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운스님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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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안에서 사성제의 중요성
사성제는 불교에서 아주 중요한 교리이며,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은 내용이고, 우주 연기緣起의 진리이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연기 법칙이 심오하고 난해하여, 갑자기 설명하면 아직 믿음이 없는 중생들이 오히려 두려움을 갖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셨다.
부처님께서 녹야원의 다섯 비구에게 초전법륜을 행하실 때, 거듭 ‘사성제’를 바탕으로 중생의 생사윤회와 해탈의 이치인 연기법을 설하셨으며, 더 나아가 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나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을 해야겠다는 발심을 하도록 분발시켰다. 이는 중생으로 하여금 ‘고苦를 알고, 집集을 끊으면, 도道를 닦고, 멸滅을 증득’하게 함이 목적이었다.
사성제는 부처님께서 초전법륜에서 설하셨을 뿐만 아니라, 열반에 드실 때도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사제에 의심되는 바가 있으면 얼른 질문할 것이며, 의심을 품고 구하지 않으려 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당시 부처님께서 연이어 세 번 말씀하셨지만 의심을 가진 이가 없었고, 질문하는 이도 없었다. 오로지 아나율 존자만이 부처님의 마음을 알고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다시 말씀드렸다.

해는 차게 할 수 있고 달은 뜨겁게 할 수 있지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사제는 변하게 할 수 없습니다.(『불유교경佛遺敎經』)

부처님께서 거듭 사성제를 강조하셨다는 사실에서 보면, 부처님께서 설하신 모든 가르침 가운데 사성제만큼은 일생 동안 지속적으로 가르치셨고, 그 가운데에 담긴 진리는 불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초전법륜 당시 부처님은 세 차례에 걸쳐 사성제의 오묘한 뜻을 설하셨으며, 이것을 ‘삼전십이상三傳十二相’이라고 한다.(앞에서 설명). 사성제의 중요성은 여기에서 알 수 있다.
사성제의 내용은 병을 치료하는 과정과 같다.

‘고’는 사람이 병에 걸린 것이고, ‘집’은 병이 생기게 된 원인이다. ‘도’는 병을 치료하는 처방전이고, ‘멸’은 병이 이미 완쾌된 것이다.(『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우리가 불도를 익힘은 탐 진치 등 온갖 번뇌를 끊어내고 열반의 경계에 들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성제는 미망의 세간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또 괴로움이 쌓인 속박에서 모든 것을 끊어낸 해탈로 나아가는 길이다. 『중론소中論疏』에는 사성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사제四諦는 미혹함과 깨달음의 근본이다. 그것에 미혹되면 육도가 뒤섞여 어지럽고, 그것을 깨달으면 삼승三乘의 현성賢聖이 된다.
사성제는 우주 인생의 관계를 설명한다. 사람이 살면서 머무는 우주를 세간이라 하며, 세간은 괴로움이 모인 ‘고집古集’으로 이루어졌다. 고집을 초월하려면 세간을 벗어난 법계, 즉 괴로움을 모두 끊어내고 증득한 ‘멸도滅道’와 서로 통해야 한다.
사성제는 십이인연, 삼법인과 더불어 불교 교의의 3대 강령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이름은 서로 다르지만 의미는 상통한다. 십이연기의 주요 내용이 삼법인 사상의 기초가 되었으며, 사성제는 연기 사상의 구체적 형태이다. 세 가지 모두 초기 부처님의 근본 사상이며, 이후의 경론들은 모두 여기에서 발전되어 나왔다. 그러므로 사성제, 십이연기, 삼법인을 불교의 근본불법이라 부른다.
부처님은 수많은 경론 가운데에서도 유독 사성제의 중요성을 줄곧 강조하셨다. 그 예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제까지 말한 팔난八難은 불법의 요행要行이니라. 이 어려움 가운데 한 가지도 벗어나기 너무 힘듦이, 바다를 떠돌다 판자 하나 만나는 것과 같다. 비록 한 가지도 벗어나기 너무 힘듦이, 바다를 떠돌다 판자 하나 만나는 것과 같다. 비록 한 가지 어려움 벗어날 수 있는 이치가 있다 해도, 네 가지 진리를 잃으면 영원히 바른 길에서 멀어지게 된다.(『증일아함경』 권30 「팔난품」 제42-415)
이때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사람이 지팡이를 공중에 던지면 그것이 곧바로 떨어지는데, 아랫부분이 먼저 닿기도 하고, 옆 부분이 먼저 땅에 닿기도 하며, 윗부분이 먼저 땅에 닿기도 하는 것과 같다. 사문 바라문도 이와 마찬가지로 고성제苦聖蹄에 대하여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고집성제苦集聖諦를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면, 그런 사문 바라문은 지옥에 떨어지거나 혹은 축생 아귀 세계에 떨어진다.”(『잡아함경』 권16)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에 대하여 있는 그대로 알고,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에 대하여 있는 그대로 아는 중생은 다해야 내 손에 쥔 흙과 돌 정도밖에 없다.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에 대하여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는 모든 중생들은 저 설산의 흙이나 돌과 같아서 그 수가 한량없이 많다. 그러니 비구들이여,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대해 아직 분별하지 못하였다면 마땅히 방편을 힘써 닦아 증상심을 일으키고 분별하기를 배워야 한다.”(『잡아함경』 권16)

