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순 자(원주 성문사 신도)
10여 년전 어느 일요일로 기억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것을 보고 무엇을 하는 곳인지 궁금하여 남편과 함께 천태종 말사를 찾은 것이 천태종과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때 주지스님은 ‘저희가 절에 나와도 되겠느냐’는 물음에 미소로 승낙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처음으로 구인사를 찾았을 때는 범종 타종식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영춘이란 곳에 내려 구인사까지 걸어갔습니다. 그때 너무도 많은 인파에 놀랐던 기억과 구인사에 유독 장독이 많았던 기억을 빼고는 고생만 지독하게 하여 3일기도는 커녕 두 밤을 지내기가 무섭게 구인사를 도망치듯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던 생각뿐입니다.
그런데 일주문을 완전히 나섰는데도 저의 귀에는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정근하는 소리가 귀찮을 정도로 쟁쟁하게 들렸고, 집으로 돌아와 안방에 있어도 녹음 테이프가 계속 돌듯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는 소리가 귓전에 울려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억이 날 때마다 참 부끄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천태종과 인연을 맺은 저는 법회날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 기도는 물론 그저 생각나면 한번씩 부처님을 찾아 3배를 올리는 정도였습니다.
그런 생활을 반복하던 5년전 어느날 저는 갑자기 하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병원에서 두번의 수술을 받았으나 계속되는 하혈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당시 남편은 성문사 총무직을 맡고 있어 그날 밤도 회의가 있다며 절에 가고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웬지 마음이 이상해져 내일이면 꼭 죽을 것같은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그날 밤 꿈속에서 까만 옷을 입은 남자 두 명이 방문 앞까지 다가와서는 빨리 나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죽어도 못나간다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두려움에 떨다가 뒷문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멀리 시골 동네로 도망을 치다보니 성벽같은 좁은 길이 나오는데, 뒤에는 두 명의 남자가 쫓아오고 앞에는 불이 활활 타올라 진퇴양난이었습니다. 생각 끝에 이왕 저 남자들에게 붙잡히면 죽을 터 저 불길을 헤치고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에 그 활활 타는 불길을 뚫고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렇게 계속 도망을 다니다 어느 시골집 가장 으슥한 뒷방에 들아가 숨었습니다. 한참 뒤 개 짓는 소리가 요란하더니 그 남자 둘이 다시 내가 숨어 있는 방문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네가 뛰어봐야 이 손바닥 안이지 그리 도망치면 모를 줄 알아?”
그 남자들이 이렇게 외치며 다시 나오라고 소리쳤습니다. 죽어도 못나간다고 했더니 그들 중 한 명이 노자돈 3만원을 달라고 하는 순간 꿈을 깨고 말았습니다.
너무 이상한 꿈이어서 다음날 남편에게 이야기했더니 개꿈이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출근해버렸습니다. 그런데 조금 후 다시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직장에 나가 꿈 생각을 하니 기분이 언짢아 다시 돌아왔다’며 큰 대학병원에 가보자고 했습니다.
병원에 아침 일찍 접수를 하고 오전이 거의 다 지나갈 무렵 진찰대에 올랐는데, 의사 선생님은 다급하게 간호원을 부르고 보호자인 남편을 찾았습니다.
“너무 급합니다. 피가 배에 삼분의 이가 찼습니다. 초를 다투니 검사고 뭐고 빨리 수술에 들어갑시다.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큰일날 테니까요.”
저는 그때 의외로 마음이 차분해지며 한번도 제대로 불러본 일이 없는 관세음보살을 조용히 속으로 염송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마음대로 하시옵소서. 죽어야 한다면 죽여주시고 살아야 한다면 절 살려주세요.’
이렇게 혼자 속으로 기도하다가 정신을 잃었습니다.
한참만에 눈을 떠보니 희미한 저의 시야에 아직 서산으로 넘어가지 않은 햇살이 비쳤습니다. 어찌 그리 찬란하게 비치는지, 37년 동안 느껴본 일이 없는 감회였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수술이 잘 되어 참 아슬아슬하게 살아났다고 했습니다.
“이 정도 되면 웬만한 환자들은 배가 아파 데굴데굴 구르면서 응급실로 오는 것이 정상인데, 이 환자는 전혀 통증이 없었다는 게 의사인 저도 이상합니다.”
의사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그 의문을 풀 길이 없었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이상했습니다. 어찌 됐든 저는 살았고 2주일 동안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일은 입원기간 동안에 일어났습니다. 평소부터 위가 약해 자극성 있는 음식을 먹으면 속이 쓰렸는데 오랫동안 항생제를 투약했기 때문인지 저는 속이 쓰리고 아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문병 오는 사람마다 붙들고 내 등 좀 문질러달라고 했더니 얼마나 등을 문질렀는지 등에 상처까지 났습니다. 너무 많이 등을 문질러 생긴 상처였습니다. 계속되는 통증 때문에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려 위 사진을 찍어보기에 이르렀고 의사 선생님은 산부인과에서 내과로 옮겨야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입원 도중 계속 염주를 돌리며 관세음보살을 염송하고 있었습니다. 관세음보살을 염송할 때마다 통증이 좀 덜한 느낌도 들었지만, 그보다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그런 심정에서였습니다. 평소에는 제대로 불러본 일도 없는 관세음보살님을 그렇게 남 몰래 속으로 애타게 불렀던 것입니다.
