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순 이(영주 운강사 신도)
제가 겪었던 경험은 아주 조그마한 것이지만, 인생의 막다른 골목 참으로 어쩔 수 없는 한계상황에서 받았던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력은 저를 새로운 삶으로 인도해주셨다고 생각됩니다.
지금 쓰고자 하는 이야기는 1989년 겪었던 일입니다. 그 당시 저는 천태종 신도로 이미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구인사를 한번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으로는 항상 구인사 가보는 것이 소망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남편이 구인사 간부교육에 간다는 말을 듣고 모든 일을 뒤로 하고 따라나선 것입니다. 그렇게 소망하던 구인사 삼일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는 저의 마음은 기쁨으로 온몸이 날아갈 듯하였습니다. 이러한 기쁨은 7년이라는 긴 세월을 기다린 끝에 이루어진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구인사 참배의 기쁨도 잠시, 집에 도착하니 시어머님이 쓰러지셨다는 소식이 우리 내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시어머님께서는 서울 큰 댁에 계셨는데, 답답하시다며 누에고치를 키우는 봉성의 친구분께 가셨다가 쓰러지셨답니다.
소식을 접한 우리 내외는 짐도 풀지 못한 채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어머님은 중풍으로 말도 못하시고 몸은 전신마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컴퓨터 단층촬영을 했습니다. 검사 결과 뇌세포의 실핏줄이 터져 머리 속에 피가 고였다고 말씀하시고 출혈이 계속되면 10일을 넘기기 어렵다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어머님의 눈동자는 다 풀리고 의식도 점점 흐려지는 듯했습니다.
큰 댁에 모실 형편도 못되고 병원에서 입원을 받아주지도 않는 가운데 어쩔 수 없이 저희 집으로 모셔왔습니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시니 쉴 사이 없이 치워드려야 했습니다.
서울 큰 댁과 친척 어른들을 모셔왔습니다. 어른들은 어머님을 보시더니 3일을 못넘길 것 같으니 단념하고 장사지낼 준비나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밤이 깊어 혼자 방을 지키고 있을 때 온갖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혔습니다. 그때 저의 머리 속에 한 생각이 언뜻 스쳤습니다. 구인사에서 삼일기도를 하며 소원을 빌면 한 가지 소망을 이룰 수 있다는 스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때는 이미 우리 내외가 본산을 다녀온지 10일쯤 지난 뒤였습니다.
구인사에 가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한 기도정진은 아니었지만 관세음보살님의 도움을 받고 싶었습니다. 남편은 괴로움을 매일 술로 달래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머님 방에서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법회 때마다 스님께서 늘 말씀하시던 마음을 비우라는 그 말씀이 새롭게 가슴 속 깊이 아로새겨졌습니다. 그리하여 관세음보살을 열심히 불렀습니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새벽 3시가 넘은 것같았습니다. 막내 시동생이 소식을 듣고 달려왔습니다. 어머니를 붙잡고 울며 몸부림을 쳤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마냥 보고만 있을 만큼 시간이 많지 않은듯 느껴졌습니다. 빨리 부처님께 구원을 청해야겠다는 생각에 시동생을 데리고 회관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부처님 전에 기도를 올렸습니다. 시동생에게도 기도를 하도록 시켰습니다. 저는 부처님께 어머님 말문이라도 터져서 자식들과 말씀이라도 나눌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날이 훤히 밝을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어머님 방에 들어갔습니다. 어머님은 입이 마르신지 혓바닥으로 입술을 적시고 계셨습니다.
“어머님 목이 마르세요? 물좀 드릴까요?”
이렇게 말씀드렸더니 고개짓 대신 ‘응’ 하고 대답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나는 얼마나 기뻤든지 ‘부처님, 고맙습니다. 부처님, 고맙습니다’ 몇번을 반복했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분명히 부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후 저는 시간나는 대로 어머님을 위해 기도를 드렸습니다. 6개월 후에는 상태가 좋아져 어머님이 손수 목욕도 하시고 다니시는 것도 옛날과 다름 없을 정도로 완쾌하셨습니다. 병이 나으신 것입니다.
저는 병든 시어머니를 몇 개월 짧은 기간동안 간호하며 모셨지만, 이 기간은 부처님께서 저의 기원을 하나하나 들어주시며 저의 기도에 감응하신 기간이었습니다. 저는 일생 동안 부처님의 은혜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에 와서야 냄새가 심하게 났던 어머님을 수발하며 관세음보살을 부를 때마다 구역질이나 더럽다는 생각이 없어졌던 기억이 납니다.
중풍 환자를 모셔보신 분은 아실 것입니다. 얼마나 고치기 힘든 병인지를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부처님의 가호로 어머님의 병을 고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제 힘이 아닌 부처님의 힘입니다. 언제나 고통을 호소하는 중생들을 가없는 위신력으로 구제해주시는 부처님. 부처님이 계시기에 중생들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끝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아무리 건강을 상하신 분이라도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간호를 하시는 분이나 간호를 받으시는 분 모두 부처님께 의지하십시요. 간절한 마음이 있을 때 부처님은 대자비의 손길을 나투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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