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세 정(여수 장덕사 신도)
종교를 갖는다는 것은 곧 인간이 수행의 길에 들어섰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능하게도 저는 1987년 초까지 수행의 길을 택하지 못했으니 대단히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행히 집사람은 불교신앙을 가졌으나 부처님오신날을 포함해서 한달에 한두번씩 사찰에 나가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1989년도 3월경 대한불교천태종 여수지회의 발족과 함께 날마다 지회에 나가기 시작해서 한달이면 집에 있는 날이 열흘도 채 못되는 것 같았습니다. 가정주부로서 집안 일에 결함이 많을 것같아 가장의 입장에서 꾸중도 해보았으나 집안 일을 벼락같이 해치우고는 밤낮 없이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집에 있을 때 가끔 불교 중에서도 천태종이 좋다는 이야기와 정기법회 때 법사스님의 설법 요점을 이야기하고 신문도 매달 가져다주면서 읽기를 권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집사람의 언행도 매우 좋아지는 것을 보고 본인도 관심이 생겨 아내와 같이 관세음보살 정근을 열심히 했습니다.
이젠 여수지회가 장덕사(藏德寺)로 확장되어 매월 5일에 정기법회,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 임시법회를 보고 있습니다. 다행히 4월 5일이 일요일이라서 처음 집사람을 따라 장덕사 4월 정기법회에 나갔습니다. 처음이라 어색하기는 했지만 안면있는 처사님, 보살님들이 많아 반가이 맞아주셨습니다. 그래서 스님의 좋은 설법도 귀담아 듣고 그 이후로 임시법회 한번도 빠짐 없이 성실히 참석했습니다.
이렇게 법회에 빠짐없이 나가 스님 설법도 듣고 『금강』지와 『천태종보』를 읽으며 불교서적을 보는 동안 자비하신 부처님의 진리를 차츰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가정은 높고 외딴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가족도 집사람과 저, 두 식구뿐입니다. 그래서 밤낮 할 것 없이 불경 테이프를 틀고 있기 때문에 손님이 오면 ‘절’ 분위기가 난다고 하고 저도 차츰 우리집은 ‘절’이라고 자랑을 하곤 합니다.
언젠가 모 교수의 강연 녹음테이프에서 들은 바 있는 ‘사사불공(事事佛供)이면 처처불상(處處佛像)’이라는 문구를 항상 기억하고 있습니다. 일하는 곳에서 변함 없이 불공을 들이면 그곳에 부처님이 나타나신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농부는 논밭에서 기도를 드리고, 어부는 바다에서, 학생은 학교에서, 직장인은 직장에서 기도를 드리면 반드시 그곳에 부처님이 나타나신다고 믿기 때문에 나의 입에서는 ‘관세음보살’이 연속적으로 나오며 소리낼 수 없을 때는 마음 속으로 외칩니다. 날이 갈수록 천태종의 진리를 알고 취미를 붙여 법회날을 기다리기도 하고 일요일 등 시간나는 대로 가족과 같이 장덕사에 나가는 것이 기쁨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천태종 3대강령과 3대지표를 제 손으로 성심껏 써서 장덕사 기도실 액자에 넣어 걸었고, 총본산 구인사에도 두번 다녀왔으며, 물론 대조사님 적멸보궁도 참배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1989년 6월경 협심증이란 심장병이 발병하여 부정맥으로 서울 모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집사람이 보호자로 동행하여 병원에서도 기도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환자인 저도 병실 침대에서 기도를 게을리하지 않았지만 부정맥은 더욱 악화되어 결국 맥박기 주입 수술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병원 측에서 수술일시를 1989년 8월 16일 15시로 결정하여 3일간이나 수술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면서 기다려 드디어 수술시간이 되었습니다.
여러 친척들이 와서 수술실로 향하는 침대를 의사와 같이 밀고 수술실로 향하는 도중 소리내어 흐느끼는 조카 때문에 야릇해지던 당시의 감상은 영원히 잊을 수 없습니다. 그에 반해 평소 태연히 나의 간호에 임했던 아내가 입을 열었습니다.
“걱정마오. 우리 부처님이 있지 않소. 마음을 굳게 먹고 기도를 드리면서 자비하신 부처님께 의탁하시오.”
그 말을 듣고보니 흐뭇했습니다.
이동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향하면서 평소 생각도 못했던 수술에 대한 공포로 전율까지 느꼈습니다. 마음이 불안한 나머지 수술실 정문에서 ‘부처님’ 수술실을 통과하면서 ‘부처님’ 들어가서도 ‘부처님’ 이렇게 세번을 부르고 ‘관세음보살’을 마음 속으로 계속 부르면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어 나의 육체는 수술대로 옮겨졌고 그야말로 도마 위에 오른 고기가 된 셈입니다. 마취제도 주입 않은 채 집도가 시작되었는데 이상한 감각을 느끼면서 그후는 오로지 기도에 열중했을 뿐입니다. 약 20분쯤 후 담당 의사의 ‘아주 잘 참는데’ 하는 소리가 저의 귀에 들려왔습니다.
1시간쯤 되서 수술이 완전히 끝났고 다시 이동침대로 옮겨 3층 회복실로 향하는 승강기에 올랐습니다. 일행은 역시 가족, 친척, 담당의사, 간호사 등인데, 수술 담당 김삼수 박사께서 ‘아주 잘 참는데’ 하는 찬사 비슷한 말을 세번이나 계속했습니다.
그제야 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이젠 살았구나. 부처님의 은덕이다. 사사불공이면 처처불상이다. 분명히 부처님이 오셔서 지켜보시며 도와주었다’고 믿으면서 저의 머리 속은 계속 기도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저의 수술은 특별한 수술이어서 회복실에서 3일간을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고 의사의 지시에 따랐습니다. 그동안 시간마다 찾아오는 기독교의 전도사들이 ‘아저씨의 조속한 회복을 위해서 기도드립시다’ 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네, 감사합니다. 조금 더 정신이 들면 부탁합니다’ 하고 보내고는 ‘내게는 하나님 못지 않은 부처님이 곁에 와 계시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부처님이나 하나님이 모두 나의 마음과 정신에 있다’고 생각했고 ‘아무튼 모든 것이 고마울 뿐이다. 늦게나마 부처님 법에 입문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신앙이 없었다면 그 어려운 수술에서 얼마나 고통을 느꼈을 것인가’ 생각했습니다.
기도에 열중하는 사이에 별다른 고통 없이 수술이 끝났고 며칠 후 담당의사께서 ‘수술 결과가 아주 좋으니 이젠 안심하시오’ 하는 위로의 말을 듣고 자비하신 부처님의 원력이라 믿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합장하고 관세음보살 염송을 계속했습니다.
이와 같은 경험담을 많은 신도님들 앞에서 전할 기회를 갖게 되어 기쁩니다.
늦게나마 저를 부처님 법으로 인도해준 아내에게 감사하며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원력을 우러러보면서 오늘도 내일도 자나깨나 내 머리 속에는 관세음보살이 사라지지 않을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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