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라마스님법문
다시보기
승리자의 원만한 결심, 자비심
한국의 불자와 달라이라마(뗀진갸초, 86)의 짧은 법담이 비대면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한국의 티베트불교센터 삼학사(주지 뗀진 남카)는 8월 18일 정오 경 라이브 스트리밍을 통해 자비와 비폭력을 주제로 하는 법회를 주관했다. 한국 일본 싱가포르 베트남 등 아시아 불자 연합의 법회가 추후 개최될 것이 예고된 가운데 앞서 열린 이번 자리는, 공식으로 서울에 티베트불교센터가 개원한 이래 처음으로 마련된 법회이다. 한국의 테베트불교센터 삼학사는 서울 양재동 구룡사(회주 정우스님)에서 그 터전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부산의 광성사와 함께 갤룩빠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삼학사는 티베트어의 랍쑴 쉐둡 링(Labsum Shedup Ling)을 한역한 것으로 달라이라마께서 직접 하사한 명호이다.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은 위기의 시대입니다. 경제 윤리 기후 위기의 현재에 대해 존자님께서는 어떤 견해를 가지고 계시는지요? 금강스님(중앙승가대 교수)
지구가 생긴 이래로 억만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붓다께서 지구상에 난 이후 경전에 일컫기를 인간의 수명은 점차 줄어들 것이며 환경 역시 악조건으로 변화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뉴스를 보니 지금 이 순간까지도 지구 한 편에서는 산불이 꺼지지 않고 번지고 있다고 합니다. 현대과학의 측면에서는 지구의 온도 상승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가설까지 내놓았습니다. 또한, 일부에서는 지구가 머지않아 온도 상승으로 불바다가 될 것이라는 입장을 보입니다.
오감을 통한 행복과 불행의 감정은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들도 느끼는 공통의 감정입니다. 인간은 여기서 더 낳아가 이성과 지성으로 극복하는 대안을 내놓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인간으로서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저는 망명을 하여 나라를 잃었지만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지금까지 왔습니다. 제가 달라이라마라는 호칭을 이용하여 위선에 빠진 바는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항시 겸손해야 합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 인간이 행해야 할 최우선의 덕목입니다.

존재하는 일체중생에게 당부해 주십시오. 죽음을 앞둔 우리는 어떤 마음 자세를 취해야 할까요? 현직 간호사
현생의 육신이 죽음과 마주하면 그제야 알아차립니다. 부질없음을 말입니다. 오직 살아생전에 행한 덕행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항시 변화하는 모든 것은 원인과 조건에 의한 것입니다. 이러한 상속의 하나로서 인간의 죽음이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죽음에 이르러 오직 미세한 의식만이 남아서 바르도의 중음으로 이끕니다. 죽음이 임박한 순간에 수행의 꽃이 피어납니다. 티베트불교에서는 이를 일컬어 툭땀이라고 합니다. 육신에 남은 미세한 의식이 작용하여 부패하지 않고 살아생전의 모습이 유지되는 현상입니다. 거친 분별들이 사라지고 미세한 의식으로 통하는 때에 백색 흑색 적색의 빛을 대하며 정광명의 순수 의식으로 이르게 됩니다. 죽음의 순간에 이를 올바르게 실행하기 위해서는 삶의 시간 동안 정진을 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공성을 올바르게 앎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이가 학대당하는 환경에서 부모를 어떻게 용서하는 마음으로 연결 지을 수 있을까요? 최금식 선보 대표
입보리행론 6장을 보면 부모의 역할과 마음 지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논합니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조절하고 다루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항시 마음의 근본에 현재 지구상의 70억 인류의 일원으로서 모두 대등하다는 생각을 지니기를 바랍니다. 아이는 탄생과 동시에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을 필요로 합니다. 사랑에 대한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를 해도 모자라지 않습니다. 아이의 감정이 성장하여 성인이 되어 사회에 합류하였을 때 비로소 우리는 알게 됩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말입니다.

일반인이 불교의 도리를 이해하려면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좋을까요? 삼학사 신도
불교를 처음 접하는 분들이 불교의 공성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현대 물리학과 양자역학의 개념을 먼저 이해해 보는 것을 권유해 봅니다. 불교의 색즉시공을 이해하는 모범답안입니다. 생각을 일으키는 주체에 따라 모든 분별 또한 각양각색입니다. 내가 생각하는바 그대로 대상이 존재할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있다고 여기며 우리는 그저 허망이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화를 다스리는 힘은 어떻게 증장 시킬 수 있을까요? 삼학사 신도
입보리행론의 6장과 8장을 깊이 새기며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자비심이 무엇인지 확실히 세우도록 구체화하기 바랍니다.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되었을 때 그때는 화가 일어나도 바로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깨달음을 구하는 수행자는 나태할 겨를이 없는 것도 이러한 경우입니다. 화를 다스리는 것 또한 습관으로 길들여야 합니다.

의지하던 스승과 다른 관점을 갖게 되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동국대 학생
스승의 가르침을 이유 없이 부정하면 오히려 죄악이 됩니다. 붓다께서도 맹신을 경계하라 당부하셨습니다. 관찰을 통해 타당한 이유를 밝히고 충분히 숙고하여 오류를 바로잡아야 할 것입니다. 분석과 탐구는 일상에서 관계에서 모두 행해져야 합니다.

코로나19 전염병의 대유행이 장기화하면서 지금처럼 온라인 화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것이 익숙해져 갑니다. 지구상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가족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종교 신앙 여부에 상관이 없습니다. 종교 이전에 우리는 사랑과 배려 그리고 존중이 항시 선행되어야 합니다. 티베트불교의 주고받는 ‘똥렌’ 수행을 통해 사랑과 자비를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어느 정도 숙련이 되었을 때야 가능한 수행법이지요. 이 수행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더 정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좀 더 꾸준히 애쓰고 노력해 주세요. 서서히 습관으로 익숙해질 수 있도록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붓다께서는 초전법륜에서 율장을 설하셨습니다. 중전법륜에서는 여섯 바라밀과 십지 그리고 오도를 설하신바 중론 사백론은 모두 바라밀경을 저본으로 하여 나온 것입니다. 티베트불교는 중관과 반야를 중점적으로 논하였는데, 그 초석이 바로 ‘뒤다’입니다. 망명 후 인도에 티베트불교가 승가를 통해 전래 된 이후로 대붕 간덴 세라 사원의 학승에 의해 항시 경전과 논서의 수학을 강조하였고 논쟁으로서 바른 가르침을 세우는 지금 이 모든 법의 흐름은 티베트불교의 자부심으로 빛을 발하고 있음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