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운스님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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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불교의 청사진(17)
불교는 생사문제를 매우 정시正視한다. 사실 불교 자체가 하나의 생사학生死學이라고 볼 수 있다. 관세음보살의 ‘괴로움과 어려움에서 구원함’이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고, 아미타불의 ‘극락세계로 인도함’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불교의 최종 목적은 생사의 해탈이다. 어떻게 하면 이번 생을 확실히 알아 다시는 생사의 윤회에 빠지지 않을 것인가가 불문에서 수행하는 과제이다.
사람은 살면서 그저 먹고 마시고 놀고, 명예와 이익을 다투는 것만 안다. 자신의 생명을 위해 어떤 방향으로 나갈 것이며, 노후 준비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도 없고, 걸어 다니는 시체처럼 아무 의미 없이 멍하게 하루하루를 그럭저럭 살고 있다. 그러다 일단 삶의 마지막 날이 닥치면 결국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먼저 알아야 어떻게 죽는지도 알 수 있다. 불교에서는 생사를 잘 알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과거에 생사를 기피해 이야기 나누기를 꺼려했던 소극적인 마음가짐을 바꾸고, 불법 수행을 통해 정확한 입장과 태도로 생사를 대면해 나가며, 나아가 생사를 해탈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참으로 행복한 인생을 누릴 수 있다.

14. 지식관智識觀: 진수지도進修之道
독서讀書는 지식을 넓히고, 지혜를 깨우쳐 준다. 특히 독서는 심성을 더욱 맑게 하고, 인격을 더욱 높여주며, 성격을 변화시켜 준다. 그래서 ‘가슴속에 시문의 소양이 있으면, 그 기상氣象도 절로 훌륭하게 된다’고 하였다.
독서하지 않는 사람은 언어가 무미건조하고 저속하기 그지없다. 시문을 많이 익힌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함께 있으면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났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음식을 먹어도 그들에게서 풍기는 인품과 성격은 전혀 상이하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성현들은 독서를 적극 권장했다.
불교는 지혜를 신봉하는 종교이다. 번뇌와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중생의 지혜를 깨우친다. 불교는 서향(書香: 책 읽기를 좋아함) 생활을 특히 제창하며 불제자들에게 경전을 읽거나 설법을 들을 것을 권한다.
『부자합집경父子合集經』에서는 “중생들이 만일 부처님께서 말하는 바를 들으면 마음에 깨끗한 믿음을 내고, 분명히 이해하고, 아름다운 행을 부지런히 갈고닦아 보리를 취하여, 생사윤회의 바다를 벗어나게 될 것이다”라고 설한다. 『능엄경楞嚴經』에서도 “문혜聞慧, 사혜思慧, 수혜修慧로 삼매에 들어가리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불교 경전은 첫마디를 모두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如是我聞)”로 시작한다.
또한 개경게開經偈에서는 “그 깊고도 미묘한 법은 백천만겁에 걸쳐 만나기 어려운데 내 지금 그것을 듣고 보아 지니고자 하오니, 원컨대 여래의 진실한 뜻을 해득할 수 있게 하소서”라고 노래한다.
『금강경金剛經』에서 말한 “사구게四句偈를 받아 지니는 공덕은 삼천대천 세계에 재물을 보시하는 것보다 크다”와 『화엄경華嚴經』에서 “모든 공양 가운데 법공양이 으뜸이다”라고 한 것 등이 모두 책 읽기를 좋아하는 ‘서향 생활’을 강조한 것이다.
불교는 반야의 지혜로 사리를 분별하는 것을 중시한다. 중국의 옛 총림들은 시방의 납자들에게 참방參訪과 수행을 제공하는 학교였다. 이른바 “포참(飽參 깨달음을 완전히 체득함)하러 시방을 다니는 총림의 객이여, 그 가운데에서 깨달음을 얻었는지 모르겠소?”라는 것이다.