부처님께서 바라내국의 선인이 살던 녹야원에 계시면서, “세간에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가 없다면 해와 달이 사라져 암흙세상이 되는 것과 같다. 사제四諦가 있기에 세간에는 밝은 빛이 생겼다”라고 말씀하셨다.(『잡아함경』 권15)

부처님은 또한 모든 비구에게, “사제의 이치에 대해 여실하게 알지 못하면 외경의 영향을 받기 쉽고 자신의 주인노릇을 하지 못한다. 마치 솜뭉치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갈 방향을 찾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사제에 대해 있는 그대로 알고, 수행으로 그 이치를 이해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잡아함경』 권15)

『보살영락경菩薩瓔珞經』에서 부처님은 사성제의 중요성을 횃불에 비유하시다. 사성제는 능히 십이연기 중의 근본인 무명을 제거할 수 있으며, 일체의 사물은 모두 무상하다는 것을 늘 생각하면 번뇌의 속박을 끊어낼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부처님은 『사분율』 권32 「수계건도受戒.度」에서 “만약 내가 이 사성제 삼전십이행(三傳十二行: 사제의 진리를 세 번 말씀하신 것)을 수행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알지 못했다면 나는 오늘 무상하고 바르며 참된 도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부처님은 사성제 법을 깨달아 불도를 성취하였으므로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말씀을 하셨다.
나는 사성제 심전십이행을 있는 그대로 알았기에 오늘 무상하고 바르며 참된 이치를 이루었도다.(『사분율』 권32 「수계건도受戒.度」)
이것은 이치에 이로움을 주고, 법에 이로움을 주며, 범행梵行에 이로움을 준다. 또한 바른 지혜·바른 깨달음이자 열반으로 향하는 바른 길이다.(『잡아함경』 권16)

