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운스님법문
다시보기
인간불교의 청사진(7)
『잡보장경雜寶藏經』에는 부처님께서 백성이 어진 임금에게 어떻게 충성을 다해야 하는지 열 가지 비유를 들어 설명한 구절이 있다. 또한 다스리는 위치에 있는 국왕은 어떻게 백성을 사랑하고 보호하며 충성을 다해야 하는지 밝히고 있다. 경전에서는 “왕은 다리와 같이 만민을 제도해야 하고, 저울과 같이 친소親疏 구분 없이 평등하여야 한다. 왕은 도로처럼 성현의 발자취를 거스르지 않아야 하고, 해와 같이 세간을 두루 비춰야 한다. 왕은 달과 같이 맑고 시원하게 해주어야 하고, 부모와 같이 사랑하고 궁휼히 여겨야 한다. 왕은 하늘과 같이 모든 것을 덮어주어야 하고, 땅과 같이 만물을 길러줘야 한다. 왕은 불과 같이 만민을 제도해야 하고, 저울과 같이 친소親疏 구분 없이 평등하여야 한다. 왕은 도로처럼 성현의 발자취를 거스르지 않아야 하고, 해와 같이 세간을 두루 비춰야 한다. 왕은 달과 같이 맑고 시원하게 해 주어야 하고, 부모와 같이 사랑하고 궁휼히 여겨야 한다. 왕은 하늘과 같이 모든 것을 덮어주어야 하고, 땅과 같이 만물을 길러줘야 한다. 왕은 불과 같이 만민을 위해 그릇되고 근심되는 것을 태워 없애야 하고, 물과 같이 사방을 윤택하게 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일국의 군주가 이처럼 어짊과 덕을 두루 겸비한다면 신하와 백성은 절로 정성과 지혜를 다해 목숨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이다. 같은 이치로, 군주와 관료는 마음을 다해 일반 백성을 사랑하고 보호하며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 충성을 다한다는 것은 너와 내가 서로 존경하는 관계이자 무척 평등하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니건자경尼乾子經』에서는 한 나라의 임금과 관리는 다음 여덟 가지를 반드시 행하여 부하들의 충성됨에 보답해야 한다고 했다.

첫째, 일체의 중생을 친자식처럼 생각하라.

둘째, 악을 행하는 중생을 병자로 생각하라.
셋째, 고통받는 중생을 생각하며 항상 자비심을 발하라.
넷째, 뛰어난 즐거움 받는 중생을 생각하며 환희심을 내어라.
다섯째, 원수진 중생을 생각하며 잘못을 가릴 생각을 내라.
여섯째, 재산에 대해 약藥과 같은 생각을 하라.
여덟째, 자신의 몸에 대해 무아無我의 생각을 내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상적인 충성의 길이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두려워하고 서로 이익을 쟁취하고자 음모를 꾸미는 관계가 아니라 임금은 인자함으로, 신하는 존경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화목한 관계이다.
예로부터 불가의 제자들은 충정과 애국을 나 몰라라 하지 않고, 국가의 안위를 중요하게 여겼다. 송나라 때 ‘정각靖康의 변’을 당하며 휘종徽宗과 흠종欽宗 두 황제가 금나라의 포로로 잡혀가자, 그 뒤를 이어 강남에서 흠종의 아우 강왕康王이 즉위하였다. 이때 강왕에게 초빙된 법도法道 선사는 나라의 중요한 사무를 맡아 군량을 비축하는 등 남송이 안정되는데 크고 작은 공헌을 많이 했다.
당나라 때는 ‘안록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나 경제가 피폐해지자 신회神會 대사는 도첩을 팔아
군비를 마련했으며, 그 덕분에 반란군을 진압하고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 모두 국가의
위기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국가 보위를 위해 충성을 다한 불교의 사적事蹟이다.
불광산 대지전大智殿에는 서하棲霞 법맥의 일대 고승인 종앙상인宗仰上人을 기념하기 위한 ‘종앙상인기념당宗仰上人紀念當’이 있다. 종앙상인은 신해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손문孫文 선생이 이끄는 동맹회同盟會에 가입하여 자금을 후원하고 혁명의 성공에 도움을 주었다. 당시 손문 선생과 오갔던 서신이 지금까지도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다.