청나라 말기로 들어서며 각 사찰들은 승가학교와 사범학당을 세웠고, 태허太虛 대사는 수많은 강원을 설립했다. 이러한 전통을 이어 현재 대만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불교주일학교와 불교여름캠프가 있고, 청소년을 대상으로는 불교청년회와 불교전문동아리가 활동하고 있다. 재가신도를 대상으로는 신도공수회信徒共修會, 신도강습회가 있고, 전문적인 불교대학과 대학원도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불광산은 사회교육을 위해 설립한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에서부터 대학교까지 모두 백만 신도 재중의 꾸준한 지지를 받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 불교도도 이미 교육과 지식의 중요성을 인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불교는 본래 부처님의 가르침이고, 불교 사찰은 수행과 학문을 하던 수련소이다. 그러므로 고대에는 ‘선불장選佛場’이라고도 불렀다. 사찰은 학교와 같고 불교는 문자반야文字般若의 전파를 중시한다. 『법화경法華經』의 ‘십법행十法行’에서는 싸(書寫: 스스로 경전을 펴서 읽음), 인경(印經: 경전을 인쇄하여 유포함)의 이로움을 제창하고 있다. 『아미타경阿彌陀經』에서는 “극락세계의 중생은 매일 이륙시二六時 중에 불·법·승을 염하지 않는 자가 없고, 언제나 일념으로 불법과 불도, 중생의 이익에 마음을 둔다” 하였다. 『화엄경華嚴經』 「입법계품」에는 불도佛道를 이루고자 53명의 선지식善知識을 찾아 천하를 순례하는 선재동자의 험난한 구법 과정이 서술되어 있다. 이것은 앞사람의 발자취를 따라 배우고자 하는 오늘날 참방과 같으며, 청년들에게 학문을 추구하는 모범이 되고 있다.
명나라 때 원료범袁了凡은 “한때 남에게 권할 때는 입으로 하고 백세에 남에게 권할 때는 글로 하니라. 공덕이 모두 다 한량없으니, 선을 행함이 가장 즐거우니라. 오계를 지키면 사람의 몸을 보호할 수 있고, 십선을 행하면 하늘나라에 오를 수 있느니라. 인과가 결정되면 어둡지 않으니, 글을 읽는 것이 유익하니라”라는 이야기를 남겼다.
예로부터 문자반야를 중시한 불교는 거의 모든 사찰에 경전 또는 목판 등을 보관하는 장경각藏經閣을 두었다. 고덕들은 매일 경전을 외우고 패엽경을 썼으며, 직접 돌에 경전을 새기기도 했다. 원나라 때 법진法珍 비구니 스님은 팔을 자르며 경전을 새기기도 했다. 현장법사는 서역에서 경전을 모셔왔고, 담무갈曇無竭은 중국에 불법을 널리 전하였다. 법을 구하고자 하는 정신이 없었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서향書香 생활이 없었다면 삼장십이부의 경전이 어떻게 전해져 왔겠는가!
이 밖에도 당나라 때 위산 영우 선사는 “말을 하면 모름지기 고전의 문장典章을 섭렵해야 하고, 이야기를 꺼내면 곧 옛것에 가까이 머무르는 것이 되어야 하며, 형의形儀는 뛰어나게 하고 의기意氣는 고상하게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였으며, 우익 대사는 “음식을 조절하지 않으면 반드시 병환이 생기고, 삼장三藏을 읽지 않으면 반드시 지혜의 눈이 어둡다”라고 말씀하셨다.
명나라 때 주굉.宏 대사는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각자 취미가 있고, 죽는 날까지 그 취미를 즐기지만 취미에도 맑음과 혼탁함의 품격이 있다. 가장 탁한 것은 재물을 좋아함이고, 그 다음은 여색, 그 다름은 술이다. 고상한 것은 골동품을 수집한다거나 악기 연주, 또는 그림을 그리거나 산수를 즐기거나 시를 짓는 것이다. 한층 더 높은 것은 신심 수양에 유익한 책을 읽는 것이다. 이상 갖가지 취미 중 책을 읽는 것이 가장 으뜸이라 하겠다. 그러나 독서는 아무리 좋아도 세간의 잣대에 불과하다. 불경을 읽음은 수행을 위해서이지만, 맑은 수행을 좋아하여 항상 마음을 고요하게 하면 자연히 불경을 읽는 것보다 한층 더 높고, 세간과 출세간의 모든 취미 중에서 가장 수승하다고 하겠다. 맑고 아름다운 경지에 들어감이 사탕수수를 먹는 것과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를 통해 근면하게 배움을 구하고 경전 연구에 매진했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예로부터 출가자 중 경전을 널리 탐독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덕분에 대부분 많은 지식을 쌓았고 사대부와의 교류도 빈번했다. 소동파蘇東坡와 불인佛印 선사, 백거이白居易와 조과鳥寡 선사, 구양수歐陽修와 명교明敎 선사, 원료범과 운곡運谷 선사가 그 예이다. 또한 불교를 반대했던 한유韓愈 조차도 대전大顚 선사와 도에 대해 문답하며 가까이 지냈다고 한다. 심지어 과거에 중국 농촌의 촌부까지도 사서오경은 몰라도 「대비주大悲呪」, 『금강경』, 『아미타경』 등은 능히 외울 수 있었다. 이것은 불교가 제창하는 독서 사상이 이미 사람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심지관경心地觀經』에서는 “착한 벗을 가까이하는 것이 첫째가 되고, 바른 법을 듣는 것이 둘째가 되며, 이치대로 생각하는 것이 셋째가 되고, 법대로 갈고 닦는 것이 넷째가 된다” 하였고, 『치문경훈緇門警訓』에서는 “배움을 닦지 않으면 이룰 것이 없고, 나를 꺾지 않으면 배울 것이 없다. 올바른 스승을 따르지 않으면 참된 가르침을 배울 수 없고, 익히고 외우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다” 하였다.