사성제가 없었다면 삼보 또한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사성제는 부처님께서 일생을 설한 가르침 가운데 가장 높고 수승한 지위를 차지하다. 『중아함경』 권30 사리자상응품 舍利子相應品 「상적유경象迹喩經」에 다음과 같은 법문이 있다.
한량없는 유익한 법(善法)이 있더라도 그 일체의 법은 모두 사성제에 흡수되어 사성제 가운데로 들어오기 때문에, 사성제를 모든 법 가운데에 가장 으뜸이라고 한다.
사성제는 불교 전체를 종합해 놓은 것으로서, 그 특징으로는 아래 4가지가 있다.
(1) 사성제는 불교의 진리: 세간과 출세간의 일체 불법은 모두 진리에서 발전되어 나와야 한다. 예를 들어 인생이 고통이라는 것은 실상實相이다. 인생에 즐거움이 있다고 해도 그 즐거움 또한 ‘무상無常’한 괴로움이다. 이것은 필연적인 도리이다. 생명체에는 업이 쌓여 생긴 번뇌가 있다. 천상계나 인간계나, 성자나 성현이라도 업감연기業感緣起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 또한 진리이다. 세간의 일체는 인과응보를 벗어날 수 없으므로 인과응보라는 진리로 인생의 관계를 철저히 해석하고 있다. 세간의 모든 종교마다 이런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불교만의 독특한 세계관이다.
고집苦集이 세간의 인과라고 해도 출세간하는 도제와 멸제가 있어 고집을 소멸할 수 있으므로 크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팔정도를 수행하면 고집을 제거하고 이상적이고 원만한 열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성제는 불교 진리의 원칙이라 할 수 있다. 세간의 도리는 각자 자기가 옳다고 주장해 시비를 가리기 쉽지 않다. 그러나 불교적 진리에도 이치와 원칙은 필요하다. 진리에는 보편성, 필연성, 평등성, 항상성(恒性) 등의 원칙이 있어야 한다. 불교에서는 ‘일체행一切行은 무상無常이다’라고 설한다. 이 무상에도 보편성, 필연성, 항상성이라는 조건이 담겨 있다. 그 밖에도 공성空性, 연기, 업력, 인과 등의 근본교리 모두 마찬가지로 수많은 이치와 원칙에 부합된다. 사성제 역시 이런 수많은 이치와 원칙을 내포하고 있다. 세상이 변천하고 인간사가 흥하거나 망할지라도 사성제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사성제는 어느 곳에 있어도 모두 옳다고 여기는 진리이며, 어떤 경론과 이치도 이 사성제의 범주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다.
(2) .사성제는 불교의 경전: 불교의 경전은 수없이 많다. 장경에는 아함부阿含部, 법화부法華部, 본연부本緣部, 경집부經集部, 유가부瑜伽部, 대집부大集部, 논집부論集部, 보적부寶積部, 중관부中觀部, 율부律部, 반야부般若部 등이 있지만, 아무리 많은 경전과 논집도 사성제가 그 모티브이다.
사성제는 원시불교의 근본 법의法儀에 속한다. 후에 계·정·혜戒定慧 삼학과 더 나아가 경·율· 론經律論 삼장까지 발전시켰지만, 모두 사성제에서 발전되어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사성제가 없었다면 모든 불법 경전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중론中論』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 세간이 모두 공하여 무소유라면 응당 셍기는 것도 소멸하는 것도 없다. 생기는 것도 소멸하는 것도 없는 까닭에 사성제 또한 없다. 생기는 것도 소멸하는 것도 없는 까닭에 사성제 또한 없다. 어째서 그러한가? 집제에서 고제가 생기니 집제는 원인이고, 고제는 결과이다. 고집제를 소멸하는 것이 멸제이고, 멸제에 이르게 하는 것이 도제이니 도제는 원인이고, 멸제는 결과이다. 이와 같이 사제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어, 생기는 것도 소멸하는 것도 없다면 사제 또한 없다. 사제가 없으므로 괴로움을 보고, 번뇌를 끊고, 열반을 증득하고, 도를 닦는 것 또한 없다……. 또한 사성제가 없기에 법보法寶 또한 없다.(『중론』 권4 「관사제품觀四諦品」 제24)
그러므로 불교 경전에는 삼법인, 십이연기, 공성연기空性緣起, 평등중도平等中道 등 수많은 학자의 학설과 많은 계파의 의리義理가 있지만, 결론적으로 경전 중의 경전은 사성제이며, 최초의 경전 또한 사성제이다. 일체의 가르침은 사성제로 인해 생겨난 것이므로 사성제가 없었다면 일체의 가르침 또한 이루어질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