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순 예(연기 래운사 신도)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욕망이 크면 클수록 행복은 다가오지 않습니다. 오직 욕심을 버리고 현실 속에서 마음의 여유를 찾고 자족할 때만이 행복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저희 집안은 행복했습니다. 그다지 넉넉한 생활은 아니었지만 네 식구가 오손도손 단란하게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행복했던 가정이 어느날 갑자기 아들의 죽음으로 근심과 그늘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아들, 딸 이렇게 남매를 기르던 중 열아홉 되던 해에 아들이 세상을 등진 것입니다.
그때는 지난 1988년 4월 한창 만물의 생명이 약동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구인사에 첫 발을 디디게 된 것도 그때부터입니다. 제 소원을 빌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은 아들의 영혼을 보다 좋은 곳으로 천도하고픈 마음에서였습니다.
그후 저는 아이를 위해, 또 그 다음에는 가족들을 위해 구인사에 열심히 다녔습니다. 구인사에 다니다보니 저도 모르게 먼저 떠나보낸 아들에 대한 보상으로 새로 아들을 보려는 욕심이 가슴 속에 생겨났습니다.
아들의 49재와 조상님들 천도재를 지내고 난지 얼마 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큰스님께 친견을 드렸습니다. 큰스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저를 맞아주셨습니다. 그러자 저는 큰스님 앞이라 그랬는지 마음먹은 대로 얘기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물러나왔습니다.
저는 큰스님께 ‘제 나이가 마흔 둘이며 딸만 두었는데, 아이를 볼 수 있겠느냐’고 말한 것만 기억이 납니다. 그랬더니 큰스님께서는 ‘부처님 전에 아들 하나 점지해주십사 하고 축원하고 기도 열심히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정성이 부족해서인지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소원을 이루려면 숙세의 무한한 무명업을 소멸시켜야 한다는 굳은 믿음으로 기도에만 전력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습니다. 래운사 법당에서 기도를 한참 하는데, 제 입에서 이상한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모르는 말이 튀어나왔는데 나중에서야 제가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말 속에는 영산대재를 올려야 한다는 말이 계속해서 세번이나 반복이 되어 늘 궁금함을 가슴에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 말을 기억하고 있다가 어느날 구인사에 계시는 노스님을 우연히 만나 여쭈었더니 좋은 현상이라 하시며 조상들의 영산대재를 꼭 올려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는 구인사를 다닌지 얼마 되지 않아 이상한 말이 나오니 무섭기도 하고 한편으로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탓인지 기도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마음은 자꾸 불안하고 초조해지기만 했습니다. 그럴수록 저는 부처님 전에 간절하게 기도해보자는 마음으로 기도에 임해나갔습니다. 그런데 날이 가면 갈수록 저는 이상하게 제가 품고 있던 아들에 대한 바램을 가끔씩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도 중 문득문득 일어나는 아들 생각에 남 몰래 집이나 절에서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아마 울음으로 제가 지은 모든 나쁜 죄업들이 씻겨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우는 것을 보다 못한 남편은 저를 달래며 위로했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과한 욕심을 낸 것 같다며 단념하자고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들을 갖겠다는 욕심을 놓아버리지 못하고 오히려 부처님 전에 더 매달렸습니다. 밤낮을 잊고 기도에 마음을 두었습니다. 마음 한편에는 지성이면 감천이라는데 부처님께서 무심할 리 없다고 제 마음을 추스리며 부처님에 대한 깊은 믿음을 키워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날도 어김 없이 기도를 하다 잠이 들었습니다. 꿈 속에서 어떤 사람이 나타나더니 양 손에 조그마한 끈을 잡고 어서 가자고 독촉하면서 목을 졸라맸습니다. 그 사람에게 저는 ‘나는 할 일이 있으니 그 일 할 때까지만 기다려달라’고 하고는 구인사에 계시는 부처님을 불렀습니다.
간절히 외치자 작은 상 하나가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바라보니 물에 말은 밥이 있어 저는 그 밥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내 발로 걸어갈테니 끈으로 묶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어서 가자고 재촉했습니다.
그 재촉에 얼마나 걸었을까, 한참 걷다보니 어느 스님이 앞 길을 막고 말없이 서 계셨습니다.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한 채 ‘구인사 스님’ 하며 인사를 하고보니 예사 스님이 아니셨습니다. 두루마기를 입고 대님을 매고 하얀 고무신을 신었는데 완전히 삭발한 머리는 아니셨습니다.
스님은 아무런 말 없이 안스러운듯 저를 쳐다보고만 계셨습니다. 스님 뒤로 비구니 스님들이 보였는데, 그 스님들이 한결같이 ‘보살님이 오신다기에 우리가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라고 말하고는 사라지셨습니다.
사라지는 그 모습에 놀라 깨니 꿈이었습니다. 꿈에서 깨어나 저는 부처님을 향해 합장을 하고 기도했습니다. 마음껏 울면서 기도를 한참하다보니 마음이 이상하게도 포근하고 편안해졌습니다. 그 꿈에서 스님을 뵙고 난 뒤부터는 불안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평온함과 충일함으로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그리고는 몇 달이 흘렀습니다. 법당에서 그날도 기도를 하다 깜박 잠이 들어 꿈을 꾸었습니다. 어딘가를 가고 있는데, 한쪽으로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고 또 한쪽으로는 연잎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연잎 사이로 큰 연꽃이 쑥 올라와 있어 욕심이 생겨났습니다. 꺾을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어디선가 작은 아이가 하는 말이 ‘제가 꺾어다 드릴께요’ 하는 찰라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이 꿈을 꾸고 난 다음해 저는 학수고대하던 옥동자를 보았습니다.
천태종도 여러분, 저와 제 가족들은 부처님의 자비하심으로 큰 가피를 받았습니다. 열심히 구인사를 다니고 구인사의 영험을 믿으며 기도에 힘써 저는 부처님의 불은을 얻은 것입니다. 이 영험을 통하여 저와 제 가족들은 앞으로 더욱더 기도에 힘을 기울여 불법 안에서 살아갈 것을 마음으로 다짐하였습니다.
오묘한 진리 가운데 함께 하시는 부처님께 이 육신의 번뇌와 욕심을 버리고 불법 안에 귀의하여 많은 이웃들을 위해 살아갈 것을 다시 한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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