국가를 위해 충성을 바친 역대 고승대덕 외에도, 이미 불도를 이루신 석가모니 부처님 자신도 조국을 침략하려는 비유리 왕을 저지하기 위해 나무 그늘도 없는 뙤약볕에 조용히 앉아 계셨다. 이후 비유리 왕이 세 차례나 카필라 국을 침략했지만, 세 차례 모두 부처님은 자비로 막아냈다. 이로써 부처님께도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로 애국정신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부처님은 충성뿐만 아니라 효도 또한 무척 중시하였다. 부처님은 부친인 정반왕이 돌아가시자, 상여가 나갈 때 다른 왕자들과 함께 손수 관을 메고 걸었다(『불설정반왕반열반경佛說淨飯王般涅槃經』). 부처님은 어머니인 마야부인의 낳고 길러준 은혜에 보답하고자 특별히 신통력을 발휘하여 도리천궁에 머물며 어머니를 위해 삼 개월 동안 법을 설했다(『불승도리천위모설법경佛昇忉利天爲母說法經』). 부처님은 또한 마하파자파티 부인의 길러준 은혜에 감사하며 널리 자비법문을 설하고, 석가족 재가 여신도 오백 명의 출가를 허락했다. 그래서 불교에도 드디어 비구니 교단이 생겨나게 되었다.
아귀도에 떨어진 모친을 도현(倒懸 : 거꾸로 매달림)의 고통으로부터 구해주려는 목건련 존자의 효심을 가상히 여긴 부처님은 『우란분경盂蘭盆經』을 설해주셨다. 이로써 후세 제자들에게
효도를 강조한 경전의 첩경이 되었다. 중국 역대 고승 중에서도 불교적 효친 사상이 깊은 감동적 스토리(윤리관 참조)가 적지 않다.
불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지장경地藏經』, 『우란분경』, 『불설부모은중난보경佛說父母恩重難報
經』 등은 바로 효도를 널리 드러내는 불교의 경전이며, 그 밖에 삼장십이부三藏十二部 경전 가운데서도 종종 불교의 효친 사상을 엿볼 수 있다.
『범망경梵網經』에서는 “효를 계戒라 하고, 또한 제지制止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자신을 낳아준 부모에게 효를 다하는 것이 효도이지만, 계율을 지켜 타인을 범하지 않고, 가르침으로 신심과 행위를 제어하며, 유정有情 중생들에게 효를 다하는 것 또한 효도이다.
‘임금이 신하에게 죽음을 내리는데 죽지 않으면 불충이요, 부모가 자식에게 죽음을 내리는데 죽지 않으면 불효’라는 말은 임금과 부모를 불충하고 의롭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의 충효관은 유교의 충효관과는 다르다. 위에서 이미 서술한 충효에 관한 부처님의
많은 의로운 행위와 가르침을 통해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불교에서 생각하는 ‘충忠’이란 정성과 진실이 둘이 아니며, 끊임없는 항상심恒常心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 한마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 사람들은 ‘충’을 임금에게 복종하고 나라에 죽음을 다해 충성을 보이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사실 더 넓은 의미에서 ‘충’
을 바라봐야 한다. 부부 사이에는 충성忠誠이 있어야 하고, 친구 사이에도 믿음이 있어야 한다. 심지어 자신이 기르는 강아지, 고양이에게도 기왕 기르는 것, 처음부터 끝까지 잘 돌봐주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충’이다.
이익을 보고 의를 저버리지 않고, 다른 것을 보고 마음이 변하지 않는 것이 ‘충’이다. 초등학생에게는 초등학생에 맞는 수업을 하고, 고등학생과 대학생에게는 또 그들에게 맞는 학업을 맞춰줘야 하는 것처럼, 자신의 본분에 맞는 일을 그대로 잘해내는 것이 ‘충’이다. 섞어버리면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지 못하게 된다.
