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참으로 화가 많습니다. 일상의 순간순간 곳곳에서 불현 듯 화를 일으킵니다. 강한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몸 안의 장기 한 부분에 내가 있습니까? 내 팔목에 두른 시계에 내가 있습니까? 물론 값비싼 명품 시계는 타인으로 하여금 나의 사회적 지위와 물질적으로 성공한 이미지를 상징케 하는 수단이 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 당장 일어난 화를 다독이는데 그 시계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반면 바른 마음가짐을 통한 건강한 육체는 올바른 삶으로 탄력 있는 일상을 유지하도록 하게끔 합니다. 마음을 잘 살펴 이 소중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진정으로 의미 있게 살아가도록 조력할 수만 있다면 금은보화로 치장한 재력가가 부럽지 않습니다. 나라고 하는 것은 인연 화합에 의한 마음의 소산입니다.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그것의 노예로 휘둘리는 것은 수만 가지 알음알이의 저장고인 아뢰야의 인연화합 계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유로부터 외부로 표출되는 연기의 진리는 지혜로 향하는 삶의 지도를 제시합니다. 그 방향의 터전이 바로 근본 마음입니다. 시시각각으로 일어나는 인간사에 관련한 소식을 접할 때면 나 스스로에게 강한 의문을 세워봅니다. 더불어 내 주변의 모든 철학과 과학 그리고 불법의 지식을 총 동원해 다양한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봅니다. 그로 말미암아 더욱 풍부하고 심도 깊은 행복의 해답을 얻고자 합니다. 그 근본에는 정직함이 있어야 합니다. 지식의 대화를 넘어 지혜로운 통찰이 요구됩니다. 이 모든 작용은 교류와 통섭의 차원이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강조하고 싶은 바는 대화 없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나는 이러한 공식 법회를 즐깁니다. 다양한 청중들과 나누는 대화 속에서 나 또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받고 동시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첫 번째로 가족과 자녀에게 사랑의 감정을 전하십시오. 사회와 국가로 확대되는 결핍의 어둠은 가족의 해체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건강한 가족이 건강한 국가로 이어지는 것은 순리입니다. 고여 있는 물은 종국에는 썩고 맙니다. 그 곳에서는 어느 생명도 존속될 수 없습니다. 국가의 사상과 이념과는 별개 문제인 삶의 근본 방식입니다. 인간이 지닌 계발 능력과 그로인한 진보에는 근원적으로 지혜가 있기에 가능합니다. 그 지혜는 마음을 열고 보는 바른 지혜입니다. 내가 지닌 모든 지식의 거울로 내 안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마음의 현상들을 바라보십시오. 모든 현상들이 하나로 압축될 것입니다. 정신적 불안은 자애의 결핍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내 안의 현상들에만 머물지 말고 세계의 동향, 자연의 경고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모두가 한 갈래에서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건강한 마음에서 모든 것은 바르게 추구되고 공유됩니다. 과학과 경영으로 진보한 나라에서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는 개개인의 불행에 대한 답은 따스하게 보담아주는 긍정의 빛입니다. 대화하십시오. 가족과 스승 그리고 동료와 지금부터 대화를 나누십시오. 논리적으로 행복의 시작과 끝은 정의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명확히 해답을 얻고 싶어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또한 그 해답을 찾아 살아가는 삶의 길이 바로 인생입니다. 가만히 있는 나에게 미친개가 달려들려고 한다고 가정해봅시다. 그 개의 주인이 누구인지 개의 품종이 무엇인지 분석하기 전에 그 위험으로부터 신속히 도망치는 것이 가장 현명한 해답입니다. 불안의 심리가 찾아올 때는 불안을 분석하려 들지 말고 어서 빨리 탈출하십시오. 그 불안의 늪에 깊이 빠지면 빠질수록 삶의 가치는 역행할 것입니다. 오늘의 젊은이들이 고민하는 현실의 문제를 보면서 나는 희망을 느꼈습니다. 더욱이 미래에 대한 나의 염려에 안도감을 줍니다. 나의 정신은 이미 구식이기에 그들로부터 새로운 아이디어를 교육받습니다.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생각이 100년 후의 우주를 디자인할 것입니다. 창조적이고 진보적인 자비의 아이디어가 다양하게 샘솟아 희망의 지구를 가꾸길 기대해 봅니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 삶의 리더가 될 자격이 있습니다. 긴 시간을 전망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현실에서 실천하십시오. 삶의 균형이 순조로울 때 인류의 희망은 더 이상 희망이 아닌 현실이 될 것입니다. 예상 외로 많은 불자들이 불교 수행자를 정의하는 방식에 있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명상에 할애하는지, 특별한 수행법으로 신령스런 체험을 했는가 등의 무모한 희론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한때 미국 법회 때 만난 자칭 불교도라고 소개한 과학자는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인간의 진보가 언제 끝날 것으로 보십니까?”
나는 되물었습니다.
“당신은 스스로 불교 신자라고 생각합니까?”
바른 불자는 실상의 진리를 압니다. 네 가지 숭고한 진리와 열두 가지 연기의 진리가 친절히 논하고 있습니다. 불자는 기본적으로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기 때문에 이로부터 싹 틔운 불법의 시각으로 세상을 정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의 어긋남을 스스로 깨우치는 것이 가장 탁월한 해답입니다. 오늘날 인류는 ‘나’라고 하는 강한 집착 때문에 타인의 숭고한 충고를 쉽게 용납 못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타인에게 확신을 주는 것이 매우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인간의 뿌리 깊은 무지는 절대적이고 신성한 무엇을 만들어 냈습니다. 나가르주나는 근본의 밑바탕으로 들어가 실상의 중론을 고심했습니다. 그것이 『반야심경』에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워낙 유명한 경임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를 제대로 아는 이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무엇의 불법의 핵심입니까? 나는 14대 달라이라마입니다. 굉장히 무거운 이름을 짊어지고 75년의 세월을 지내왔지요. 그러나 나의 실체는 ‘공空’입니다. 티베트와 티베트인의 삶은 자비 그 자체입니다.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은 달라이라마라는 티베트 출신의 종교인이 들려주는 실상의 진리를 듣기 원합니다. 과학이 진보를 거듭해도 기술과 돈으로 절대 해결될 수 없는 인간 심연의 번뇌와 켜켜이 쌓인 일상의 고민들이 여러분과의 만남에 인因을 성립시켰습니다. 『반야심경』은 나를 포함한 모든 현상에 실재하는 존재가 없다고 거듭거듭 밝힙니다. 우리가 발전이라고 칭하는 것들은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간에 모두 인간의 “희망”이 만들어낸 욕망의 화합체입니다. 그 속성인 공성空性을 보면 모든 분노와 혼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평온하고 흔들림 없는 마음으로 이르는 길로 우리 모두 함께 가자고 『반야심경』은 권고합니다. 붓다의 세상은 현상계 밖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한 몸을 이루는 화합의 산물들이 생기를 이룰 때 건강한 마음 그 안에 붓다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