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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불교의 청사진(23)
인간의 생명은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져 왔고, 다시 현재에서 미래를 향해 천천히 나아가다가, 미래라는 길에서 생명은 삶과 죽음으로 나뉜다. 인간은 수십 년의 짧은 일생 동안 태어났다. 죽고,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고를 한 차례씩 반복하면서 끝이 없는 미래를 향해 걸어간다.

미래란 무엇일까? 미래란 어떤 모습일까? 만족스러운 미래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미리 알고 싶어 운세나 점을 보는 사람이 많다. 점술 등을 통해 미래를 먼저 알려고 한다. 사실 미래란 뭔가? 미래는 시작도 끝도 없다. 미래는 시계와 같아서 째깍째깍 앞으로 나아갈 뿐, 어디에서 멈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미래가 끝이 없이 계속 된다는 것을 안다면 굳이 지금 이 수난에 매달려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현재, 이번 생애, 백년의 세월은 끝이 없는 미래라는 시간 속에서 과연 얼마를 차지할까? 그러므로 바른 신앙인 불교는 신에게 점을 친다거나 운세를 점치는 것을 주장하지 않는다. 미래를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반드시 자신의 미래를 알고 싶다면 미래를 자신의 손에 꽉 쥐고 있으면 된다. 『삼세인과경三世因果經』에서는 “전생의 인因을 알고 싶다면 현생에 받는 것을 보고, 미래의 과果를 알고 싶다면 현생에 지으면 됩니다”고 말했다. ‘여시인如是因’은 반드시 ‘여시과如是果’를 불러온다. 자기의 운명은 자신이 결정한다.

그러므로 미래를 알고자 하는 것보다 지금을 확실히 하는 것이 낫다. 인생에는 과거도 있고 현재도 있고 미래도 있다. 과거라는 것 역시 과거였던 적은 없다. 과거는 우리의 현재에 영향을 미친다. 현재라는 시간은 멈추지 않지만 우리를 미래로 이끌고 있다. 미래에는 또 미래가 있고, 세세생생 이렇게 쉼 없이 돌고 돈다. 넓은 의미에서 과거는 무량의 ‘아승지겁阿僧祗劫’이며, 넓은 의미의 미래 역시 무량무수의 ‘아승지겁’이다. 우리는 과거의 행위를 반성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며 그중에서 경험을 살려 미래를 더욱 낫게 할 수 있다.
우리는 현재의 시간에 멈춰 서서 안주해서는 안 된다. 뒤로 물러나지 않아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생명의 가치를 매긴다면 과거보다는 모든 사람의 희망인 미래에 더욱 큰 가치가 있다고 본다. 우리는 씨앗을 뿌리면서도 더 많이 수확하길 바란다. 태양이 지는 걸 보며 내일도 여전히 해가 떠오르길 바란다. 인간의 삶은 미래라는 희망 속에서 살아 숨 쉰다. 미래의 행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지금의 어떠한 고난과 괴로움도 우리는 달갑게 맞아들일 수 있다. 우리에게 이상이 없다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어떻게 실현시킬지 이야기할 가치조차 없다. 미래가 없다면 우리에게 목표도 없을 것이고, 이상도 없을 테니 성공으로 희열을 맛볼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의 삼세인과관은 인생에 무한한 희망과 미래를 선사한다. 전세前世·현세現世·내세來世를 삼세라 한다. 과거 현재 미래 역시 삼세라 하고, 1초 전, 지금, 1초 후 또한 삼세라 한다. 삼세는 지금 나의 한 생각에 존재하며, 나의 마음의 한 가운데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를 정확히 파악해 선한 행위가 순환되고 선한 생각이 계속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아름다운 미래와 원만한 인생을 누릴 수 있다.

불법은 세간법과 출세간법으로 나뉜다. 불교의 궁극적이 목표는 출세간하여 열반해탈에 이르는 것이다. 불교에서 ‘먼저 입세入世하고 난 뒤 출세出世하라’고 주장할지라도 사람이 사는 동안은 세간의 법을 벗어나기 어렵다. ‘부처님의 법은 이 세간에 있는 것이니, 세간을 떠나서는 깨닫지 못한다. 세간을 떠나서 보리를 찾는 것은 마치 토끼의 뿔을 구하는 것과 같다’라는 구절이 있다.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면 입세간의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은 대부분 다음과 같은 생활을 한다.

(1) 물질 위주의 생활 : 물질이 생활의 주요 부분을 차지했다.
(2) 감정 위주의 생활 :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부처님도 ‘중생은 유정하다’고 말씀하셨다.
(3) 군중 위주의 생활 : 인간은 무리를 떠나 홀로 살지 못한다.
(4) 육근 위주의 생활 : 인간은 눈, 귀, 코, 혀, 몸, 뜻(육근)으로 빛, 소리, 냄새, 맛, 감촉, 생각의 쾌락을 탐한다.

인간이 물질적 생활, 감정적 생활, 군중적 생활, 육근 위주의 생활을 하지만, ① 물질은 유한하여 무한한 우리의 욕망을 만족시킬 수 없기에, 우리는 ‘합리적인 경제생활’을 해야 한다. ② 인정은 불완전하여 영원히 우리를 만족시킬 수 없으므로 우리는 감정을 정화시켜 생활해야 한다. ③ 이익이 충돌하면 평화가 오래 지속되지 못하니, 우리는 서로 화합하며 생활해야 한다. ④ 근신根身은 무상하며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인간불교의 청사진을 기획하고 인간불교의 정토를 건설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내용이었다. 이 밖에도 『유마힐경』 「불도품佛道品」의 내용도 인간불교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반야지혜는 어머니요 방편은 아버지니,
일체 중생 이끄는 스승 이로 말미암아 나시었네.
법회를 아내 삼고 자비심은 딸이 되어,
정성된 맘 아들이라 필경 공적한 집이라네.

모든 제자가 번뇌를 뜻대로 다스리며,
37도품이 선지식임을 알아 깨달음에 이르네.
모든 도법은 도반이고 사섭법은 기녀로 삼아,
법의 말씀을 노래하니 이것이 음악이네.

다라니법의 동산에 무루법이 나무되며,
7각지의 정묘한 꽃 피고 해탈지혜의 열매가 열렸다네.
8해탈의 목욕하는 연못에 선정의 물 가득하고,
일곱 가지 맑은 꽃 뿌려 목욕하면 모든 번뇌 사라지네.

다섯 가지 신통력은 항마 되고 대승은 수레 삼아,
한 마음으로 제어하며 팔정도의 길을 유람하네.
위엄 있는 용모를 갖추고 갖가지 자태를 꾸미며,
참괴慚愧의 옷을 입고 깊은 마음은 꽃다발로 삼았다네.

7성재聖財가 풍부하여도 가르침을 더욱 늘려가고,
말씀을 따라 수행하여 회향하면 큰 이익이 된다네.
4선禪을 자리 삼아 정명淨命의 삶을 따르고,
많이 듣고 지혜를 늘려 스스로 가르침을 깨달았네.

감로법甘露法은 밥이요 해탈미解脫味는 음료이며,
청정한 마음으로 목욕하고 계품戒品으로 향을 삼았다네.
번뇌의 도적을 섬멸하니 용감하기 비할 데 없고,
네 가지 마군을 항복시켜 승리의 깃발을 도량에 세웠다네.

나고 멸함이 없음을 알지만 저들에게 보이고자 태어나서,
온 국토에 모습 나타냄이 태양과 같아 비추지 않는 곳 없다네.
시방의 한량없는 부처님께 공양 올리지만,
모든 부처님과 나의 몸은 분별하는 마음이 없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