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서 열심히 읽으며 부처님께 가까이
김상숙/전 동대부중 교장
내가 자란 곳의 뒷산에는 만어사(萬魚寺)란 작은 절이 있다. 열여덟살 때부터 섣달 그믐날이면 어머니께선 동네 어르신들 틈에 끼어서 만어사에 갔다 오도록 주선하셨다. 섣달 그믐날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는 말에 어른들 뒷전에서 오는 잠을 참다참다 견디지 못하고 그만 쓰러져 자기도 일쑤였다. 새벽 불공드리는 소리에 잠을 깨어 법당에 가서 절 몇 번 꾸벅하다 추우면 방에 들어왔다가 그렇게 하다 보면 법회는 끝이 나고 새로운 해가 밝았다.
이렇게 자라면서 으레 섣달 그믐이면 꼭 절에 갔다. 그 영향이었는지 불교 종립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교학시간에 교법사 선생님의 〈반야심경〉 강의에 심취해 일주일에 한 시간꼴인 교학시간이 기다려졌고, 그때부터 어렴풋이나마 불교사상에 접근하게 되었다. 대학 때 불교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많은 사찰을 참배했고, 스님의 법문도 자주 듣게 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화두로 잡기도 했다.
교직에 들어서면서도 40년 가까이 줄곧 불교 종립학교에서만 근무했다. 그러면서 교내 월례법회, 사찰 순례법회, 스님 초청법회, 불교학자 특강 등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이 언제나 내 머리를 채찍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독한 신심을 갖거나 깨우침을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욕심은 휴일도 없다더니 나에겐 욕심은 전천후인지 보시는커녕 탐욕에 사로잡힌 생각과 행동도 서슴지 않았고, 알량한 자존심과 명예를 위해 하잘것없는 일에도 치졸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한편으론 이런 속물근성에 잠겨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경전에 대한 공부나 스님의 설법을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신문이나 잡지에 게재되는 법문초(法門抄), 수상집(隨想集)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읽은 국내외 불서(佛書) 내용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람은 고름 단지에 불과하다. 둘째 ‘생자여부운(生者如浮雲) 사자여초로(死者如草露)’, 즉 살아있는 사람은 뜬구름과 같고 죽은 사람은 풀이슬과 같다. 셋째 남에게 주고 나서 후회하지 말아야 한다. 넷째 수의(壽衣)에는 호주머니가 없다. 마음을 비워야 한다. 다섯째 탐욕의 반대는 무욕(無慾)이 아니라 만족이다. 여섯째 화가 났을 때는 열을 세어라. 안되면 백을 헤아려라. 일곱째 마음을 비우면 세상이 보인다…. 나는 이런 내용들을 선전표어처럼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다. 언제나 마음속으로 읊조리면서 내 자신을 향해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한다. 교단에 서면 학생들에게, 가정에서는 자식들에게 말하면서, 내 스스로 그 뜻을 음미하고 마음을 다잡기도 한다.
각자(覺者)의 진수(眞髓)가 용해되어 있음을 알고, 나의 생각 나의 생활을 조명하고 비판해 보기도 하며 때론 양심에 가책을 받으면서 깊숙이 수렁에 빠져 헤어나기 힘든 걸 자각하고 후회할 때도 있다. 그리곤 다시 자신을 추스르며 가다듬고, 반성하고, 궤도를 수정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반복 속에서 교직을 퇴임했다.
교직을 나와서도 마찬가지다. 결국 인간의 일생은 사람됨의 과정이라고 여기고 있다. 자기가 스스로 자신을 제작해 나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욕심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속기(俗氣)를 벗어나지 못해 탈이다. 하지만 반추하건대 거짓으로 남에게 피해를 끼치거나 모질게 남과 다투어 본 일이 없고, 가진 재화가 별로 없어서 그런지 송사(訟事)를 벌여 옳거니 그르거니 따져 본 일도 없다.
이렇게 지나온 발자욱은 모두 부처님의 가르침 덕분으로 알고 있다. 그러다가도 때로 내 자신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관 뚜껑을 덮기 전에는 사람되기 틀렸다’고 되뇌이기도 한다. 오늘도 ‘그래! 그렇더라도 사람되도록 애써봐야지’하고 거울앞에 서본다. 산사의 자락에서 자란 보람을 언제 찾으며, 사람다운 사람은 또 언제가 될는지 거울 속 노인에게 물어본다.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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