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개천 / 국민대 교수
‘동양적 사상을 건축에 어떻게 표현 합니까’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사실 나는 한국적이라던가 동양적 철학의 표현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오히려 건축이 할 수 있는 역할과 그 가치에 대해 생각을 하는 편이다. 창조적 작업인 건축을 통해 삶의 의미와 그 개선 그리고 그 영역의 확장과 무한한 기쁨을 주는 틀에 관심이 많다. 평범한 일상 생활로서의 삶의 방식과 그 삶을 통해 누리는 기쁨과 회한에서부터 인간이 요구하는 도덕적, 철학적, 종교적 그리고 예술적 가치로의 증식, 이 모두가 인간 삶의 한 부분으로 요구되어지는 것이며 그러한 총체적 삶을 건축을 통해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가가 그 관심의 대상이기도 하다.
한국인이라서 그런지 실천의 방향과 방법을 동양의 철학과 특히 불교를 통해 배운다. 그리고 이 시대의 보편적 정신은 물론 미래의 새로운 가치에도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한다.
건축과를 졸업하고 ‘건축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품으며 약 8년간의 실무경험을 해외에서 쌓고 귀국하여 건축가의 길을 걸었다. 작품 활동과 함께 선학(禪學)을 공부하게 되었고 선에 대한 공부는 전통건축의 원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학문적 탐구와 한국건축으로부터 받은 감동의 내재적 힘으로 인해 깨닫고 변화되는 나 자신을 볼 때마다 예술 안에서 구현되는 깨달음의 방식이 종교적 구도의 길과 별반 다르지 않은 동일선상에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한국의 고건축에서 느낄 수 있는 공간성의 특징중 하나는 이처럼 공간이 인간 몸의 속성 속에 내재된 힘을 이끌어 내며 자신이 독존적이 아니라 몸과 세계가 하나로 만나는 통로로 역할하여 공간의 전이와 생산을 통한 초월적 힘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가능한 이유는 건물의 구조와 질서가 구획이 있으면서도 그 경계가 모호하고 허실상성(虛實相成)하여 변화하는 동시에 항구하여 자연과 인간만큼이나 생명으로 충일한 세계로 되는 공간적 원리의 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적 몰아의 깨달음에 이르는 것만큼 실제로 생명의 원리는 비유비무(非有非無)의 무형으로 이룬 원리라는 것을 건축에서 비로소 실감함으로 느끼게 된다. 건물이 건축적 사물에 그치는 것이 아닌 그 생생함의 방식으로 인하여 인간의 예술적 이상이 담긴 생명체로 전이된 것을 느낀다. 이러한 점은 내게 충분한 구도의 장을 제공하며 그것이 가진 탈 자아적 존재방식의 속성은 몰아적 비 경계를 체험케 한다.
고건축에서 느낀 이러한 체험과 고요하고 또 고요한 가운데 생기(生氣)를 일으키는 광대무적한 무한공간에 대한 추구가 현대건축을 통한 연장선상에 놓이기를 바랬고 실제로 동국대 법당 대각전, 증평 법천사, 백담사 만해마을등의 설계를 하게한 힘이 되기도 하였다.
공간적 예술에 대한 관심과 체험은 예술품을 완상함으로서 깨닫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즉 생각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그 속에 거주함으로 말미암아 공간과 나의 일상이 하나로 일체가 되어버림을 알게 된다. 건축이 다른 예술과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측면으로 예술이 직접적으로 유용하게 쓰여 짐으로 그 속에 삶이 있어 삶과 함께하는 실천적 측면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이러한 공간은 그 속의 인간의 심신을 건강케 하며 무욕과 충만함을 동시에 갖추게 한다.
집은 정신적 공간을 넘어 실질적 구도의 장으로 역할 하여 나 자신을 존재와 비 존재감을 동시에 갖는 탈자아성을 체득케 하며 현실과 비 실제가 공존하는 느낌으로 유위와 무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다. 수순을 구별치 않으며 평범함 속의 비범함과 위대한 속의 범범함은 구별돼 깨닫되 구별하지 않는 원융의 깨달음으로 이끌며 진실한 아름다움에 눈뜨게 한다. 예술적 표현과 감화로 인한 인간 생의 확장을 경험하게 함으로 이루어진 생은 평화를 체감한다.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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