‘충’은 하나의 신앙이자 믿음이며, 또한 일종의 선善이다. 그러므로 충성의 대상 또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따져서 선택해야 한다. “좋은 새는 나무를 택해서 깃들며, 현명한 신하는 군주를 택해서 섬긴다(良禽相木而樓賢臣擇主而事)”고 하였다. 충성을 다하는 대상은 반드시 좋고 선하며 바르고 어질며 또한 의로워야 한다. 사악한 것에 충성을 다하는 것은 결코 옳은 길이 아니다. 그러므로 충성 또한 중심이 바로 서야 하고, 정의로워야 하며, 착함과 아름다움이 강조되어야 한다.
‘충’이란 인의, 자비, 신앙을 널리 드높이는 것이다. ‘충군애국忠君愛國’은 충성과 사랑은 같다는 의미다. 그에게 충성한다면 반드시 그를 사랑해야 할 것이고, 기왕에 그를 사랑한다면 반드시 그에게 충성을 다해야 한다.
과거에 장개석 총통은 윗사람, 국가, 책임, 명예에 충성을 다해야 한다고 제창했다. 장개석 총통이 윗사람을 첫 번째로 한 것은 사람을 충성의 대상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불교는 “법에 의지하되 사람을 의지하지 않아야 한다(依法不依人)”고 주장한다. 개인에게 충성을 다하지 말고 법을 위해 충성을 다하며, 제도와 공동체를 위해 충성을 다해야 한다.
특히 충은 쌍방향이다. 임금이 신하에게만, 또는 신하가 임금에게만 충성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충에도 옳고 그름, 삿됨과 바름이 있고, 좋고 나쁨이 있는데, 이것은 반드시 분별해야 한다. 그러나 충에는 득실이 없고, 시간의 길고 짧음도 없으며, 이해관계 또한 없다. 충성을 다하는 대상이 내게 이롭지 못해도 묵묵히 충성을 다하는 것을 ‘충성을 바친다’라고 한다.
‘충’에는 전념(專注), 불이不二, 완성完成, 원만圓滿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오로지 하나에만 전념하고, 성공과 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충성을 다하며, 자신의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면 충정忠貞을 원만히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진충盡忠’은 생명을 버리거나 무의미하게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신의 위치에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집안을 어지럽게 늘어놓지 말고 낙원 정토처럼 청결하게 가꾸는 것이 가정에 대한 가정주부의 진충이며, 게으름이나 요령을 피우지 않고 업무에 충실하는 것이 사회에 대한 사회 구성원의 진충이다. 불법을 봉행하여 불법으로 인심을 정화하며, 사회 풍토를 개선하며, 민풍을 진작시키는 것이 사회에 대한 불제자의 진충이다.
예로부터 불교 도량은 어둠의 무명을 없애고 모든 민중의 마음에 밝은 등불을 밝히며, 지혜와 광명을 드러내어 마음과 정신을 더욱 공고히 하고자 세워졌다. 이것이 사회에 대한 불교의 진충이다.
불제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해야 한다. 자비로써 폭력이 사라지게 이끌고, 인욕으로 원적怨敵을 소멸하며, 지혜로써 굳센 의지를 가르치는 것이 일체 중생에 대한 불교의 진충이다. 그러므로 좁은 의미의 충은 개인이나 특정 대상에게 공경과 숭배를 하는 것이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면 대중에게 봉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정에서는 가족이나 아내 혹은 남편의 본분에 충실해야 하고, 사회에서는 공동체와 직장, 직속상사에게 소속된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에 충실해야 한다. 항상 도의와 양심에 따라 사람을 대하고, 자신의 원칙을 충실히 지키며 이상을 추구해야 한다. 충성이란 미덕은 생활 속에서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충성스런 사람은 종종 인생을 헤쳐 나가는 등불이 되어 온 세상을 밝게 밝혀준다. 의롭고 충성스런 행위는 우리의 인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충과 효는 종종 함께 거론되기도 한다. 충은 믿고 따르고 배우는 것이다. 효는 공경하고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이며, 봉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