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우 대종사 영결·다비 엄수
등록일 : 2018-03-30 동영상 
“일생이 도리어 봄날 꿈만 같고, 꿈을 이야기하는 것도, 또한 꿈 가운데 꿈이라. 나에게 임종의 참 소식을 묻는다면, 꿈을 깨어 자유롭게 걸으니 처처가 다 통하는도다.”

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이자 전 총무원장 야부당(冶夫堂) 초우(草宇) 대종사가 임종게를 남기고 연기처럼 허공으로 흩어졌다.

3월26일 세수 86세 법랍 72세 원적
말뚝수좌·자비보살 화현으로 칭송
이사 걸림 없는 행보 후학에 귀감

원로회의장 장의위원회는 3월30일 영축총림 통도사와 연화대에서 영결·다비식을 엄수했다. 영결법요, 행장소개, 법어, 추도사, 헌화분향, 발인과 다비가 순서대로 진행됐다. 조계종 종정 진제, 총무원장 설정, 중앙종회의장 원행 스님 등 사부대중 2000여명이 초우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3월26일 오전 6시5분 세수 86세, 법랍 72세로 매화향기 그득한 봄날의 통도사에서 원적에 든 초우 스님은 봄 따라 불법승 삼보에 귀의했고 봄 따라 떠났다. 15세이던 1947년 해인사에서 동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 효봉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했다. 1957년 봄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한 뒤 1960년 통도사에서 월하 스님을 법은사로 모시고 사제의 인연을 맺었다. 통도사 불교전문강원에서 대강백 운허 스님을 모시고 지관, 월운 스님과 함께 대교과를 졸업했다.

초우 스님은 ‘말뚝 수좌’ ‘자비보살의 화현’이라고 회자되기도 했다. 첫 안거를 오대산 산원사 청량선원에서 나고 이후 해인사, 통도사, 동화사 등 제방선원에서 안거를 지내며 ‘말뚝 수좌’라 불렸다. 이 시절 초우 스님은 오대산 한암 스님의 제자인 보문 스님이 병을 얻자 입적할 때까지 지극 정성으로 시봉하며 수행한 일은 ‘자비보살의 화현’이라는 일화를 남겼다.

통도사 주지, 조계종 총무원 재무부장, 감찰위원, 중앙종회 부의장 등을 지낸 초우 스님은 1981년 제19대 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하면서 이(理)와 사(事)에 걸림 없는 살림을 살았다고 평가 받기도 했다. 1984년 조계종 비상종단운영회 의장을 맡아 종단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자 했으며 사단법인 마하야나 불교문화원 이사장, 스리랑카 마하보디회 한국 대구지회 이사장 등 한국불교 국제화에도 애썼다.

원로회의장 세민 스님은 영결사에서 “산사에 머물 때는 눈 푸른 안목과 대의대용을 갖춘 운수였고 밖으로 나설 때는 이사를 겸비한 만행보살이었다”고 회고했다. 총무원장 설정 스님도 추도사에서 “수행자의 길을 묵묵히 걸으면서 불편한 도반이 있으면 정성껏 보살핀 ‘자비보살의 화현’이었다”며 “스님의 자취를 따라 부단히 정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이기흥 중앙신도회장은 “큰스님이 몸소 보여준 가르침을 명심하고 스님이 일군 보살행 발자취를 후대에 올곧게 전하며, 종단 외호단체로서 불자로서 더욱 정진하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발원했다.

초우 스님의 49재는 4월1일~5월13일 두 번째 재를 제외한 초재부터 막재까지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통도사에서 진행된다. 4월8일 2재만 대구 보문사에서 열린다.