‘관세음보살님, 제발 절 좀 돌봐주세요.’
진심으로 애타게 관세음보살을 염송하다 밤이 깊어 잠자리에 들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꿈에 종정으로 계시는 큰스님께서 우리 집에 오셨습니다. 꿈에 본 우리집은 시골집인데 가사장삼을 입은 큰스님이 마당을 가로질러 들어오셔서 저는 큰스님을 향해 인사를 하고 나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큰스님, 저는 속이 아파 죽겠어요.”
그랬더니 큰스님께서는 마당 한가운데 놓인 소반 위에 흰 쌀밥이 그득히 담겨 있는 사기그릇을 가리키시면서 ‘저걸 먹어보아라’ 하셨습니다. 저는 경망스럽게 ‘저걸 먹으면 나을 수 있나요’ 했더니 아무 말씀 없이 반대편 길로 나가셨습니다. 눈을 뜨고보니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꿈을 깨고 나서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그렇게도 쓰리고 아파서 죽을 것같던 가슴을 한번 슬쩍 만져보았더니 전혀 아프지 않았습니다. 너무 신기해서 한쪽 다리를 치켜들어보았습니다. 천근같이 무겁던 다리가 아주 가뿐해 이게 웬 일인가 싶었습니다. 다시 반대편 발을 들어보았더니 역시 아프지 않았습니다. 너무 신기해 뺨을 꼬집어보았으나 분명 꿈은 아니었습니다. 신기한 나머지 침대에서 내려와 화장실까지 걸어가보았습니다. 너무나 기분이 좋았습니다. 잠을 자고 일어난 일밖에 없는데, 그 사이에 그리도 아팠던 속이 전혀 쓰리지 않고 온몸이 이리 거뜬하다니…
순간 지난 밤의 꿈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두 손을 모으고 ‘부처님,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님, 큰스님, 감사합니다’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를 뜨거운 불길이 가슴에 차오르면서 저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누가 ‘당신은 왜 절에 다니느냐’고 물으면 교만하게도 저는 ‘열 가지 죄를 중생이 지을 수 있는데, 그 중 한 가지만이라도 덜 짓기 위해 절에 가서 마음을 닦는다’고 답변하곤 했습니다. ‘부처님 법신이 어디 있고, 옹호하는 신중이 어디 있느냐’고 따지며 알음알이로만 불교를 이해하며 살아온 제가 누구의 이야기를 들은 것도 아니고 스스로 이런 기적을 체험하고보니 그저 ‘감사합니다’란 말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시 내과 신세를 질 필요가 없어 퇴원을 했고, 그 길로 큰스님을 친견하여 큰스님 말씀대로 피마자 기름을 복용한 뒤 금방 회복되어 지금까지 가슴과 속이 쓰려본 적이 없이 살고 있습니다. 꿈같았던 5년 전의 그때 일이 생활하는 중에 문득문득 떠오를 때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란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지금도 훌륭한 신도도, 열심히 기도하는 신도도, 부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그런 신도도 아닌 저에게 부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그저 부끄럽기만 합니다.
부처님의 가피는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그후 저는 너무도 많은 부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집에 도둑이 들기 5분 전에 신기하게 『묘법연화경』을 침대 머리맡에서 떨어지게 해서 잠을 깨워 도둑을 쫓게 해주셨고, 꿈속에서 도둑이 들어온다고 알려주어 화를 면하게 해주신 일 등등…
또 1년 전엔 남편이 갑자기 호흡이 곤란해져 숨을 쉴 수 없어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무려 4시간 이상을 애태운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급히 큰스님께 전화 친견을 요청해 대명을 받았습니다. 큰스님의 말씀대로 우황청심환과 피마자 기름을 한 숟가락 먹이는 순간 호흡이 완화돼 지금도 직장에 잘 다니고 있습니다.
작년에 큰 아이가 대학입시에 응시했는데, 성적이 20점 정도 모자라는데도 큰스님께서 인도해주신 대로 그 대학 그 학과에 응시해 합격의 영광을 차지한 일, 또 큰 아이 대학입시 보던 날 남편은 진급이 되어 몹시 기뻐했던 일, 둘째 아이 고등학교 배정도 마음먹은 대로 받았던 일 등, 이 모든 것이 큰스님의 친견으로 이루어진 결과라 생각하며 부처님의 신비한 가피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제 부처님의 그 많은 가르침 가운데 단 한 가지만이라도 올바로 실천할 수 있는 부처님 제자가 되어 남은 생을 살고자 합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착한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하루가 되게 하시옵소서.”
매일 아침 남편을 출근시키고 나서 저는 하루를 시작하기에 앞서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잠자리에 들면서 생각해보면 아침의 기도와는 다른 생활을 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겠다는 맹세를 결코 포기하지 않고 저 피안의 언덕을 향해 묵묵히 정진해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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