불교는 지식의 전수와 지혜의 개발을 중시하는 종교지만, 교육은 일반 사회교육과 다르다. 사회교육의 목적은 장차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을 배우거나 좋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졸업장을 얻으려는 것이지만, 불교교육에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막중한 임무를 짊어지기 위한 자비의 마음과 서원을 포함하고 있다.
불교의 교육은 크게 사찰 행정사무와 의리義理연구 두 가지로 나뉜다. 특히 생활교육과 사상교육을 중시한다. 생활교육이란 가고 머무르고 앉고 눕는 일상의 기거동작起居動作, 사람 응대, 일 처리, 위의威儀 등 각 방면의 훈련이다. 사상교육은 우선 삼보에 대한 신심, 사찰에 대한 충심, 중생에 대한 자비심, 계율 지킴에 대한 적극적 태도 등 네 가지 허물어지지 않는 믿음인 사불괴신四不壞信을 갖추는 것이다.
이 밖에도 학습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자기개발을 하고 자발적으로 학습에 임해야 한다. 특히 부처님의 가르침은 일반 철학과는 다르다. 불교는 지식, 이론, 도덕도 중요하지만, 실천과 수행을 더욱 중시한다.
‘해행병중解行.重’이란 불법의 내용을 깊이 이해해야 함은 물론, 특히 생활 속에서 활용해야 함을 나타낸 말이다. 그러므로 수행은 입으로만 외치는 구호나 겉으로 드러내는 형식이 아니라, 평소 생활 중에 행해야 한다. 자비로운 말과 눈빛, 자비로운 낯빛으로 사람을 대하고, 자비로운 손길로 도움을 주며, 자비로운 마음으로 축복해주는 등 불법이 평소 생활 속에 녹아 있어야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능엄경』에서는 “많이 들었다고 해도 수행하지 않으면 듣지 않은 것과 같다. 이는 사람이 먹는다 말만 해서는 배부를 수 없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불도를 배우고 수행하는 것은 반드시 사찰 내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불교는 생활 속에서의 수행을 더욱 중시한다. 일상생활에서 불법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수행이다. 그러므로 불교 신자의 하루 수행은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이다. 평소 사람을 만나거나 사물을 마주할 때, 말할 때나 침묵할 때, 움직일 때나 멈춰 있을 때 모두 불보살을 본받아 자비와 방편으로 이치에 맞게 생활하고 가르침에 맞게 행동하며 일 처리를 해야 한다.
이 외에도 개인 시간을 만들어 규칙적으로 염불이나 사경 등을 하고 이를 계속 지키는 것 또한 수행이다. 여건이 된다면 집에 불당을 설치하고 매일 아침 일어나 불상 앞에 꽃과 물, 향을 피우고 예불을 드리거나 독경을 하거나 5분 정도 참선을 하는 것도 좋다. 잠자기 전에는 부처님께 일심으로 예불을 드리거나 「불광기원문佛光祈願文」을 읽고 자신의 공덕과 잘못을 반성한다. 매주 한두 차례 사찰의 법회에 참석하여 선정禪定에 들고, 부처님의 교법을 듣는 즐거움으로 자신의 번뇌를 씻어버리며 마음속 성재聖財를 개발한다. 식사 전에는 합장하고 사공양四供養, 불광사구게 또는 오관게를 외워 감사와 자비의 종교적 감성을 배양한다.
수행은 문을 닫아걸고 홀로 수련하여 자신이 얻고 나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수행은 가까운 사찰에서 선지식을 참방하고 법요法要를 구하는 동시에 법을 수호하고 법을 널리 펼치겠다는 발심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불교의 지식관이 주장하는 정진과 수행의 도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