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라마스님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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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의 얼룩마저 지운 순간, ‘붓다’를 만난다
달라이라마, ‘삼종요도 안의 담긴 마음 헤아림’ 설법

위없는 깨달음을 구하는 보살이여.
나의 어머니와 다름이 없는 일체 존재와 더불어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키려는가.
만일 그대가 청정한 마음 없이 자유를 결심하려 든다면,
완전한 깨달음의 환희는 결코 가져오지 못하리라.
강력한 네 가지 강물의 흐름에 휩쓸리고,
풀기 어려운 행위의 강박에 묶여,
자아라는 망상의 철망에 갇히고,
무지의 어둠에 완연히 휩싸여,
끝없는 윤회 속에서 거듭거듭 태어나리니,
종국에는 세 가지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네.

인도 북부 고대 불교왕국 라다크 잔스카르 카르샤포당에 도착한 달라이라마(뗀진갸초, 90)의 사자후 뒤로 이른 아침의 햇살은 무지개로 피어올랐다. 성하의 가르침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기 위해 인도 전역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모인 2만여 명의 사부대중은 이른 아침의 따가운 햇살을 피하고자 우산을 쓰거나 스카프를 두르고 법회장의 광장에 운집했다.
학승들의 대론이 광장에 메아리로 울려 퍼지고, 이어서 일체 만물의 공성을 함축한 반야심경이 봉독 되었다. 온 우주를 상징화한 만다라 공양에 이어 웅장한 법고가 법회장을 울렸다. 사부대중은 두 손을 모아 달라이라마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서원을 올렸다.

“수승한 지혜의 보고를 근간으로 일체중생의 고통을 멸해주소서.
성하의 가르침이 상상할 수 없는 수십억 겁 동안 세세생생 전수되도록 하소서.”

달라이라마는 잔스카르 불교수행자를 상징하는 오렌지 빛의 성스러운 모자를 쓰고 청중에게 손을 들어 평안의 안부를 전했다.

설산으로 둘러싸인 티베트에 불교가 전해 내려온 이래 14대 달라이라마인 저는 법왕이자 비구 승려의 책무를 지고 붓다의 가르침을 전하는 숙명으로 살아왔습니다. 격동하는 세계의 정세 속에서 티베트는 나라를 잃고 우리 민족은 세계 곳곳으로 흩어지게 되었지만, 고난의 굴곡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로 뭉칠 수 있도록 가능케 한 힘은 바로 붓다의 완전한 가르침과 그것을 믿고 따른 불교도 여러분의 값진 실천 덕분이었습니다.
히말라야 설산을 넘어 인도로 다시 전해진 붓다의 음성은 대양을 가로질러 오늘날 서양의 많은 지식인에게 과학적 사고 방식과 협력은 물론 연구를 도모하면서 티베트 불교문화라고 하는 근본 즉 원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세계 다른 지역에서는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남다른 시각과 형태로 생겨나고 있습니다. 우리 불자들이, “붓다와 수행승 그리고 가르침에 귀의합니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붓다’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티베트어 상계相戒의 첫음절은 파괴적인 감정과 그 잔여 얼룩으로 이루어진 모든 번뇌를 극복한 자를 나타냅니다. 두 번째 음절은 두 가지 진리(二諦)와 같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명확하게 보는 것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붓다는 모든 부정을 극복하고 알아야 할 모든 것에 대한 완전하고 명확한 지식을 얻은 사람을 정의 합니다. 티베트어로 다르마를 뜻하는 초Chö는 당신을 보호하는 기운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무엇으로부터 당신을 보호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과학과 함께 연구해야 할 불교의 미래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붓다께서는 첫 설법에서 사성제를 가르치셨고, 마침내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사이에 광범위한 가르침을 전하셨는데, 제자 용수보살과 같은 선지식께서 이성과 논리의 관점에서 가르침을 논하였습니다. 송첸캄보와 티송데첸 왕의 재위 기간에 인도 나란다 승원으로부터 전래한 불교는, 샨타락시타 카말라실라 그리고 구루 파드마삼바바를 티베트로 초청하기에 이릅니다. 이상의 위대한 선지식을 통해 수트라와 탄트라의 경전이 확립되고 깨달음을 위한 가르침이 대중에게 설파되기에 이릅니다.
다르마는 마음을 수련하는 것과 연관이 깊습니다.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 불법의 목적입니다. 예를 들어, 인내심을 기르면 낙담하지 않고 봉착한 문제와 어려움에 대처할 수 있는 용기라 부르는 힘이 생깁니다. 과연 고통이 무엇이며 왜 괴로움이 생기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불법을 이해함으로써 어려움에 맞설 용기가 생기고, 우리의 삶에 얼마나 실용적이고 유용한지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삶의 여정에서 다양한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영적인 이해는 큰 도움이 됩니다. 고대 선지식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되뇔 수 있는 지혜의 힘이 있다면 일상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의 일상 속 주된 수행은 보리심의 깨달음과 공의 관점을 겸비하는 것입니다. 저는 공을 이해하기 위해 분석의 논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과연 부처님의 가르침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불안한 감정에 압도되지 않고 마음을 변화시킬 기회를 탄력 있게 활용하는 재치를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 스스로가 가르침을 공부하고 이해하여 일상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곳 카르샤 사원에 모여 거대한 불상의 점안을 축복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붓다의 모습과 마주할 때 그분의 생애를 통해 보인 가르침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우리도 그와 닮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서원해야 합니다. 붓다의 가르침을 따라 삶 속에서 직접 실천함으로써 나의 일상의 모든 여정이 감동이 되도록 변화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으로 우뚝 서기를 염원합니다. 그러한 나 그리고 우리 모두의 노력이 사회 공동체의 화합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곳에서 우리가 공부하고 성찰하여 느낀 깨달음의 맛을 오래오래 기억해 주십시오. 부디 고요한 내면의 힘이 여러분의 마음에 보리심의 씨앗으로 심어지는 충만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