이 있다. 마치 금을 녹이는 일은 세공사의 뜻에 따르지만, 만들어질 금의 모양은 정해져 있지 않는 것과 같다(『대지도론』 권7)”라고 하였다. 또한 “부처님의 세계를 장엄함은 커다란 일이어서 홀로 공덕을 행해 이루기는 어려우며, 반드시 원력에 의지해야 이룰 수 있다. 마치 소가 능히 수레를 끌 수 있어도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끄는 자가 있어야 함과 같다”라고도 했다. 이로써 도에 들어가는 원인으로 서원을 닦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과보’는 비록 ‘수행’을 통해 나타나지만, ‘원력’이 없다면 수행을 해도 희망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바다에 떠 있는 배가 방향을 잃고, 길에 서 있는 사람이 목적지가 없는 것과 같다. 비록 앞으로 나아간다고 해도 행과 원(行願)이 없다면 어떻게 불국정토에 도달할 희망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발심하여 서원을 세우는 것(發心立願)은 일체의 사업을 성취하는 데 있어 중요한 조연趙緣이자 원동력이 된다. 경전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과거 모든 부처님들께서는 발원으로 말미암아 성취하시지 않은 분이 없었다고 한다. 아미타불께서는 48대원大願을 발하시어 정초를 이루셨고(『무량수경』 상권),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500대원을 발하시어 불도를 이루셨으며(『비화경悲華經』 권7), 미륵보살께서는 10가지 원(十願)을 봉행했기에 당래當來에 하생하실 수 있으며(『미륵보살소문본원경彌勒菩薩所問本願經』), 약사여래불께서는 중생의 병고를 없애기 위해 12대원을 발하고 유리불국토를 이루셨다. (『약사여래본원공덕경藥師如來本願功德經』). 문수보살은 12대원을 바랐고 반야의 지혜를 이룩하셨고(『불설문수사리행경佛說文殊師利行經』), 보현보살의 10대원은 서원 하나하나가 장엄한 화엄의 행원 바다를 이루셨다(『화엄경』). 관세음보살이 발원하신 10대원은 고해의 중생을 제도하시며(『법화경』), 지장보살은 모든 중생을 제도하여 지옥이 텅 비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으며, 중생을 모두 제도한 후에 보리를 이루겠다고 발원하셨다(『지장경』).
모든 보살에게 무한한 서원이 있었기에 그들의 수행이 완성될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부처와 보살의 서원은 종합해보면 사홍서원을 벗어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보현보살의 10대원 가운데 여섯째가 법륜 굴리기를 청하는 것이고, 아홉째가 늘 중생을 따라 순종하겠다는 것이니, 즉 사홍서원의 ‘가없는 중생을 다 건지겠습니다’이다. 넷째가 업장을 참회함이니, 즉 사홍서원의 ‘끝없는 번뇌를 다 끊겠습니다’이다. 다섯째는 공덕에 따라 기뻐함이고, 여덟째는 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우는 것이니, 즉 사홍서원의 ‘한없는 법문을 다 배우겠습니다’이다. 첫째가 모든 부처님께 예경하는 것이고, 둘째가 여래를 칭찬하는 것이며, 셋째가 널리 공양을 닦는 것이고, 일곱째가 부처님께서 세상에 머물기를 청하는 것이며, 열째가 널리 회향함이니, 즉 사홍서원의 ‘위없는 불도를 다 이루겠습니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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